'국정원 영장'은 왜 자꾸 기각될까

2017. 9. 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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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 ⑥ 자꾸 기각되는 '국정원 영장', 왜??

'국정원 사건' 구속영장 5건 중 4건 기각
검, "영장기각 일부 세력이 작용" 의심
법, "너무 쉽게 내주면 불구속 원칙 훼손"

2013년 재정신청 때도 '실행자'는 기각
'합성사진' 직원들 영장 발부 여부 촉각
검찰 수사관들이 지난달 23일 오전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이 활동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양지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벌써 네번째다. 8일 2명, 19일 2명.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5건 중 4건이 기각됐으니 발부 비율은 겨우 20%. 단일 사건으로는 기록적인 수치다.

먼저 ‘국정원 댓글공작’ 가담자 2명의 영장이 기각된 8일. ‘수퍼 갑’ 법원 앞에서는 옷 매무새도 고친다는 검찰이 이렇게 해서는 국정원 적폐 수사 못한다며 높은 수위의 입장을 발표하고, 법원도 질세라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라며 일전불사라도 할 듯 날을 세우는 흔치 않은 광경이 벌어졌다. 마침 금요일이라 양 기관간 ‘확전’은 피했지만, 주말 내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선 ‘대리전’이 펼쳐졌다. 그러고 다시 19일. 법원은 추가 청구된 3명 중 2명의 영장을 사정없이 그어버렸다.(검찰에선 영장 기각을 ‘그어버린다’고 표현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물밑’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장 퇴짜에 격앙 반응 보인 검찰, 다음을 위한 노림수?

검찰은 법원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한다. 법원행정처와 그곳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법원 내의 ‘현 주류세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런 시각은 8일 발표한 입장문의 행간에서도 읽힌다. “지난 2월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없이 기각되고 있다. … 최근 일련의 영장 기각은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서 (중략)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영장을 기각당한 검찰 내 분위기는 애초에 몹시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일부는 “살벌했다”는 말로 그 날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기각의 ‘배후’로 특정인의 이름, 특정세력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는데, 발표문은 많이 ‘톤 다운’이 됐다. 그러나 검찰이 애초 하고 싶어 했던 말은 다 담았다.

검찰 내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지난 2월 인사에서 영장전담 법관들이 새로 부임했다. 그 뒤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유라씨,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의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의 영장은 ‘도로교통법으로 넣어도(그만큼 가벼운 범죄로 청구해도) 나온다’고 자신했는데 그어버리더라.” 두번째 영장도 기각됐다. 정유라씨 영장도 두번 모두 ‘퇴짜’를 맞았다.

구속영장만이 아니다. 국정농단 사건 후속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특정인의 압수수색영장도 두 차례나 기각됐다. 이 역시 현 영장전담 법관들이 부임한 이후 일이다. 특정인과 특정인의 통화기록을 확보해 더 큰 범죄 혐의를 추적하려던 검찰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졌음은 물론이다.

검찰 안에서는 3명의 영장전담법관 중 법원행정처,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친 두 사람에게 특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법관 3명 중에 2명이 행정처·대법원 출신인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판사가 됐다 해도 아무나 못 간다는, 그래서 ‘사법관료 양성소’라고도 불리는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을 거친 두 사람이 현 사법부의 고위층 또는 주류 세력과 ‘공감’ 하에 영장을 기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이 지난 8일 입장 발표 때 “법과 원칙 외에 또다른 요소”라고 했던 게 이 부분이다.

“새 정부 들어서고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국정 농단, 적폐 청산 한다면서 온 세상이 들썩이니, 이러다 사법부까지도 쓰나미가 밀어닥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왜 없겠나. 자신이 법원내 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 불안감은 더 크겠지.”

“같이 시험(사법시험)보고, 연수원도 같이 다녔지만, 법관은 검사에게 ‘수퍼 갑’이다. (영장을) 그어버리면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어떤 수사냐. 국민 절대 다수가 하라는 수사 아니냐. 이번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판사 하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걸핏하면 검사는 개라고 한다. 그래 솔직히 우리는 개다. 정권에서 물라면 무니까. 그럼 니들(판사)은 뭐냐? 최소한 정권의 파트너 아니냐’고.”

법원 쪽 “촛불정국 때 영장 너무 쉽게 줬다는 자성의 목소리”

법원 쪽 시각은 전혀 다르다. 이 역시 지난 8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서울중앙지검의 영장기각 관련 입장 표명에 대한 형사공보관실의 의견’이라는 글에 압축돼 실려 있다. “수사의 필요성만을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검찰이 ‘구속=성공한 수사, 불구속=실패한 수사’라는 옛 도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영장 발부에 과잉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검찰이 일부러 ‘도발’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내비쳤다. “금번과 같은 부적절한 의견 표명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 말을 꼬아 놓아 복잡해 보이지만, 다음에 구속영장 수월하게 발부받으려고 작심하고 덤비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다.

법원 내부엔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 특검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너무 쉽게 내어줬다는 자성의 분위기가 있다. 법원 스스로 ‘촛불시위’를 비롯한 정치적 분위기에 눌려 ‘불구속 재판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못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이화여대 교수들의 ‘업무방해’ 혐의 영장을 너무 쉽게 발부해준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판사들 사이에서 있었다고 한다.

“이대 교수들의 혐의가 구속할 만한 사안인가하는 의구심들이 (법관들 사이에) 있었다.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법원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영장을 발부했다는 비판이 법원 내부에서도 많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이번 영장판사들이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너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시엔 증거인멸 가능성을 굉장히 넓게 봤는데, 그쪽을 감싸던 권력이 없어졌으니 원상복귀를 하는 과정일 뿐이다.”

이런 원칙의 문제 말고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과거 영장전담 법관을 했던 한 변호사의 얘기다.

“영장이 발부된 사람과 기각된 사람을 잘 살펴보라. 검찰 수사에서 ‘윗선’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민병주(전 국정원 심리전단장)는 발부를 해줬다. 원세훈까지 갈지, 그보다 더 위까지 갈지는 알 수 없지만, 향후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해준 것이다. 반면 기각된 사람들은 큰 틀에서 보면 ‘하부 실행자’ 정도에 불과하다.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에 고용돼서 시키는 일을 한 경우, 그러다 돈 빼먹은 혐의 정도라면 나중에 재판에 가도 실형 가능성이 높지 않다. 증거인멸·도주 우려를 따질 때 나중 재판에서 유죄는 물론 실형 등 높은 처단형이 예상되느냐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또 검사들로 구성된 국정원 개혁티에프가 다 조사해서 증거랑 같이 검찰에 넘기고 있고, 국정원이 과거처럼 수사를 방해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체 수사의 맥락상 증거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 국가정보원 아래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하며 온라인에서 불법 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등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실제로 19일 영장이 기각된 국정원 전 직원 문아무개씨는 활동비 명목의 돈 수천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또 송아무개 민간인 팀장은 10억여원의 돈을 받고 팀원들을 고용해 여론조작에 나선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다. 앞서 지난 8일 영장이 기각된 박아무개 양지회 사무총장과 노아무개 전 양지회 실장도 각각 활동자료를 은닉하거나 여론조작을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영장이 발부된 민병주 전 단장과는 ‘급’이 다르다.

‘실형 선고 가능성’이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을 가르는 중요 기준의 하나였을 것이란 분석은 검찰 안에서도 나온다. 법원은 2013년 ‘국정원 댓글공작’과 관련해 검찰이 정권의 압력 탓에 불기소 처분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검찰에 공소제기(기소)를 명령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댓글활동을 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와 외부 조력자 2명에 대한 재정신청은 기각했다. 당시 기각사유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29부)는 “상급자의 지시 등에 따라 이 사건에 가담하게 된 점, 일부 수사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재정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재정신청을 인용한 두 사람에 대해 나중에 유죄는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실형이 나온 사람은 원세훈 전 원장 한명뿐이다. 가장 책임이 중한 한 사람에게만 실형을 선고한 셈이다. 이번 영장기각 사례처럼 하급 실행자들은 재정신청 자체를 기각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윗선은 구속, 꼬리는 불구속…‘실형 선고 가능성’이 방점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마약 판매상과 투약자를 수사한다고 치자. 판매상과 그 조직을 밝혀내는 게 수사의 목표인데, 법원은 지금 비교적 가벼운 투약자에 대한 영장이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을 보는 법원의 시각은 2013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정답은 없다. 검찰과 법원 중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어렵다. 나랏돈 10억원을 빼먹은 사람조차 구속하지 않는 것이 정의냐는 검찰의 항변도, 무조건 구속해 응징할 생각 말고 수사에 꼭 필요한 영장만 가려서 청구하라는 법원의 입장도 나름의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일 저녁 현직 국정원 직원 2명의 구속영장이 새로 청구됐다. 검찰 고위 인사가 “국정원 적폐수사에서 이보다 더 센 게 나올까?”라고 했던, 배우 문성근·김여진씨의 합성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들이다. 그리고 21일 “법원내 재야의 총수”(민변 중견 변호사)로 평가받는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마침내 국회의 인준을 얻어 대법원장 취임을 앞두게 됐다.

이번엔 영장전담 법관들이 어떤 판단을 할지 쳐다보는 눈이 많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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