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납량특집 ②] TV에 귀신, 악령, 외계인, 퇴마사 나오던 그 시절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2017. 9. 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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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이불 속에서 실눈 뜨고 본 '전설의 고향'

"철 들자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 나아가 물질을 배우면서부터

탐라의 여인으로 태어난 숙명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던 그들 탐라여인들에겐

꿈에도 그리는 무릉도원이 있었으니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이다.

꿈의 낙원 이어도를 그리는 마음은

탐라의 여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동요로 남아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위 해설은 1979년 전설의 고향 '이어도' 편 도입부에 나온다. 매우 근엄한 목소리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짤막한 해설이 마치 집안 어른의 훈계 같기도 하다. 전국 각지 구석구석에서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극화해 방송했던 '전설의 고향'은 1977년 시작해서 1989년 종영한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 각 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미지의 스토리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애초의 기획의도가 분명 있었음에도, '전설의 고향'은 어느새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포드라마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설의 고향'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참 많았다. 지금 다시 보면야 전래동화 수준인 것도 많지만 그때는 어찌나 무섭던지. 이불 속에 숨어 눈만 빼꼼 내밀어 그 늦은 밤 TV를 주시했던 어린 아이들이 집집마다 있었다.

원조 시리즈가 1989년에 마무리되고 1996년과 2008년, 두번에 걸쳐 리메이크 되면서 명맥을 유지했던 '전설의 고향'은 그 편수가 670편에 달한다. 수백개에 달하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물론 흥미진진하지만 그 중 사람들이 주로 거론하는 작품은 단연 '구미호'다. 그래선지 '전설의 고향'을 거쳐간 구미호도 열 명이 넘는다. 당대에 여배우들은 일단 구미호 역을 맡으면 이슈가 되고 주목을 받았다.

역대 구미호들. 한혜진, 송윤아, 노현희, 김지영, 박민영, 전혜빈

1대 구미호는 한혜숙이다. 1977년에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자료는 영 찾을 수 없어 아쉽다. 몇 장의 이미지만 남아 있었다. 한혜숙 외에 장미희, 김미숙 등이 구미호 역을 맡았으며 90년대 다시 찾아온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의 첫 타자는 박상아였다. 이후 송윤아, 노현희, 김지영, 그리고 2000년대에는 박민영, 전혜빈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전설의 고향'의 전설은 '내 다리 내놔'

'전설의 고향' 중 인상 깊은 이야기로 종종 회자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덕대골' 편인데 일명 '내 다리 내놔' 에피소드다. 이 이야기인즉슨, 중병에 걸린 남편이 '아픈 남편 놔두고 바람 피는 요물'이라며 허구한날 아내를 닦달하는데, 착한 아내는 그래도 그 못난 남편 살리겠다고 시체의 다리를 자른다. 시체의 다리를 달여 먹이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미신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내는 다리가 잘려 절뚝거리는 시체한테 갖은 고초를 겪고 난 후 아내 덕분에 병이 나은 남편과 행복하게 산다.

'전설의 고향'의 '덕대골' 편 중 한 장면

어찌나 고루한 이야기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는데, 여하튼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이유는 추격 장면 때문이다. 다리 잘린 이 시체는 아내를 추격하는 내내 "내 다리 내놔"를 외치는데, '짝발'로도 어찌나 잘 뛰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시체의 훌륭한 운동신경 덕분에 이 장면은 '전설의 고향'에서 손 꼽히는 공포의 순간으로 다수의 시청자들이 아직도 기억한다.

◆ 마리의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면 TV 앞 시청자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이제 곧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4년 여름 8월 단 한달 동안 짧지만 굵은 공포를 전해줬던 드라마 ‘M’은 납량 드라마의 간판이다. 당시 시청률이 50%가 넘었을 만큼, 이 색다른 장르의 드라마에 대중이 열광했고, 아직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M'은 현대극으로서는 거의 최초의 공포드라마였다. 게다가 한국 공포극에서 처녀귀신이 아니라 악마를 보게 된다. 그것도 실물로. 어쨌든 드라마 'M'은 거의 최초로 '악령'이라는 소재를 사용했고 이 희귀한 스토리로도 크게 성공했다. 20년도 더 훌쩍 지났건만 지금까지도 'M'만큼 인상적인 공포드라마는 아직 안 나온 듯하다.

장면 1. 치한들을 해치우는 M

M의 자아가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장면이다. 공중파 TV 드라마치고는 꽤 폭력적인 장면이어서 그런지 당시 화제가 많이 됐었다. 그 주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번 더 다뤄졌던 기억이 난다.

장면2. M의 본모습이 공개되는 순간

악령께서 친히 모습을 드러낸 이 장면은 ‘M’ 전편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랄 수 있다. 지금 보면야 저 악령이라고 하는 게 좀 어글리한 인형 같아 보일 뿐이다.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TV에서 지켜본 기억이 무척 생생한데, 그 어린 나이에 느끼기에도 저 악령의 모습은 어색했다. 그래도 당시로서는 적잖은 공포를 전해준 명장면이다.

◆ 'M'이 대성공을 거두자 내친김에 MBC는 더 독특한 소재를 과감하게 드라마에 사용하기로 한다. 'M' 방영 후 꼭 1년만에 납량특집 미니시리즈로 '거미'라는 드라마가 등장한 것이다. '거미'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독거미'를 소재로 했는데 안타깝게도 보기 좋게 대실패 하였다. '독거미'에 '에볼라' 조합은 낯설어도 너무 낯설었나 보다. 당대 톱스타였던 이승연의 1인 2역 연기가 꽤나 어색했던 것도 대실패에 한 몫 했을 거라는 분석도 많다.

◆ 한번 실패로는 굴하지 않았던 MBC는 불과 약 반년쯤 후에 '별'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별'은 공포라기 보다는 SF에 가까운 내용인데,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게도 외계인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외계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별'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시피했다. 최근에 '별에서 온 그대'에 와서야 드디어 드라마에 외계인이 등장했다.

이소라와 고소영이라는 절세 미녀 배우를 한꺼번에 투입했음에도 '별'은 초기에만 반짝 관심을 받고 조용히 사라졌다. 외계인들이 두 여자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바람에, 외계인들끼리 교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두 여배우의 키스신이 보여지기도 했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설정이었으니 당시 시청자들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야심찬 MBC의 도전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공포를 비롯한 이색 소재 드라마는 거의 사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다 1999년 여름 '고스트'가 등장했다. '고스트'는 악마가 빙의한 범죄자를 쫓는 퇴마사의 각종 활약상을 그렸는데, 세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편승해 대중의 관심을 받아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편당 1억의 제작비에 김종학·민병천 두 출중한 연출자, 그리고 장동건이라는 스타가 있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CG 기술도 제법 훌륭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동건뿐 아니라 상대역으로 김상중이 출연하였는데 배우들도 열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스트'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는 이야기가 일반 정서와는 제법 동떨어졌던 것 같다.

납량드라마를 보며 열대야를 견딜 여름을 기다리며

이어서 눈에 띌 만한 납량 드라마로는 'RNA'와 '혼'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 드라마들 모두 시청자들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M' 이후의 납량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 납량드라마의 몰락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납량드라마는 이제 단막극에서나 아주 가끔 다뤄질 뿐,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납량드라마의 성공 사례가 이토록 희박한 지경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 색다른 소재에 도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범위는 넓을수록 좋지 않나. 내년 여름에는 납량특집 드라마를 보면서 열대야를 견디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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