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쟁률 추락에 재학생까지 줄줄이 이탈..'반세기' 전통 조선·원자력학과의 위기

황순민 2017. 9. 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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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침체 '불똥'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수시모집 미달 사태
지난 3년간 다른 학과로 옮겨 탄 학생만 학과 정원 4분의1에 달해
'탈원전' 여파로 원자핵공학과는 대학원·석박사 줄미달 사태
"기술인재 명맥 끊어지면 '기회' 와도 재기 불가능" 우려 목소리

"신입생과 2학년들만 해도 전공수업을 아예 안 듣기 시작했어요. 바로 다른 과 옮길 준비를 하는데 나도 '탈(脫) 조선' 해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이에요.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재학생 A씨)

한때 한국 경제를 주도하던 조선산업과 원자력발전(원전)이 각각 산업 침체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삐걱거리면서 이를 견인해 온 대학 내 조선해양공학과와 원자핵력 관련 학과가 학생 이탈 현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학계에서는 기술 인재 명맥이 끊기면 한국경제에 '수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조선·원전 산업의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1일 서울대에 따르면 최근 2018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조선해양공학과 경쟁률은 일반전형 4.12대 1과 지역균형선발전형 0.67대 1로 2017학년도(4.69대 1과 2.0대 1)에 견줘 하락했다. 특히 지역균형선발전형에선 9명 모집에 6명만 지원해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함께 유일하게 서울대 입시서 미달된 학과로 이름을 올렸다. 조선업 전성기였던 지난 2008년 8.46 대 1 경쟁률을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입시생들 사이에 인기가 '반토막' 난 셈이다. 조선과 수시 모집에서 미달은 지난 2013년 입시가 처음이었고 올해가 두번째다.

서울대 뿐만이 아니다. 지방 명문대중 하나인 부산대도 조선해양공학과의 경우에도 학생부교과전형 2.43대 1, 학생부종합전형 1.50대 1로 지난 학년도(4.95대 1과 3.4대 1)보다 크게 떨어졌다.

서울대 조선공학과의 경우, 해방 직후인 1946년 경성제국대, 광산전문대 등에 다니던 재학생을 모아 서울대 발족과 함께 설립됐으며 수십년 간 공대 간판학과로 이름을 떨쳤다. 한 서울대 공대 교수는 "재학생 절반이 '장학금'을 받고 다닐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졸업하기도 전에 국내 조선사들이 미리 졸업생을 '입도선매'로 싹쓸이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불황과 맞물리면서 수험생들이 기피하는 학과로 변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재학생 이탈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 지난 3년간 서울대 조선학과에서 전과(轉科)한 학생은 12명으로 학과 입학정원(46명)의 4분에 1에 달했다. 올해에만 6명이 '탈(脫)조선'을 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조선학과로 전과를 신청한 타과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4차 산업과 밀접한 컴퓨터공학부와 전기정보공학부 등에 각각 10명, 8명의 학생이 전과를 신청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조선학과가 서울대 입학 후 전과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학과 관계자는 "일부는 우리 학과의 전공수업은 전혀 수강하지 않는 등 일단 입학한 후에 다른 과로 옮기기 위한 서울대 입학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학과측은 최근 전과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수혜대상 후순위를 배정하는 등 내규를 만들어 이탈 방지에 나서기 까지 했다.

새정부의 원전정책 폐기로 위기를 겪는 학과도 있다. 원전을 '수출효자'로 육성하려던 정부 정책이 불과 5년만에 뒤집히자 원자핵공학과 교수·학생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지난 1959년 공대 11번째 학과로 설립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국내 원자력 관련 학과의 효시로 꼽힌다. 새 정부가 '탈원전' 기조로 들고 나온 이후 50여년 전통의 학과 내부에서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해 후기 대학원 박사 모집에는 5명 모집인원에 단 1명만이 지원했고 석·박 통합과정의 경우에도 37명 모집에 11명만이 지원해 한참 미달됐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당장 입시 수치로는 나오지 않지만 정책이 계속 진행되면 내년부터는 확연하게 숫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황용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은 "탈원전 기조는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고 공과대학 학생들에게도 사기저하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조선·건설·원자핵 등 소위 '아랫공대'의 있는 전공분야들은 사실 우리나라 산업의 기반이 된 기간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지만 정부가 그런 부분을 신경을 많이 안 쓰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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