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혀가 얼얼·귀가 사각사각..이거 별미네

2017. 9. 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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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 대가 신계숙 교수의 중식 예찬
"유가사상을 이해해야 그 맛 제대로 알아"

[한겨레]

깐풍닭날개(干烹?翅). 박미향 기자

“뻑뻑한 살을 왜 먹어요? 맛없어요.” 지난달 배화여자대학교 신계숙(53) 전통조리학과 교수는 서울 후암동 자신의 쿠킹 스튜디오로 지인들을 초청해 한 상 떡하니 중식을 차리고 재미난 얘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호남고추생선찜’(?椒??)은 모양부터 남달랐다. 여느 생선찜과 달리 몸통이 없고 머리와 꼬리만 있었다. 자고로 미식가라면 몸통보다는 머리를 즐긴다고 그는 말했다. “자 따라 해 보세요. 뻐끔뻐끔!” 그는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볼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 했다. “이 부위(볼)가 생선은 가장 맛있어요.” 그의 미식론은 별나다. 탱탱한 생선 몸통을 먹지 말라니! 횟집에서 버리기 일쑤인 머리가 제일 맛있다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이 모양이 흉하죠? 칼로 썰면 2~3㎜ 정도가 되는데 보기엔 좋지만 씹는 맛은 없어요. 만두피 만드는 밀대로 두들겨서 오이를 분질렀어요.” 그가 솜씨를 발휘한 ‘오향닭다리냉채’(五香鷄腿)의 오이는 모양이 삐뚤삐뚤했다. 불규칙한 오이의 단면을 씹자 중국 벌판을 달리는 장수의 거친 숨소리가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이어 청량한 오이의 즙이 시원한 바람처럼 다가왔다. “바람이 나라고” 닭날개로만 만든 깐풍기(干烹?翅)는 일반 중국집의 그것과는 달랐다. 흥건한 녹말소스가 없었다. 신 교수는 “‘마르게 조리하다’가 ‘깐풍’의 뜻”이라며 “고추 등을 넣어 만든 나만의 소스로 바삭하게 익혔다”고 했다.

당일 그의 음식을 맛본 음식전문 잡지 <쿠켄>의 이은숙 편집장은 “장안에 내로라하는 중식당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맛”이라며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된 중국 음식이 아니라 중식의 원형을 접한 듯했다. 특히 깐풍기는 기존에 먹었던 것과 비교해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고 평했다.

호남고추생선찜(?椒??). 박미향 기자
족발(猪蹄). 박미향 기자

지난 7일 그를 다시 만나 이런 깊은 맛의 비결을 물었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밀가루도 박력분, 중력분을 섞어보고 돼지고기도 신선한 것만 잘 골라 사죠. 재료가 좋으면 음식은 60%가 완성된 셈입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중국 청대의 시인 원매가 쓴 <수원식단>을 번역하는 등 오랫동안 천착한 중식 연구 위에 형성된 것이다. ‘요리는 깊은 맛이 나야 하지만 느끼해서는 안 되고 맛은 담백해야 하지만 싱거워서는 안 된다.’ 책에 있는 글귀다. 마치 운율이 잘 맞는 한시 한 편 같다. <수원식단>은 음식을 매개로 한 철학책 같다. “중식은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출발해 맹자, 순자로 이어진) 유가사상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 그는 한 사례로 쓰촨 지방의 음식 ‘어향육사’(魚香肉絲. 어향소스로 볶은 돼지고기)를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어향육사를 설명할 때 ‘무생중유’(無生中有)라 말해요. ‘없는 것 가운데서도 만들어 낸다’라는 뜻인데 쓰촨은 바다가 없는 지역이죠. 그런데도 ‘어향’(바다·생선 향)을 만든다는 거죠. 지금 세상은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많으나 진정 음식이 무엇이고 맛의 의미를 아는 이는 적어요.”

지금 한국인들의 중식에 대한 인식도 그는 안타깝다. “짬뽕을 파스타만큼 정성스럽게 만들어도 2만원을 부르면 먹지 않아요. 중식은 으레 인공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싼 음식이라고 생각하죠.” 그는 중식만큼 건강을 잘 챙길 수 있는 음식도 없다고 한다.

삼선누룽지탕(三??巴). 박미향 기자
짜장고기(京?肉?)를 넣은 빵(花卷). 박미향 기자

우리 중식은 탕수육, 라조기, 깐풍기 등 산둥지역 음식이 대부분이다. 이 지역은 날씨가 매우 추워 열량이 많은 튀김류가 발달했다. 베이징, 쓰촨, 광둥 등 중국의 여러 지역은 자연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어쩌면 우리는 코끼리 뒷다리만 잡아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꼬치도 인기 외식 메뉴로 등극하는 등 변화의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고 있다. 마라탕(麻辣?)도 그중 하나다.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마라탕은 요즘 20대들이 손에 꼽는 스트레스 해소용 먹을거리다. “쓰촨 지방 맛의 상징 같은 음식”이라며 “중국 어디를 가도 파는, 우리네로 치면 비빔밥 같은 대중 음식”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국내에서 여성으로는 드물게 중식당 주방 보조부터 시작한, 30년 경력의 대가다.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시골에서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남자들 득실거리는 데를 왜 가느냐면서 야단을 심하게 맞았죠.” 충남 당진이 고향인 그는 단국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다. 하늘처럼 모셨던 교수는 “중식은 중국을 이해하는 최고의 창”이라고 했다. 그 영향으로 졸업 후 중식 대가 이향방의 ‘향원’에 취직했다. 말이 취직이지 일용직과 다를 바 없었다. 그가 뜨거운 김과 불길이 솟구치는 주방에 첫발을 디딘 1987년엔 대한민국 중국집 주방 어디에도 여자는 없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대졸자가 중국집 주방 보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대학에 진학한 그는 가족의 기대주였다.

“친구들이 출가를 할 때 나는 가출을 한 셈이죠.” 그는 “대학까지 나온 여자가 우리 밥줄을 끊으러 왔다”는 둥 모진 소리를 들으면서도 버텼다. 청바지 두 개로 4계절을 보내고 하루 14시간 양파를 까고 설거지를 했다. 어깨너머로 요리법을 배울 요량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면 주방장은 냉큼 하던 일을 멈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격의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주방장이 ‘돼지고기를 이만큼 집으면 탕수육 한 접시 양이야’ 하는 겁니다. 드디어 인정받은 거였죠.” 중식의 꽃, 불판을 맡았던 그는 “웍(중식 프라이팬) 위로 튀는 불꽃을 보면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고된 노동을 버텨낸 힘은 황홀하고 붉은 웍이었다.

전복찜(豆?蒸??). 박미향 기자
고구마맛탕(拔?地瓜). 박미향 기자

8년을 일하고 향원을 그만둔 그는 서른 한 살에 대학원에 진학해 대만, 중국 상하이 등에서 수학 등 공부에 매달렸다. “달걀흰자를 입혀 튀기면 왜 바삭해지는지 궁금했죠. 하지만 주방장에게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하라면 해’라고 핀잔만 들었어요.” 결국 맛의 원리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이 현재의 ‘선생 신계숙’을 만든 셈이다. 1998년 그는 지금의 대학에 임용됐다. 교육자로서 그의 철학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네(제자)가 나를 먹여 살리니 나는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 먹고살게 해주겠다.’

앞으로 그는 “제대로 된 중식 연구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철학적으로 중국 음식 보기’를 파볼 생각”이라고 한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신계숙 교수가 알려주는 복잡한 중식 메뉴판 보는 법
신계숙 교수. 신계숙 제공
주문할 때 주재료를 먼저 선택한다. 주재료에 ‘고기 육’(肉) 자 한 글자만 있으면 돼지고기이다. 육 자 앞에 어떤 동물이 오느냐에 따라 주재료가 달라진다. ‘우’(牛)가 오면 쇠고기, ‘양’(羊)이 오면 양고기, ‘토’(兎)가 오면 토끼고기이다. 단 ‘향기 향’(香)이 붙은 ‘향육’(香肉)은 개고기이다. ‘계’(鷄)는 닭고기인데 ‘전계’(田鷄)는 닭이 아니고 개구리이다. 두 번째 선택할 것은 조리방법이다. 조리방법을 나타내는 글자는 주로 ‘불화(火) 변’으로 시작된다. ‘불화’ 오른쪽에 어떤 글자가 오느냐에 따라 조리방법이 달라진다. ‘차오’(炒)는 기름을 소량으로 넣고 강한 불에 빨리 볶는 조리법, ‘젠’(煎)은 기름을 조금 두르고 약한 불에 오래 익히는 조리법, ‘사오’(燒)는 재료를 익혀서 조리는 조리법으로 이 세 가지 조리법은 기름을 조금 넣어서 만드는 요리이다. 느끼하다고 생각되면 이 글자들이 없는 것을 선택한다. 조리방법 중 ‘정’(蒸)은 물을 끓인 다음 수증기에 익히는 조리법이고 ‘바이줘’(白灼)는 물을 끓여서 익히는 조리방법이다. ‘자’(炸)는 튀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장면은 춘장을 튀겨서 만든 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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