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핵발전소가 세계 최고라는데..왜 잘 안팔릴까요?
국내 개발 3세대 핵발전소 APR1400
핵심기술 국산화 UAE에도 수출
"탈핵 바람으로 세계시장 진출 어려워"
핵심설비 원자로 특허는 미국회사에
격납고 '한 겹' 미국·유럽 기준과 달라
"수출엔 다른 변수 많아 국내정책 영향 미미"
[한겨레]
우리나라는 수출 신화와 과학기술 신화에 상당히 민감한 편입니다. 둘 다 ‘애국’이란 관념으로 연결되곤 해서입니다. 핵발전소의 경우 이 두 가지가 모두 녹아 있다 보니, APR1400의 부족한 부분이나 2009년 아랍에미리트 수출이 가능했던 ‘특수한 조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개발과 수출 전후 사정을 잘 아는 학계나 업계의 인사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고요. 그럼에도 APR1400과 관련해 입을 연 몇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이번 ‘이것이 궁금하다’에서는 이들이 설명하는 APR1400 기술력과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수준을 종합해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기술력 국산화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냉각제 펌프와 계측제어시스템 등 몇 주요 설비가 국산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APR1400을 만들던 당시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이라는 회사에서 기술을 이전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장 핵심 설비라고 할 원자로의 특허는 미국, 좀 더 정확하게는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이 매각된 도시바-웨스팅하우스에 있습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APR1400을 팔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근 핵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APR1400을 혹시 팔게 된다면 미국 쪽에서 특허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PR1400의 안전성은 어떨까요. 업계에서는 방사능의 외부 유출을 막아주는 격납고의 두께를 15㎝ 늘려 두껍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나 규모 7.0의 지진도 버텨낼 수 있다고 하고요. APR1400이 미국의 핵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1차(안전성 평가)를 통과했다는 점도 늘 거론됩니다. 그러나 APR1400인 신고리 5·6호기의 격납고는 유럽형 핵발전소(EPR)나 미국의 신규 핵발전소들과 달리 격납고가 ‘한 겹’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이중 격납고를 갖추고 있죠. 그런 까닭에 APR1400은 지난 2010년 올킬루오토 핵발전소를 짓고자 세계 여러 나라의 모델을 검토 중이던 핀란드 핵발전안전규제기관인 스툭(STUK)으로부터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건설비용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수출 당시에도 한국이 프랑스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받았다는 것은 정설입니다. 그런데 낮은 금액으로 수출한다는 게 꼭 좋은 일일까요? UAE 수출 때는 한국전력이 공사비의 절반 가량(당시 기준 약 12조원)을 한국이 28년에 걸쳐 아랍에미리트에 빌려주는 ‘이면계약’ 내용이 뒤늦게 알려져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수출실적을 내려고 무리하게 ‘퍼주기’ 계약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죠. 그리고 한국은 이때 핵발전소를 수출한 이후 수출실적이 1건도 없습니다.
끝으로 세계 핵발전소 시장은 기술 또는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인도나 이란은 러시아의 핵발전소와 함께 무기도 함께 사는 ‘패키지 계약'을 맺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로 사용 전력의 30~40%를 발전하는 조건으로 헝가리도 러시아 핵발전소를 샀습니다. 중국이 파키스탄에 2013년 핵발전소를 수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파키스탄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프로젝트에 중국이 45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양국 사이의 오래되고 긴밀한 경제·외교 협력이 있었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어떤 나라의 핵발전소를 살지 둘러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는 어떨까요. 박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대공미사일 에스(S)400 등 첨단무기를 러시아에서 살지 미국에서 살지에 따라 핵발전소 수입국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박 교수는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앙숙인 이란에 핵발전소를 수출한 상황을 미국이 활용할 수도 있다”며 “핵발전소를 팔려는 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조건이나 첨단무기 기술, 국제정세 상황 등을 패키지화해 장사에 나선다”고 말했습니다. APR1400의 기술력, 건설비용, 안전성, 그리고 국내 에너지 정책 방향 같은 것들만이 한국 핵발전소 산업의 경쟁력을 만드는 게 아니란 설명입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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