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핵발전소가 세계 최고라는데..왜 잘 안팔릴까요?

2017. 9. 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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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핵발전소 - 이것이 궁금하다④

국내 개발 3세대 핵발전소 APR1400
핵심기술 국산화 UAE에도 수출
"탈핵 바람으로 세계시장 진출 어려워"

핵심설비 원자로 특허는 미국회사에
격납고 '한 겹' 미국·유럽 기준과 달라
"수출엔 다른 변수 많아 국내정책 영향 미미"

[한겨레]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예정 부지 앞.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발전소 건설 중단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쟁이 뜨겁습니다. 쟁점은 건설 중단 찬반에 그치지 않고 발전소 건설의 타당성 문제에서부터 핵발전(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요금 등 에너지 정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합니다. 건설적인 토론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한겨레>는 몇 차례에 걸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및 핵발전소와 관련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한국형 3세대 핵발전소 ‘에이피아르(APR·Advanced Power Reactor)1400’. 한국 핵발전소 역사와 기술의 집약체라고들 합니다. 핵발전 업계는 1992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2300여명의 산업계 인력과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을 투입하고 5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만든 이 신형 경수로의 ‘세계적 우수성’을 늘 강조합니다. 냉각제 펌프, 계측제어시스템, 설계 핵심코드 등 핵발전소 3대 핵심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고, 설비용량을 140만킬로와트(㎾)급으로 키웠으며, 규모 7.0의 지진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미국·프랑스·일본 핵발전소에 견줘 건설비용도 30~40% 저렴하다고 하고요. 이명박 정부 시절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4기의 발전소와 건설 여부가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될 신고리 5·6호기도 APR1400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한국에서 탈핵 바람이 부는 통에 세계 시장에 더 내다 팔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주장, 과연 사실일까요?

우리나라는 수출 신화와 과학기술 신화에 상당히 민감한 편입니다. 둘 다 ‘애국’이란 관념으로 연결되곤 해서입니다. 핵발전소의 경우 이 두 가지가 모두 녹아 있다 보니, APR1400의 부족한 부분이나 2009년 아랍에미리트 수출이 가능했던 ‘특수한 조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개발과 수출 전후 사정을 잘 아는 학계나 업계의 인사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고요. 그럼에도 APR1400과 관련해 입을 연 몇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이번 ‘이것이 궁금하다’에서는 이들이 설명하는 APR1400 기술력과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수준을 종합해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기술력 국산화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냉각제 펌프와 계측제어시스템 등 몇 주요 설비가 국산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APR1400을 만들던 당시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이라는 회사에서 기술을 이전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장 핵심 설비라고 할 원자로의 특허는 미국, 좀 더 정확하게는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이 매각된 도시바-웨스팅하우스에 있습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APR1400을 팔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근 핵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APR1400을 혹시 팔게 된다면 미국 쪽에서 특허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PR1400의 안전성은 어떨까요. 업계에서는 방사능의 외부 유출을 막아주는 격납고의 두께를 15㎝ 늘려 두껍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나 규모 7.0의 지진도 버텨낼 수 있다고 하고요. APR1400이 미국의 핵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1차(안전성 평가)를 통과했다는 점도 늘 거론됩니다. 그러나 APR1400인 신고리 5·6호기의 격납고는 유럽형 핵발전소(EPR)나 미국의 신규 핵발전소들과 달리 격납고가 ‘한 겹’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이중 격납고를 갖추고 있죠. 그런 까닭에 APR1400은 지난 2010년 올킬루오토 핵발전소를 짓고자 세계 여러 나라의 모델을 검토 중이던 핀란드 핵발전안전규제기관인 스툭(STUK)으로부터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핀란드 핵발전안전규제기관인 스툭(STUK)이 2010년 세계 핵발전소 모델들의 중대사고 대책 수준을 평가해 낸 보고서. 한국의 3세대 핵발전소인 에이피아르(APR)1400에 대해서는 “하나의 여과식 격납용기 배기 설비를 갖추고 있어 핀란드 설계 요건에 부합하려면 중대사고 방지 설비가 더 강화돼야 한다. 원자로 용기 외벽 냉각의 안전한계(안전성)가 너무 작다”며 ‘설계 수정 필요’ 입장을 냈다.

건설비용이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수출 당시에도 한국이 프랑스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받았다는 것은 정설입니다. 그런데 낮은 금액으로 수출한다는 게 꼭 좋은 일일까요? UAE 수출 때는 한국전력이 공사비의 절반 가량(당시 기준 약 12조원)을 한국이 28년에 걸쳐 아랍에미리트에 빌려주는 ‘이면계약’ 내용이 뒤늦게 알려져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수출실적을 내려고 무리하게 ‘퍼주기’ 계약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죠. 그리고 한국은 이때 핵발전소를 수출한 이후 수출실적이 1건도 없습니다.

끝으로 세계 핵발전소 시장은 기술 또는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인도나 이란은 러시아의 핵발전소와 함께 무기도 함께 사는 ‘패키지 계약'을 맺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로 사용 전력의 30~40%를 발전하는 조건으로 헝가리도 러시아 핵발전소를 샀습니다. 중국이 파키스탄에 2013년 핵발전소를 수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파키스탄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프로젝트에 중국이 45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양국 사이의 오래되고 긴밀한 경제·외교 협력이 있었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어떤 나라의 핵발전소를 살지 둘러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는 어떨까요. 박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대공미사일 에스(S)400 등 첨단무기를 러시아에서 살지 미국에서 살지에 따라 핵발전소 수입국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박 교수는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앙숙인 이란에 핵발전소를 수출한 상황을 미국이 활용할 수도 있다”며 “핵발전소를 팔려는 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조건이나 첨단무기 기술, 국제정세 상황 등을 패키지화해 장사에 나선다”고 말했습니다. APR1400의 기술력, 건설비용, 안전성, 그리고 국내 에너지 정책 방향 같은 것들만이 한국 핵발전소 산업의 경쟁력을 만드는 게 아니란 설명입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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