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told] 포항의 분풀이와 강원의 한계.. 6강 모른다

배진경 입력 2017. 9. 21. 09:43 수정 2017. 9. 21. 10: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포투=배진경(포항)]

“한꺼번에 몰아넣으려고 그렇게 힘들었나 봐요.”

20일 강원전이 끝난 후 만난 포항 관계자가 엷게 웃었다. 저간의 마음고생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이날 포항은 강원에 5-2로 승리했다. 앞서 5경기에서는 저조한 득점력과 수비 불안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2무3패). 특히 지난 라운드 전북전은 악몽이었다. 홈에서 0-4로 무력하게 패했다.

전북전 패배를 분풀이 하듯 강원에 5-2로 승리했다. 포항이 상대 골문에 5골을 넣은 건 2012년 11월29일 서울전 5-0 승리 이후 5년여 만이다. 팀 통산 500승 고지도 넘어섰다. 대신 포항의 시름은 강원의 몫이 됐다. 남부럽지 않은 화력을 보유한 강원은 허술한 수비로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한꺼번에 실점을 적립하면서 리그 최다 실점(54실) 팀이 됐다. 감독 공석 체제가 길어지는 데다 수비 안정도 요원하다.

6강 경쟁 구도는 다시 긴장감을 갖게 됐다. 강원이 이겼다면 일찌감치 스플릿 상하 그룹이 구분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포항의 승리로 향방을 알 수 없게 됐다. 6위 강원(승점 41)과 7위 포항(승점 37)의 승점차는 4로 좁혀졌다. 여전히 강원이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두 팀을 둘러싼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정규라운드 남은 3경기 동안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 공격 대신 경험… ‘사생결단’ 최순호

“사생결단이다.” 강원전을 앞둔 최순호 감독의 각오였다. 평소 성향을 떠올리면 꽤 단호한 발언이다. 최순호 감독은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남에서 승패나 각론을 다루기보다 축구적 신념과 총론을 설파(?)하는 데 더 공을 들이는 쪽이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경기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눈 여겨봐야 할 선수로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한 수비수 권완규를 꼽았다. 배슬기의 파트너로 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수비에서는 확실히 경험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올바르게 이뤄졌다는 의미다.

포항은 최근 극도의 수비 불안에 시달렸다. 지난 7월 김광석이 사실상 시즌아웃되면서 대체자를 찾지 못했다. 신예 조민우를 비롯해 김대호, 이승희 등 수비수들이 줄줄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지난 전북전에 투입했던 안세희는 경험 미숙을 드러냈다. 수비가 흔들리니 공격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자원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최순호 감독의 선택은 권완규였다. 발 빠르고 힘이 좋은 권완규가 역시 발 빠르고 일대일에 강한 김광석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동시에 양 풀백 완델손과 강상우의 공격 가담을 자제시켰다. 최순호 감독은 “안전 위주의 플레이를 하자”고 현실적인 주문을 했다. 골문 앞 노동건에 다시 한 번 믿음을 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건도 전북전 대량 실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김진영, 강현무보다 경험이 많은 골키퍼다. 파격보다 안정을 유지하는 차원의 세밀한 변화로 강원전을 준비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배슬기-권완규가 기대 이상의 안정감을 보였다. 배슬기는 “오늘 승리 공신은 완규”라며 파트너에게 공을 돌렸다. 최순호 감독도 “오늘 정도라면 권완규는 사이드백보다 센터백이 나을 것 같다”는 말로 호평했다. 수비가 정돈되면서 공격에도 시너지가 났다. 측면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오버래핑하는 수비수와 동선이 겹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특히 심동운은 1골1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머리를 바짝 깎아 심기일전한 마음가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동운은 “선수들마다 각자 마음을 다졌을 거다.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스스로 준비하면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했다”라고 말했다.

한숨 돌린 포항은 6강에 진입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다. 그래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 심동운은 “오늘 대승한 만큼 새로운 각오로 주말 서울전을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배슬기는 “서울 원정 후 홈 경기가 두 번 남았다. 원정을 잘 치르고 홈에서 더 힘을 내 이기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정규라운드 최종전이면 김승대가 뛸 수 있다. 징계에서 해제된다. 재활 중인 김대호도 그 즈음이면 뛸 수 있을 전망이다. 최순호 감독은 “오늘 승리는 엄청난 결과”라며 “다시 한 번 초반과 같은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 강원, ‘소년가장’ 이근호도 지친다

강원은 위기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사령탑 공석 체제다. 사실상 공격수들과 베테랑들이 ‘하드캐리’ 중이다. 특히 주장 완장을 달고 있는 이근호는 매 경기 투혼을 발휘하며 동료들을 이끌고 있다. 이근호가 움직이면 반드시 결정적인 득점 장면이 만들어진다. 동료들에게 찬스를 열어줄 뿐 아니라 스스로 골도 넣는다. 그만큼 상대의 표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항전에서도 여러 차례 그라운드에 나동그라졌다. 왕성한 활동량과 체력이 강점인 선수라고 해도 집중 견제에 시달리면 지칠 수밖에 없다. 골을 넣고 지키기라도 하면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수비에서 버텨주지 못하니 매번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포항전에서도 김경중과 문창진의 연속골로 2-1 상황을 만들었지만 이후 내리 네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최근 5경기에서만 16실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실점 기록이 3골 이상이다. 주전 골키퍼 이범영은 심리적 부담을 호소했다. 포항전에서 강모근이 골키퍼 장갑을 낀 이유다. 강모근은 올해 입단한 신인이다. “23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 때문”에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강모근에게는 악몽같은 데뷔전이 됐다. 후반 30분부터 세 골을 연달아 내준 상황에서의 판단력은 사실상 경험 부족에 따른 부담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비라인을 전혀 통솔하지 못했다. 박효진 감독대행은 “내가 부족했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대행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말과 질 수 있는 책임은 많지 않다.


여기서 강원의 위기가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사령탑 공석에 대한 구단의 문제 인식이 지나치게 안일한 느낌이다. 감독 교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려놓고 정작 약을 내주지 않고 있다. 선수들에게 의존해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그마저 지금처럼 수비에서 버텨주지 못하면 승리와 멀어지고, 결국엔 골을 넣는 선수들마저 힘들어지는 분위기다. 대행 체제에선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위기 대처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엔 남은 3경기의 긴장도가 높다. 혹시나 ‘일단 정규라운드만 버티고 보자’라는 생각이라면, ACL 진출 티켓은커녕 6강 수성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분투를 벌이고도 반복된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선수들의 지친 표정이 팀 분위기를 대신한다.

사진=FAphotos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