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인수전의 판을 뒤흔든 애플, 반도체 수직 계열화 나서나

박성우 기자 입력 2017. 9. 21. 07:10 수정 2017. 9. 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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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시바(東芝)가 20일 이사회를 열고 SK하이닉스(000660)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 메모리(TMC·Toshiba Memory Corporation·가칭)’를 매각하기로 한 가운데, 이번 거래를 흔든 애플의 숨은 전략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미·일 연합이 애플을 끌어들인 것을 결정적인 승리 요인으로 본다.

블룸버그 제공

애플은 단기적으로 도시바메모리의 낸드 플래시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한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애플이 반도체 기술과 사업의 내재화로 제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포석을 깔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일 연합에는 베인캐피탈 이외에 SK하이닉스, 애플, 델, 시게이트, 킹스톤테크놀로지 등 한국과 미국의 IT(정보기술) 대기업들을 비롯해 일본 산업혁신기구(INCJ)가 참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약 2000억엔(약 2조252억원)을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해 참여한다. 인수액은 약 2조엔(약 20조2500억원) 수준이다.

◆ 폭등하는 낸드플래시...애플, 지분 투자 통해 거래처 확보

애플은 현재 도시바로부터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낸드플래시를 공급받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애플에 낸드플래시를 공급하지만, 가장 큰 물량을 공급하는 곳은 일본의 도시바다.

막판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올랐던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이 도시바메모리의 경영권을 차지할 경우, 애플은 낸드 플래시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WD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확장 중이다. WD가 경영권 확보를 통해 도시바메모리에서 생산하는 낸드 물량을 자사 SSD용으로 쓸 경우 애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비싼 값에 낸드를 사와야 한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부터 폭등했다.

한·미·일 연합은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의결권 있는 보통주(약 6000억엔), 의결권 없는 우선주(8500억엔), 대출(약 5500억엔)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SPC는 이렇게 모은 자금을 도시바메모리의 지분 100%를 사는데 사용한다. 애플은 여기에 30억달러를 투자해 안정적으로 도시바메모리의 낸드를 공급받겠다는 계획이다.

도시바메모리는 낸드플래시를 최초로 개발한 곳으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부터 SK하이닉스와 STT-M램(스핀주입자화반전메모리) 기술 개발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자성 변화에 따른 특성을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도시바는 조만간 64단 3차원( 3D) 낸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팀 쿡 애플 CEO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005930)(38.3%), 도시바(16.1%), 웨스턴디지털(15.8%), 마이크론(11.6%), SK하이닉스(10.6%), 인텔(7.0%) 순이다.

◆ 반도체 직접 투자 늘리는 애플...부품 내재화 시도

최근 애플은 반도체 하드웨어 기업으로의 변신도 꾀하고 있다. 지난 4월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아이폰 중요 부품인 GPU 공급사 영국 ‘이메지네이션 테크놀로지’(Imagination Technologies Group)와의 거래를 중단한 것이다.

그동안 애플은 이매지네이션의 ‘파워VR(PowerVR)’ GPU를 거의 모든 제품에 탑재시켜왔다. 지난 2009년 도입된 ‘아이폰3GS’부터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7’까지 모두 이매지네이션의 파워VR GPU가 장착됐다.

애플의 결정에 대해 “애플이 그래픽반도체 설계기술 독립을 선언한 것은 부품업체들에 의존을 낮추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기술혁신을 더 강화하겠다는 새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애플은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강력한 하드웨어 설계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설계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탑재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구동성능에서 이미 AP 전문기업인 퀄컴을 제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점유율도 퀄컴과 미디어텍에 이어 3위다.

퀄컴과 애플, 삼성전자 등은 모두 AP 설계에 영국 ARM의 설계기반을 받아 사용한다. 애플은 시장 초기에 ARM의 기술에 크게 의존했지만 현재는 기초적인 수준의 설계만 활용하고 있다.

애플이 설계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한·미·일 연합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도시바메모리의 지분을 원하는 기업으로는 SK하이닉스와 애플이 꼽힌다. SK하이닉스(000660)는 약 2000억엔(약 2조252억원)을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해 참여한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내부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장래에 취득할 의결권 지분 비율도 15%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플의 지분율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애플의 반도체 투자 의지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이 도시바메모리 투자액을 당초 30억 달러에서 70억 달러(7천억엔)로 증액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중 10억 달러는 자산, 60억 달러는 부채(융자)로 조달될 것이라는 보도다.

애플은 매년 엄청난 물량의 반도체를 소비하는 업체다. 필요한 반도체 부품을 언제든지 수급할 수 있도록 반도체 부문 수직계열화를 추구할 수 있다. 이 전략이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와 같이 시스템 반도체와 낸드플래시를 모두 확보해 강력한 시너지가 예상된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애플이 반도체 사업을 내재화하며 가격경쟁력과 제품경쟁력 확보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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