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풀뿌리 축구] (1) 덩치 컸는데 허약..유소년부터 살려라

양승남 기자 2017. 9. 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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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국 축구 이대로는 안된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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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선수들을 발굴해서 모든 연령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거스 히딩크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최근 한국 축구를 위해 건넨 조언이다. 아직도 커다란 이슈의 중심에 있는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감독 희망설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어쩌면 히딩크가 감독으로 오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하고 큰 화두다.

1골만 넣으면 6만 관중 앞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지난달 31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만 떠올려 보면 된다. 상대가 한 명 퇴장당한 수적 우위에서도 한국 축구는 어땠나. 붉은 바다를 이룬 안방 상암벌에서도 상대를 전혀 압도하지 못했다. 선수와 감독은 애꿎은 잔디 탓만 했다. 같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이란 선수들은 가볍게 볼터치하고 자신 있게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은 투박한 볼터치와 제대로 된 전진패스 없이 공격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이는 국가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최근 몰락 조짐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내심 4강까지 노렸던 20세 이하 월드컵은 홈에서 16강 진출에 그쳤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16세 이하(U-16) 대표팀도 아시아 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아시아 최강을 자부해온 프로축구 K리그는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에 단 한 팀도 오르지 못했다.

한국 축구는 모든 연령대에서 총체적 난관에 빠져 있다. 이제 아시아에서도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성인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연령대별로 기술을 끌어올리지 못한 한계에 봉착했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10여년간 연령별 청소년팀을 지도한 정정용 U-18 대표팀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기술과 창의성을 끌어올리지 못한 누적된 결과가 각 연령대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향신문과 스포츠경향은 경고등이 켜진 한국 축구의 현재를 돌아본다. 초등학교부터 중·고 학원 축구를 거쳐 프로무대까지 단계별로 집중점검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붕괴 직전’ 학교 축구부, ‘시스템 없는’ 클럽 축구

한국 축구 미래를 책임질 유소년 축구는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 초등리그에 출전하는 팀과 선수는 해마다 증가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은 더뎠다. 학교 축구는 붕괴 직전이고 클럽축구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 기술을 익히고 축구에 흥미를 느껴야 하는 유소년 축구의 뿌리가 단단히 내리지 못한 형국이다.

공부하는 선수 육성을 기조로 2009년 출범한 초등리그는 학교 축구부 210개, 클럽팀 56개로 시작했다.

등록선수는 6219명이었다. 2016년 11월 기준으로 초등리그에 참가하는 학교팀은 165개로, 45개교나 줄었다. 반면 클럽팀은 155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초등리그에 불참하는 클럽리그 팀도 308개(4868명)나 된다.

자원은 크게 늘었는데 수준급 선수는 줄었고 기술 성장도 더디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과거 엘리트 축구부를 자랑 삼았던 학교들이 이젠 축구부 유지를 꺼린다. 학교장들이 학내 문제와 사고 등을 우려해 축구부를 해체하고 방과 후 클럽에 돈을 받고 운동장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교가 학생 선수를 교문 밖으로 내모는 형국이다. 초·중·고 감독을 두루 경험한 장훈고 윤종석 감독은 “최근 학교 축구부는 학교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른들이 자신들 편하자고 축구하는 아이들을 내쫓는 상황”이라고 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도 학생 수가 많이 줄어 적정 선수 수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윤 감독은 “축구 중점 학교를 만들어 주변 몇 개 학교가 함께 연합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교육부, 문체부, 축구협회 어디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인천 석남서초등학교 축구부 염의태 감독은 “선수를 발굴하고 유지하는 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적을 못 내면 박봉의 계약직 감독은 언제든 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 가장 목을 매는 소년체전에서 성적을 내는 게 학교 축구부의 지상과제다. 성적을 내야 연명하는 감독은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는커녕 수비 축구와 뻥축구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성적을 내기 위해 6학년 위주로 출전시키면서 저학년들은 기량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다.

클럽 축구는 학교 축구보다는 제약이 적다. 미취학 아동부터 13세까지 연령대별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학교가 지역 학생만 받을 수 있는 반면 클럽 축구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런데 클럽 축구에 대해 축구협회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게 문제다.

유소년 클럽 다산FC 송종현 감독은 “독일 유소년 클럽들은 독일축구협회에서 내려온 프로그램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육받는다”면서 “우리는 지도자들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팀이 된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또 다양한 연령대별로 구성된 클럽팀이 즐기면서 뛸 수 있는 실전 무대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소년 클럽은 학부모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해 큰돈이 들어간다. 동시에 ‘돈줄’인 학부모의 입김으로 지도자들이 위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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