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의 길 찾기]발전소·고압선 지역의 희생..'생산 과정' 또한 비민주적

송윤경 기자 입력 2017. 9. 21. 06:00 수정 2017. 9. 2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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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인간·환경 모두 해치면 안돼…우리의 소비 태도 되돌아봐야”

우리가 쓰는 전기는 어디서 어떻게 올까. 전등 스위치를 켰을 때를 가정해 되짚어 보자. 각 가정과 공장에 공급되는 전력은 220V(가정용) 혹은 380V(산업용)다. 지역 곳곳의 배전선로엔 22만900V의 전기가 흐르는데, 동네 전봇대 등에 붙어 있는 변압기를 통해 전압이 낮춰져 공급되는 것이다. 전기는 배전선로를 흐르기 전에 크고 작은 변전소를 거친다. 전기의 탄생지인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를 이어주는 송전선로에는 76만5000V, 34만5000V, 15만4000V의 고압 전력이 흐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도권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전력의 40%를 사용하고 있다. 전력은 정작 해안가의 발전소로부터 만들어진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충남 당진, 태안, 보령에 밀집돼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서해안의 전남 영광, 동해안의 경북 울진, 경주 월성, 부산 기장군의 고리에 분포해 있다.

필요한 곳에서 전기를 생산해 쓰는 지역분산형 발전방식이 아닌 이 같은 중앙집중식 발전방식은 석탄·원전 발전소 밀집지역 주민, 고압 송전선로 통과지역 주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임모씨(58)는 “비가 내리면 고인 물에 검은 가루가 떠다니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그는 “마을에서 암 발병도 늘고 있지만 이제까지 제대로 된 조사는 없었다”면서 “이 나라에선 시골 사람 죽어가는 건 관심도 안 가진다”고 했다. 경주의 월성 원전으로부터 7㎞ 떨어진 감포읍에 사는 김모씨(45)는 “원전 같은 건 똑똑한 사람 없는 지역으로 가지 않느냐”면서 “사고 나면 여기 사람 죽는 건 기정사실이다, 포기하고 사는 거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로자룩셈부르크 재단은 에너지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에너지 생산은 환경이나 인간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에너지 생산은 사회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에너지 소비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는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협의체’ 참여를 계기로 확인하게 된 한국의 전력정책 실태를 고발한 책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를 통해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낳지 않는 ‘착한 전기’를 쓰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며,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소와 고압 송전선로 통과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전기는 과연 민주적인가. 에너지 공론화 국면을 맞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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