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주식거래엔 솜방망이, 감독 대상엔 과태료 폭탄

김동욱 입력 2017. 9. 21. 04:42 수정 2017. 9. 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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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서 드러난 금감원 실태

불법 주식거래 직원 인사조치만

학력 허위 기재해도 최종 합격처리

금융사 돈 받아 살림 꾸리면서도

방만한 경영 일삼고 본업 도외시

20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드러난 ‘금융경찰’ 금융감독원의 민낯은 금감원 스스로가 평소 강조하던 ‘선량한 감독자’와 거리가 멀었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민간인으로 구성돼 정부의 엄격한 관리를 받지 않는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의 특성을 이용해 방만 경영과 제 밥그릇 챙기기엔 너그러우면서도 정작 본업인 금융사 감독이나 소비자보호 업무엔 소홀했다는 비판이 높다.

잇단 채용비리

감사원이 적발한 53건의 위법 사항 가운데 특히 충격적인 건 불과 얼마 전 변호사 특혜채용으로 곤욕을 치렀던 금감원이 또 다시 정직원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2015년 5급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필기전형 불합격자를 붙이기 위해 채용인원을 고의로 늘리고, 예정에 없던 ‘세평(평판조회)’을 실시하면서 정작 평가결과는 제멋대로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감원의 채용 과정엔 곳곳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금감원은 최종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예비 합격자를 대상으로 느닷없이 세평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 합격 예정이던 3명이 탈락했다. 경영학 분야에서 평가점수 4위로 넉넉히 합격이 예상됐던 A씨는 세평 조회 후 “정직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탈락했다. 앞선 최종 면접에서 다니던 회계회사를 그만둔 이유로 “일이 힘들어서라”고 답했던 A씨가 세평 과정에선 “결혼 때문에” 퇴사했다고 하자 금감원은 A씨가 입사지원서에 결혼사실을 감추고 미혼으로 기재해 정직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학력을 거짓 기재한 B씨는 최종 합격했다. 감사원은 “대학 허위 기재는 놔두고 오히려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혼인 여부는 문제 삼은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세평으로 합격자가 바뀌면서 애초 합격 예비후보에도 끼지 못했던 C씨가 추가 합격하는 일도 발생했다. 금감원은 C씨를 합격시키는 과정에선 세평도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다른 후보보다 성적이 뒤처진 지원자를 합격시킨 건 어떤 동기가 없이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내로남불’ 주식거래

금융사 검사ㆍ감독으로 각종 비공개정보를 접하는 금감원 직원들에겐 주식거래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금감원 직원은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증권사 임직원과 마찬가지로 본인 명의 계좌로만 주식거래를 해야 하고, 분기마다 거래 현황을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감사에선 무려 50명의 금감원 직원이 불법 주식거래로 적발됐다. 한 직원은 장모 명의 계좌로 2013~2016년 사이 7,244회에 걸쳐 734억원 어치 주식을 사고 팔았다. 원칙적으로 소유가 금지된 비상장주식에 투자한 직원도 32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이렇다 할 내부통제 시스템 없이 직원들의 자진 신고에만 의존했고 규정을 어긴 직원에게도 인사조치 정도만을 가했다.

이는 금감원이 감독 대상 금융사 직원에 내린 ‘엄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2013~2015년 사이 31개 금융사를 상대로 주식 자기매매 규정 준수 여부를 조사해 161명에게 과태료 34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었던 셈이다.

방만경영에 본업은 소홀

금융사 건전성엔 추상같던 금감원의 지나치게 방만한 경영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금감원의 전체 직원 1,927명 가운데 관리직(1~3급) 비중은 무려 45.2%(871명)에 달한다. 이는 정부 기관의 관리직 비율 기준(9.9%)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관리직이 차고 넘치다 보니 심지어 1,2급 직원 중 63명은 ‘무보직’ 상태다.

하지만 금감원은 지난해 이처럼 ‘노는’ 인력을 놔둔 채 민원처리 인력이 부족하다며 255명의 ‘정원 외 인력’을 추가로 뽑았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금감원 예산은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의 올해 수입예산(3,666억원)은 작년 대비 12.6%(410억원)나 급증했다. 일반 정부기관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예산 증가율이다. 감사원은 “금감원의 8개 국외사무소가 수집한 정보의 98.2%는 인터넷 등으로도 수집 가능한 정보인데, 금감원은 주재원 자리를 계속 늘리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본업인 감독 관련 업무에선 구멍이 허다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지난해 3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34.9%에서 27.9%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대출만기를 편법 연장하려는 대부업체, 저축은행을 상대로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근거가 약한 제재도 남발했다. 금융사 임직원이 금융과 무관한 형법 등을 위반한 경우, 현행 은행법에선 이를 제재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지만 금감원은 최근 3년간 형법 등 위반자 39명에 대해 은행법상 포괄규정을 근거로 제재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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