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돈 안 되는 잡지로 41년 .. '고연비' 구조로 버텼죠

이지영 입력 2017.09.21. 01:02 수정 2017.09.21. 06:42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내달 500호 월간지 '춤' 조은경 주간
'조그만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 철학
84쪽짜리 작은 흑백 판형으로 시작
무용을 예술로 인식시키는 데 한몫
‘춤’ 사무실에서 만난 조은경 주간. 1976년부터 매달 발간한 ‘춤’이 뒤 책장에 꽂혀있다. [최정동 기자]
우리나라 무용 평론의 지평을 연 월간지 ‘춤’이 다음 달 통권 500호를 낸다. 1976년 3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41년 8개월을 이어온 결과다. 18일 서울 동숭동 ‘춤’ 사무실에서 조은경(54) 주간을 만났다.

조 주간은 ‘춤’을 창간한 고(故) 조동화(1922~2014) 선생의 며느리로, 2001년부터 ‘춤’ 제작에 참여해왔다. 조 선생 작고 후 ‘춤’ 발행인은 선생의 외아들이자 조 주간의 남편인 조유현(56) 출판사 ‘늘봄’ 대표가 맡고 있다.

“내 월급은 없다고 보면 된다”

‘춤’ 500호 표지
‘통권 500호’는 광고주가 될 주변 산업이 거의 없는 무용계 현실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은 기록이다. 조 주간은 “경영이 어렵긴 하지만 적자를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춤’이 작고 가볍게, ‘연비’가 좋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춤’은 창간호 때부터 줄곧 흑백 신국판(가로 15.2㎝, 세로 22.5㎝)의 소박한 판형을 유지한다. ‘조그만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는 창업자의 철학이 반영된 형태다. 84쪽 분량의 창간호 정가는 350원. 최근엔 160쪽 안팎으로 만들어 5000원씩에 판다. 사옥도 작다. 대지 면적이 채 33㎡(10평)도 안되는 자그마한 2층 벽돌 건물이다. 1층은 ‘춤’이, 2층은 ‘늘봄’이 사용한다.

가족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인건비 부담도 가벼워졌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조 주간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의류회사 마케팅 담당 등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2001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시아버지의 권유로 ‘춤’에 발을 담그게 됐다. 당시 편집장(김경애 현 ‘댄스포럼’ 발행인)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공석인 된 자리를 조 주간이 맡은 것이다. “내 월급은 없다고 보면 된다”는 조 주간은 “권두시·좌담·살롱·해외논단 등의 꼭지들이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전히 춤 평론과 춤 문화 발전에 필요한 콘텐트다. 500호를 준비하며 과월호들을 쭉 살펴보니 ‘그대로만 유지해도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백남준·천경자·육완순 등 쟁쟁한 필진

‘춤’ 창간호.
‘춤’은 무용을 예술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조 주간은 “당대 각 분야 최고의 권위자들을 ‘춤’ 필자로 끌어들여 춤 애호가로 만들면서 춤을 한낱 놀이쯤으로 생각했던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또 무용 평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 시작된 ‘춤’은 평론가 양성의 산실이 됐다. 현재 춤 평론가로 왕성히 활동 중인 이순열·김경애·이종호·성기숙·이동우·장광열·심정민·박민경 등이 모두 ‘춤’을 통해 등단했다. 춤의 기록화·역사화에도 ‘춤’의 역할이 컸다. 조 주간은 “‘춤’ 창간 이후 우리 춤의 기록이 시작됐다. ‘춤’ 한 권을 내기 위해 수백 점의 자료들이 모였다”고 짚었다. 그렇게 모인 공연 포스터와 사진 등 수만 점의 자료는 “학자가 갖고 있는 게 맞다”는 창업자의 뜻에 따라 2006년 춤자료관 ‘연낙재’(대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모두 기증됐다.

현재 ‘춤’의 시급한 과제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창간호부터 전체 ‘춤’에 수록된 기사·칼럼의 제목은 인터넷 홈페이지(www.choom.co.kr)에서 검색 가능하지만, 본문 내용은 100여 권밖에 볼 수 없다. 조 주간은 “3년 전부터 한 달에 과월호 한 권씩 입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춤’은 ‘10주년’ ‘300호’ 등 숫자에 맞춘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다. 500호 발간 기념 행사도 없다. 대신 이번엔 창간호 때부터 실어온 칼럼 ‘춤이 있는 풍경’을 묶어 단행본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백남준·천경자·서세욱·장욱진·이대원 등의 화가들이 ‘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춤에 대한 단상을 적은 코너다.

또 그동안 ‘춤’에 실린 피천득·조병화·서정주·박목월 시인 등의 권두시 20여 편과 육완순·국수호·문훈숙·배정혜 등 무용가 100여 명의 글도 책에 함께 실린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