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전관' 출신 금융지주 대표 청탁받고 탈락자 구제
감사원, 수석부원장 등 고위 간부 3명 수사 의뢰
전문직원도 '전관' 우대..명단 없던 지원자 합격도
[한겨레]
금융감독원이 ‘전관’ 출신인 한 금융지주회사 대표의 부탁을 받고 필기시험 탈락자를 합격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구제하는 등 채용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감사원은 20일 금감원 기관운영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채용비리에 연루된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이병삼 부원장보 등 고위 간부 3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국장급 고위 간부들을 면직 등 중징계 하도록 금감원에 요구했다.
감사원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2016년 5급 직원 채용 당시 금융감독당국 고위 임원을 지낸 금융계 고위 인사의 부탁을 받고 필기시험에 탈락한 ㄱ씨를 필기전형 합격 대상 인원을 늘려 구제한 뒤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수법으로 최종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금융계 고위 인사는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총무국장 이아무개씨는 ㄱ씨가 필기전형 합격 대상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은 뒤 ㄱ씨가 응시한 분야를 포함한 3개 분야(경제·경영·법학) 채용 예정인원을 각 1명씩 늘리라고 지시했다. 경제학 분야에 지원한 ㄱ씨는 필기시험 결과 23등으로 채용예정 인원 11명의 2배수인 22명에서 벗어나 탈락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전 국장의 지시에 따라 필기를 통과했고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최종 합격했다. 면접에서 이 전 국장은 ㄱ씨에게 10점 만점에 9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한 국책은행 고위 간부의 아들로 알려졌다.
이 전 국장에게 부탁 전화를 한 금융지주사 대표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 고위 임원을 지낸 금융계 인사”라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이 금융지주사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한겨레>에 “이 전 국장에게 채용과 관련해 전화한 사실이 전혀 없다. 감사원에서도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부원장보였던 김수일 부원장은 채용인원을 늘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이를 허용했고, 서태종 수석부원장은 이를 그대로 결재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2차 면접 후 서 수석부원장은 이 국장 등으로부터 합격자를 대상으로 ‘세평'을 조회하자는 말을 듣고 당초 계획에 없던 세평을 조회하도록 해 3명을 탈락시키고, 지원분야도 다르고 예비후보자보다 후순위자를 합격시켰다”고 밝혔다. 앞서 김 부원장은 금감원 변호사 채용 과정에서 전직 국회의원 아들에게 특혜를 준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
감사원은 또 금감원이 2016년 상반기 민원처리 전문직원 40명을 채용할 때도 금감원 출신에게 유리하게 서류를 수정하는 등 자의적으로 합격자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병삼 당시 총무국장은 실무자들이 불합격 처리한 금감원 출신 지원자에 대해 “금감원 출신들은 경력기간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사람들만 경력기간을 수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금감원 출신 3명은 서류전형에 합격했고, 이후 면접 등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이날 “채용 과정 전반을 재검검해서 중앙정부 수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 민간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티에프에서 10월말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춘재 이순혁 김경락 기자 cjlee@hani.co.kr
1~3급 관리직이 전체 45%나 차지
연봉 1억3천만원 넘는 무보직 63명
방만 운영 배경엔 금융위 묵인도 금감원의 방만한 예산·조직운영도 도마에 올랐다. 직원 1927명 가운데 관리직인 1~3급이 45%(871명)를 차지했고, 1·2급 가운데 무보직 팀원이 63명에 달했다. 1급 무보직자의 연평균 급여는 1억4600만원, 2급 무보직자 평균 급여는 1억3400만원에 달했다. 정식 보직처럼 업무추진비·직무급이 지급되는 유사직위 43개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방만한 운영이 이뤄진 배경에는 금융위 묵인과 금감원의 ‘제멋대로’ 예산 편성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은행·보험사·증권사 등으로부터 징수하는 감독분담금이 예산 대부분(올해 80%)을 차지하는데, 지난해 2489억원에서 올해 2921억원으로 432억원(17.3%)이 증가하는 등 최근 몇년 동안 10%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독분담금을 부담금관리기본법상 부담금으로 지정해 외부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하는데 금감원과 금융위 모두 반대한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방만한 운영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담금으로 지정되면 기획재정부 장관 심사를 받아 요율을 조정해야 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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