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보다 더 사랑받은 퍼스트레이디

파이낸셜뉴스 2017. 9. 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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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성공을 이끈 절대적 조력자에서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운동가 모습까지
'영부인의 전형'을 깬 미셸 오바마의 인생

오바마의 성공을 이끈 절대적 조력자에서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운동가 모습까지
'영부인의 전형'을 깬 미셸 오바마의 인생

미셸 오바마(왼쪽)는 '영부인'이라는 이름표를 뗐지만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AP연합뉴스
시카고 변두리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퍼스트레이디로, 미셸 오바마는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 감각과 솔직한 행동, 헤어스타일과 패션 모두가 화제가 된다. 그의 연설은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 수천건을 넘겼고, 노래를 부르면 해당 음원 판매량은 '대박'을 터트렸다. 미셸이 퍼스트레이디로 입은 옷 189벌을 만든 의류회사는 3800만달러의 주가 상승효과를 봤다는 조사도 나왔다. 이 모든 것이 '미셸 오바마 효과'다.

남편인 버락 오바마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지적인 연설가, 흑인.여성.아동 등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운동가, '소통의 여왕'으로 퍼스트 레이디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연임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 미셸 오바마의 공이 대단히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처복을 타고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미셸은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기까지 절대적인 조언자이자, 냉정한 균형추 역할을 한 동반자였다. 때때로 사회적 성공의 이면에는 가정 불화라는 암초가 존재하지만, 오바마 가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오바마 가족은 미국 사회의 건강하고 모범적인 가정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야망을 키우던 시절부터 퇴임까지 오바마 가족이 모범 가정으로 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이 책은 시카고 변두리의 흑인 소녀, 어려운 환경 속에도 학업을 모범적으로 마치고 사회운동가를 거쳐 영부인이 된 미셸 오바마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버락 오바마가 두번째 임기를 지내던 2015년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던 이 책은 미셸이 가진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단순히 미셸에 대한 칭찬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아이비리그 출신 흑인 여성으로서 미셸이 갖는 위상과 미묘한 관계까지 세심하게 다루면서 더욱 풍부하게 미셸 오바마의 삶을 조명한다.

미셸 오바마
피터 슬레빈 / 학고재

저자는 시카고 흑인 구역인 사우스사이드부터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오늘날의 미셸 오바마를 만든 모든 시공간을 촘촘하게 추적했다.

미셸 오바마는 그 누구보다 세련된 영부인, 불평등에 깊이 관심을 기울인 영부인으로 불린다. 가난한 흑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미셸은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충분히 성공한 이다.

집안 환경이 좋다거나 특별한 노력 없이 많은 것을 이룬 운 좋은 케이스는 아니다. 책을 보면 미셸은 지독한 공부벌레였다. "미셸은 늘 공부했어요. 밤 11시나 12시까지 앉아서 숙제를 했어요"라고 그의 오빠 크레이그가 밝힐 정도로 미셸은 노력파였다. 집이 복잡하고 시끄럽다며 종종 새벽 4시 반이나 5시에 일어나 공부할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변호사가 됐지만 미셸은 영부인이 되기 전에 막대한 연봉을 받던 변호사 일을 때려치운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청년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 흑인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대변하기 위해 각종 조직을 이끄는 것이었다.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열정적인 활동은 백악관에서도 이어졌다. 퍼스트레이디로서 미셸은 공평하게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청소년과 불우한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런 삶의 발자취가 있었기에 그가 외치는 인종, 여성, 아동, 빈민 등 약자들의 인권과 권리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미셸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특히 그간의 많은 퍼스트레이디가 보여줬던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 건전한 시민의 롤모델을 백악관에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제 '영부인'이라는 이름표를 뗐지만, 여전히 사회운동가, 법률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모두가 잘 사는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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