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 손가락질에 무릎꿇고 읍소했는데.. 이런 날 올 줄 몰랐어요"
동대문구 제기동에 안착한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훈련센터
'혐오시설' 비난 지역사회와 접촉면 늘려가며 극복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강서구 특수학교 학부모들처럼 우리도 무릎 꿇고 읍소했었는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는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별관에 문을 연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전용 진로·직업훈련시설이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고1·2학년 발달장애 학생 및 전공과 과정 해당(고교 졸업 후 1~2년 과정) 발달장애인들에게 취업을 위한 각종 실무와 면접 등을 체험 위주로 교육한다.
이곳 역시 여느 장애인 시설과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들이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반대했던 까닭에 안착하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난 2015년 7월 설립 계획이 승인된 이후 6차례에 걸친 지역 주민 대상 설명회와 간담회에서는 고성이 오가며 격렬한 갈등이 이어졌다.
최근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열린 주민토론회에서처럼 장애학생 학부모가 무릎을 꿇었던 일도 이 곳에서 먼저 일어났다. 지역 주민들은 이를 '쇼'라며 무릎을 꿇고 맞선 것도 이 곳이 먼저였다. 설립이 추진될 당시 부산의 한 발달장애인이 2살 아이를 3층 건물에서 던져 사망케 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악재였다. 설립 부지에는 유모차부대가 등장해 '아이 죽는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설 경우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문도 돌며 주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지만 반대는 계속됐다. 센터 담장에는 설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효성 센터장은 이를 일종의 두려움이라고 진단했다. 주민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그동안 장애인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지내고 관련 업무를 하면서 너무 장애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며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히 갖춰야할 소양이라는 식의 불편함을 강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발달장애인들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녹아들기 위해 지역 사회와의 접촉면을 늘려갔다. 인근 정릉천과 노인정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 주민 대상 행사를 열었다. 동부시립병원에서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음악회도 열었다.
주민들의 요구도 반영했다. 당초 90명으로 계획한 정원도 70명으로 줄이고, 연령 제한도 40세에서 25세 이하로 낮췄다. 장애인들이 자가차량을 이용해 센터를 오갈 경우 교통혼잡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기로 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발달장애인훈련센터는 더 이상 '외딴 섬'이 아니었다. 지난 5월에는 담장에 붙어있던 반대 현수막도 내려갔다. 인근 지역 대학생과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그린 벽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던 주민 대표도 마음을 열었다. 센터의 소식을 구청 소식지에 서로 알리려 들었고,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갖다 주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들어서지 못했던 센터 안내 표지판도 최근 제기동역 인근에 세워졌다. 센터 인근에서 H부동산을 운영하는 문모씨는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는 쑥 들어갔고, 실제 집값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 중학생들과의 마찰 등 주민들이 우려한 모든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우가 됐다.
센터는 이제 어엿한 발달장애 전문 직업훈련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11개의 체험실을 비롯해 각종 이론 및 면접 훈련, 상담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실무에 가까운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바리스타로 취직하려는 이들은 체험실 내의 가상 매장에서 직접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 제공하는 식이다. 의류매장, 우편배달물취급소, 간병실 등 실제와 흡사한 환경 역시 마련됐다.
설립된지 1년여에 불과하지만, 이미 많은 장애인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9월 현재 직업체험 기본과정과 심화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모두 763명이다. 실제 현장에 취업한 이들도 18명에 달한다. 학부모와 특수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에도 약 800명이 참여했다.
서울 센터의 슬로건은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다. 이 센터장은 직업교육을 더욱 내실화하고 다양한 직무에 대한 교육을 제공해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에 발을 디딜 기회를 늘려갈 계획이다.
이 센터장은 "이제서야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주는구나 싶었고, 이런 날도 오는 구나 싶다"며 "비구름이 지나면 해가 뜨는 것처럼,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에 스며들어 함께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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