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금융시스템 초연계성 탓.. 美 양적완화, 주변국엔 毒 되기도

기자 2017. 9.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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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4월 27일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미국 워싱턴 연준 본부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한 것은 97년 만에 처음이었다. 자료사진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⑧ 금융위기 10년의 교훈

#1. 미 중서부 와이오밍 주 북서쪽에 1300㎢에 걸쳐 북미 원주민 다코타 족의 지족(支族) 이름을 딴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이 조성됐다. 이 국립공원 내 로키산맥이 양쪽으로 뻗은 계곡은 장대한 경치와 송어낚시로 유명한 곳으로 잭슨 홀로 불린다. 이곳에서 캔자스시티 지역 연방준비은행은 매년 8월 하순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해 오고 있다. 1982년부터 시작한 잭슨 홀 콘퍼런스는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학계·정부 인사들이 참여, 가장 유명한 경제 콘퍼런스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P 볼커가 좋아하는 플라이 피싱 때문에 콘퍼런스 장소를 옮겼다는 전언(傳言)이 있는 잭슨 홀 콘퍼런스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미국의 저신용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위기는 결국 다음 해 글로벌 경제의 중심부가 망가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2008년 9월 초순 늦여름 햇살이 여전히 뜨거웠던 금요일 오후, 금융연구실 책임자는 필자에게 금융공황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총재실 주례회의에서 국제담당 부총재보는 대형 투자은행 대부분이 도산위험에 직면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날 국내 자금시장에 경색이 일어났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4월까지 미 연준은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응, 연방기금금리목표를 5.25%에서 2%까지 내리고 은행과 국채전문딜러에 대한 다양한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08년 3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자산규모 6위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JP 모건 체이스가 인수하도록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자 또다시 연준은 은행, 제2금융권, 비금융기업, 머니마켓펀드(MMF)시장 등을 상대로 다양한 대출창구를 개설, 긴급 유동성을 지원했다. 추가로 주택저당증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6000억 달러의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밖에도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대량 매각하고 신용사건(credit event)이 일어나 도산위기에 빠진 AIG에 대해서도 긴급 지원에 나섰다.

#2. 연준의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은 도마에 올랐다.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에 오르는 스탠퍼드대 J 테일러 교수는 연준의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을 통화정책(monetary policy)과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합친 ‘Mundustrial policy’라고 비꼬았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독성자산을 안전자산으로 교환해줘 질적완화 통화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연준은 보수주의 단체로부터 ‘연준을 점령하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08년 10월 말 당초 유럽중앙은행과 스위스중앙은행에 열었던 스와프 라인을 한국은행을 포함한 14개국 중앙은행으로 확대했다. 연준이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환율안정을 위해 수행했던 선진국 중앙은행과의 스와프 라인을 신흥국까지 대폭 확대한 것을 두고 의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연준이 이토록 상업은행뿐 아니라 투자은행, 보험회사, 비금융기업, 나아가 초단기에서 장기에 이르는 자금시장과 해외까지 유동성을 지원한 것은 대공황 당시 연준이 범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에서 비롯한다. 통화론자들에게는 성서(聖書)와도 같은 1963년 M 프리드먼과 A 슈바르츠가 공저한 ‘미국 화폐사(貨幣史) 1867-1960’에서 연준은 대공황을 키웠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회고해 보건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공황 시절의 통화정책연구에 헌신한 학자 출신인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아니었더라면 글로벌 경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미국 화폐사’ 제7장을 별도로 출간한 ‘대공황 1929-1939’의 논평으로도 실린 15년 전 프리드먼의 90회 생일축하 연설문은 지금 다시 볼 때 마치 위기를 맞아 결연한 각오를 다지는 버냉키의 출사표(出師表)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3. 금융의 핵심은 만기전환, 즉 단기로 자금을 빌려 장기로 운용하는 데 따른 만기불일치 위험을 담보로 수익을 내는 데 있다. 아래 그림은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도 높아 둘 사이에 정(+)의 관계를 보여주는 수익률 곡선이다. 은행이 A에서 예금자로부터 단기로 예금을 수취해 B에서 주택수요자에게 장기로 대출할 때 B와 A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기불일치와 수익률이 발생한다.

이때 다른 금융회사가 새로이 진입, C에서 은행이 수취한 예금을 빌려 은행 대신 B에서 대출을 한다고 하자. 이 금융회사의 진입으로 당초 은행의 만기불일치와 수익이 공유된다. 즉 은행은 A와 C의 차이, 금융회사는 C와 B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기불일치 위험을 분담하고 수익을 나누는 것이다.

한편 은행과 금융회사는 위험과 보상을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둘은 상호연결됐기 때문이다. 이 상호연결성은 은행의 예금자가 상환을 요구할 때 상환해 줄 돈이 없는 은행이 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금융회사에 대해 상환요구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금융혁신은 A와 B 사이에 수많은 금융회사가 진입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만기전환을 가능하게 한 대신 전례없이 상호연결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상호연결성은 어느 한 금융회사의 만기불일치 위험이 제대로 제어되지 못할 때 다른 금융회사들도 위험에 노출되고 나아가 전체 금융시스템이 취약해질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한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당시보다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토록 컸던 것은 상호연결성 때문이었다.

연준이 온갖 유형의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은 저신용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금융혁신에 따라 높아진 상호연결성으로 인해 전체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4. “Housing입니다.” 2007년 봄 한국은행 콘퍼런스에 참석했던 당시 잭슨 홀 콘퍼런스 주제를 정하는 책임자의 답변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미국 주택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이라고 답했다. 그의 진단은 사실 많은 전문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일부 비관론자가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대부분 잘못된 논리에 기반을 둔 주장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11월 런던정경대학을 방문한 영국 여왕은 “왜 아무도 알지 못했나요?”라고 물었다. 이듬해 7월 영국 학사원(British Academy)은 여왕에게 다음의 구절이 들어간 편지를 보냈다. “… 사실 금융시장과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많은 경고가 있었습니다… 어려움은 특정 금융상품보다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위험을 보는 데 있었습니다. 위험분석엔 최고의 수학적 기법을 이용했으나 대부분 금융활동의 일부에 국한해 계산됐습니다. 그러나 큰 그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아시아금융위기 때 그랬듯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비로소 그 위기는 예측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위기예측이 어려운 것은 모든 유형의 경제예측이나 전망이 그러하듯이 아무리 표본 내 예측력이 높아도 표본 외 예측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며 경제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기예측은 일기예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절대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경제위기를 예측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주었다고 하자. 만약 경보가 작동했다면 사람들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막았다면 경보가 작동했으나 위기는 오지 않았다. 이 모순은 예측된 위기에 대응하는 경제주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다. 위기를 예측할 수 없다면 위기 시 위기비용을 줄이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융회사의 레버리지를 억제하고 자본충실화와 파생금융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금융개혁을 추진했다.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주도한 도드 프랭크 금융개혁법도 마찬가지다.

#5. 2010년 봄 미국경제는 그런대로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연준은 6월에 들어서자 자산매입을 중단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가렸던 유로존 위기가 고개를 들었다. 한 지역 연준 총재가 비선형(非線型)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비선형이란 복수의 균형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당시 안정을 찾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가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해 8월 잭슨 홀 콘퍼런스에서 버냉키 연준 의장은 경제의 하방위험이 커졌으며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경제회복을 위한 모든 역량을 발휘할 것을 천명했다. 중단된 양적완화가 재개된 것이다. 이후 연준은 두 차례에 걸친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했으며 2014년 10월 자산매입을 중단할 때까지 4조5000억 달러의 자산을 쌓았다.

연준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은 비통념적인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가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빠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침체가 계속되자 교역국 간 수출시장을 빼앗으려는 이전투구가 일어나고, 실업률이 줄어도 물가압력은 높아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6. 4년 전 잭슨 홀 콘퍼런스에서는 글로벌 경제 중심국의 통화정책이 글로벌 은행을 중심으로 글로벌 신용사이클을 일으키고 이 사이클에 주변국의 통화정책이 제약을 받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글로벌은행은 주변국에 공급한 자금을 회수하고, 주변국 중앙은행으로서는 금리인상에 동참하지 않을 때 자칫 자본유출이 확대돼 심각한 외환 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주변국의 통화정책이 중심국의 통화정책에 제약을 받는 현실은 비극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을 비롯한 중심국들이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했다. 중심국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은 이들 나라 경제회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거둘 때 당초 그 위기와 아무 관련이 없던 주변국에 피해가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 비극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원화가 국제통화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은 시절 필자에게 많은 배움과 영감(靈感)을 주신 옛 동료들의 헌신에 감사드리며. (문화일보 8월 30일자 26면 7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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