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촌사람이 다된 나, 서울에서의 하루가 낯설었다

이강진 2017. 9. 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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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골 생활: 한국 방문(2)

[오마이뉴스이강진 기자]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가 붐비는 서울 거리. 인구가 적다는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 이강진
한국을 방문하면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연을 보는 것이다. 호주에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서울에 있는 동안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서편제>라는 뮤지컬이 있었다. 영화로 본 작품이긴 하지만 뮤지컬로 표현된 작품은 색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표를 샀다.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이 있는 압구정역으로 향한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쉽게 공연장을 찾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긴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가장 역겨운 것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 하수구 옆을 지날 때는 저절로 얼굴을 돌리게 된다. 압구정동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나도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골목길에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아무 곳에나 주차한 수많은 자동차다. 심지어는 보도에 주차한 자동차도 있다. 자동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의 공간만 남겨 놓은 사이로 다니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부딪힘, 압구정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급 승용차가 많이 보인다는 정도였다.

공연장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다. 공연 장소는 7층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긴 줄에 서서 기다린다. 시계를 본다.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공연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 안내자가 뒷줄에 있는 사람은 걸어서 올라가라는 안내를 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에 들어선다. 입장료가 싼 금액이 아니었는데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이외인 것은 나이 든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의 이야기로는 요즈음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젊은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주에서 자주 들었던 청년 실업 이야기가 실감 나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 호주에서 인터넷으로 보았던 낯익은 출연자가 시선을 끈다. 공연을 자그마한 망원경으로 출연자의 표정까지 살피는 관객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소리꾼에 대한 이야기다. 슬픈 장면이 나올 때면 예외 없이 눈물 닦는 관객도 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골목길을 걷는다. 한을 토해내는 소리,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구슬픈 가락이 입안에서 맴돈다. 심청이의 절규도 마음 한구석에서 남아 있다. 멋지게 차려입고 압구정동의 공연장을 찾은 젊은 사람들은 '한'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호기심이 생긴다. 

논밭에서 스케이트 타고 놀던 홍대 입구
 헬멧도 쓰지 않고 거리를 질주하는 배달 청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이강진
압구정동에서 전철을 타고 홍대 입구로 갔다. 그날 저녁은 옛 친구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연희동에서 선후배 사이로 지내며 같은 교회를 다니던 친구들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다. 심지어는 40여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지냈던 홍대 입구에 도착했다. 물론 동네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다. 겨울이면 논과 밭에 물을 끌어들여 조성한 스케이트장이 있던 곳이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유명했던 청기와 주유소도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골목길을 걸어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한복판에서 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민다. 길에서 만나면 못 알아볼 얼굴을 다시 보니 옛날 모습이 되살아난다. 정말 오랜만이다. 내 모습도 그대로라고 한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옛 흔적은 바꾸지 못하는가 보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니 당연히 교회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은 장로가 된 사람,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 그리고 나처럼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다. 참석하지 못한 친구 이야기도 나온다. 수술했다는 친구도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들 이야기도 듣는다.

예전에 같이 즐겨 마시던 소주잔을 나누며 오랜만에 마음껏 떠든다. 푸짐한 음식도 나온다. 모두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에 대한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자 한 친구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한다.

호주에 살면서 한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뉴스를 수없이 들어 왔다. 심지어는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렵다. '한'을 노래하는 비싼 공연에 빈 좌석이 없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큰 어려움 없이 사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는 참석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늦은 버스를 타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친척 집으로 향한다. 동양 사람조차 보기 어려운 호주 시골을 벗어나 찾아온 고국이다. 사람으로 붐비는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를 보냈다. 입맛을 돋우는 음식도 많고, 언어 장벽도 없다. 즐거운 하루였다.

그래도 호주 생각이 난다.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고 싶다. 이른 아침 신선한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는 새들과 함께 심호흡도 하고 싶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산다고 해도 큰 도시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전형적인 호주 촌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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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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