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엔 이삿짐만.." 현실화한 차이나 엑시트

김인경 입력 2017. 9. 20. 05: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드부지 제공' 미운털 롯데마트, 반한 감정에 철수 결정
"한국기업 야반도주시 한국까지 위기 전이될 수 있어"
롯데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롯데는 성주 골프장을 사드부지로 제공한 후 노골적인 보복과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19일 베이징 왕징 롯데마트의 모습. [사진=김인경 특파원]
[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중국으로) 들어오는 짐들은 금방 들어와요. 나가는 게 많이 밀려서 그렇지…. 요즘 다 나가려고 하니까.”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물류업을 하는 한 교민의 말이다. 그는 요즘처럼 나가는 물량만 많은 경우는 중국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장기화하자 기업들이 철수를 결정하고 이에 주재원들도 떠나고 있다. 한때 기업들이 중국으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차이나 드림이 끝났다. 대신 그 자리엔 차이나 엑시트(China Exit)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반한감정 싹트자…‘철수’ 카드 꺼내든 롯데

19일 중국 베이징 한인타운인 왕징의 롯데마트에는 14개의 계산대 중 단 2개의 계산대만 운영되고 있었다. 그나마도 손님이 오가지 않아 점원들은 수다를 떨거나 먼지를 털어내기 바빴다. 신선도가 생명인 정육 코너나 제빵 코너는 아예 냉장고를 꺼버리고 영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된 지도 이미 반년이 넘었다는 게 이곳 점원의 설명이다. 롯데마트에서 큰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대형마트 까르푸가 손님으로 북적이는 모습이 민망할 정도다.

롯데가 지난 3월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며 롯데마트는 중국인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버렸다. 불매운동과 반한 시위, 지방정부의 노골적인 규제에 롯데마트는 중국 점포 112곳 중 87곳의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임시 휴업을 들어간 곳도 13곳이나 된다.

결국 롯데마트는 지난 14일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매각 상대를 고르고 있다. 중국 경제지인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에 따르면 태국 최대 유통 기업인 CP그룹과 중국유통기업 화리엔(華聯), 미국 사모펀드(PEF) 등이 롯데마트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왔던 만큼 롯데마트는 베이징, 상항, 선양, 충칭 등 중국 1선 도시 에서도 핵심 상권에 위치해 있어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롯데마트는 장부가인 8300억원 수준의 부르고 있지만 입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보다 30% 가량 낮은 가격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마트는 한 발 먼저 중국 내 점포 5곳을 태국 CP그룹에 매각키로 하고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떠날 방침을 세웠다. 다른 국내 기업보다 한 발 더 빠르게 1997년부터 진출해 한때 중국 전역 26개 점포를 거느렸던 이마트지만 결국 실적 부진과 사드 보복에 철수 카드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칭다오 봉제공장 비극 재발할라…커지는 불안감

중국 기업들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사드 보복까지 가세하자 자동차, 화장품, 가전제품, 패션업체 등 한국 업체들은 업종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금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들은 그야말로 죽겠다고 울상이다.

중국 투자법인 청산절차. 보기만 해도 복잡하다.
한국 협력업체 120여곳을 먹여 살리는 베이징현대가 부품 지급을 늦추자 한인 사회로 위기론은 빠르게 확산했다. 사드 보복으로 판매량이 급감하고 자금난이 심해지자 현대차의 합작사인 베이징차가 납품 대급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지난 14일과 15일에 걸쳐 미납 대금을 모두 지급되며 한숨 돌리긴 했지만 또다시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현지에 진출한 부품업체들은 영 불안해하는 눈치다.

이미 섬유·유통 업체들은 베이징 시 당국의 ‘이유 있는’ 위생·환경·소방 단속 등을 피해 2~3선 도시로 옮겨갔다. 하지만 옮겨간 지역에서도 한국 업체에 대한 견제는 여전해 도저히 중국 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청산을 하는 것조차 쉽진 않다는 점이다. 투자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제조업체이라면 청산을 할 때 외자기업 자격으로 받은 세금 면제 혜택 등을 반납해야 한다. 또 중국 ‘노동계약법’에 따르면 종업원에게 경제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고용기간에서 6개월 미만은 0.5개월로, 6개월에서 1년 이하는 1개월도 정산한다. 이를테면 고용기간이 3년이면 3개월치 급여를 경제보상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같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대규모 야반도주하던 2007~2010년 칭다오 등지의 한국 봉제업체의 비극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일 이번에 한국 공장들이 야반도주를 하거나 줄도산을 하게 되면 비단 중국 안에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부품업체들의 경우 공장 본사들이 몰려 있는 인천 등으로 그 여파가 이어질 수 있어 당국 차원에서 나서야 할 것”고 지적했다.

김인경 (5tool@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