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인터넷 공개수배.. 범인 말고 생사람 잡을라

윤수정 기자 입력 2017. 9. 2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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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인데 진범인 양.. 신상·얼굴 등 올려 명예훼손 소지]
사례금 걸고 실시간 제보받아.. 억울한 피해자 양산 우려
경찰이 私的 수배해도 모욕죄

지난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분당 판교 뺑소니범을 공개 수배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함께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 캡처에는 용의자의 옷차림과 외형, 오토바이 번호판 등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글쓴이는 "지난달 29일 경부고속도로 입구에서 승용차를 뒤에서 박고 가짜 번호를 준 뒤 도망친 오토바이 운전자를 찾는다"고 했다. 이 글은 페이스북과 인터넷 카페 등으로 빠르게 퍼졌다. "XX백화점 직원" "인근 건물 ATM 근처에서 그 오토바이를 봤다" 등 실시간 제보가 댓글로 달렸다. 이튿날 "가해자 김모씨가 경찰에 자수했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공개수배 게시글에는 '검거 완료' 표시가 붙었다.

최근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 개인이 촬영하거나 입수한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을 올리고 "범인을 잡아달라" 호소하는 '인터넷 공개수배'가 늘고 있다. 대부분 용의자 개인 신상이나 얼굴, 목격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사례금·포상금을 걸기도 한다.

교통사고나 차량 도난 등의 순간이 담긴 영상을 올린 다음 다른 네티즌들의 제보를 받아‘가해자’의 신상을 찾는 소셜미디어 페이지(왼쪽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에도‘공개 수배’를 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오른쪽 사진). /인터넷

지난 1월 한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에는 "상습 차량 절도범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30대 남성 1명과 20대 남성 2명이 내 차와 신용카드를 훔쳐갔다"며 "얼굴 찍힌 영상을 올리니 신고해주면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첨부된 한 옷가게 매장 CCTV에는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몇몇 커뮤니티는 이런 제보만 전문으로 받는 페이스북 계정, 블랙박스·CCTV 공유 게시판 등을 별도로 운영 중이다. 블랙박스 제보 게시판으로 유명한 '보배드림'에도 '뺑소니''공개수배' 등의 제보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개인이 올리는 '인터넷 공개수배'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몇몇 수배글이 실제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면서다. 지난 2015년 1월 10일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의 한 공업사 앞에서 임신한 아내가 좋아하던 크림빵을 사 귀가하던 남성(29)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 네티즌들은 사건 경위와 경찰이 공개한 현장 CCTV를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으로 공유하며 용의자 공개 추적을 시작했다. 용의 차량이 흰색 SUV라는 것이 밝혀졌고,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범인(37)이 자수했다.

경찰이 범행 검거에 도움 된다며 용의자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공개수배 형식으로 올리기도 한다.

지난 6월 경남 김해시의 한 편의점에서 10대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점주를 흉기로 위협해 현금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담당 수사관은 사건 당일 오후 용의자 얼굴 모자이크 없이 CCTV 일부를 캡처해 지역 커뮤니티 페이스북에 개인 연락처와 함께 올렸다. "아직 범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용의자 사진을 함부로 공개해도 되느냐"는 비판 댓글이 이어졌고, 경찰은 해당 게시물을 결국 삭제했다.

이렇게 인터넷에 관련자 신원이 드러난 상태에서 범행 관련 영상을 올리는 것은 초상권 침해나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는 "용의자의 얼굴·신상이 선명히 드러난 영상과 사진을 적법한 절차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공개수배하면 개인은 물론 경찰이라도 인권위 제소나 명예훼손·모욕죄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올리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 경찰 공개수배 대상은 지명수배 후 6개월이 지나도 검거 못 했거나 사형이나 무기징역, 장기 3년 이상 징역범만 경찰청 훈령에 근거해 별도 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정이 가능하다.

아직 범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용의자의 얼굴·차량번호 등 신상 정보를 노출시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2015년 9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여고생도 페이스북에 올라온 '운동화 절도 사건' CCTV 속 용의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려 학교생활이 어려울 만큼 곤욕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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