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송환 절차 용의" 수지 여사 로힝야족 사태 입 열었지만 ..

이경희 2017. 9. 2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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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군, 로힝야족 수백명 학살
3주 새 41만명 방글라데시로 탈출
유엔 "인종 청소의 교과서" 비난
수지 "엑소더스 이해안돼" 책임전가
시민권자만 수용 의지, 실효성 의문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난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발룩칼리 난민캠프에서 구호품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방글라데시로 피한 이들은 40만 명을 넘어섰다. [AP=연합뉴스]
“미얀마 정부의 의도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혐의를 배제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인권 침해와 불법적 폭력을 비난합니다.”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이 로힝야족 대규모 난민 사태에 대해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CNN 등 외신과 미얀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지 여사는 19일(현지시간) 미얀마 국영 TV로 생중계된 국정연설에서 “이번 사태를 가능한 한 빨리 매듭짓길 원한다. 난민 송환을 위한 확인 절차를 언제든 개시할 용의가 있다”며 관련국의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권이 확인되는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여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는 1982년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박탈한 이래 수십년간 차별해왔다.

라카인주에 모여 살던 로힝야족은 최근 3주간 41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이 사태의 직접적 계기는 지난달 25일 로힝야족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미얀마 경찰초소 습격이었다. 이 습격으로 경찰 12명이 살해됐다. 미얀마 정부군은 이를 빌미로 로힝야족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총격을 가하며 성폭행을 저지르고 국경에 지뢰를 매설하는 등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로힝야족이 자신들의 마을을 불 질렀다는 식의 가짜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유엔은 이를 ‘인종청소의 교과서’라고 정의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수지 여사는 막상 자국의 인종청소를 방조 내지 묵인한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수지 여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나라 전역의 평화와 안정 및 법치의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혐의에 대한 찬반 주장이 있으면 행동을 취하기 전에 모두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며, 이 같은 주장이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미얀마 정부군이 작전 수행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받았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젊고 약한 나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그 모든 걸 극복해야 한다”면서 “소수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가 라카인주 사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미얀마를 볼 뿐만 아니라 그 문제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슬프다고도 했다.

수지 여사는 “우리는 왜 이 엑소더스가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싶다. 우리는 남아있는 이들은 물론 탈출한 이들과도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카인주의 무슬림 대다수는 이주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마을의 50% 이상은 그대로 있다고도 주장했다. 즉, 탈출한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 셈이다. ‘로힝야’라는 단어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라카인주의 평화와 조화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유엔 인권) 권고 사항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국제 사회를 의식한 듯 영어로 진행한 이 연설이 결국은 ‘내수용’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외국을 향해 미얀마의 문제 해결에 함께 하자고 제안은 했지만, 학살·방화·강간 등 문제의 근원인 정부군에 대한 비판은 끝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수지 여사는 이번 뿐 아니라 과거에도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등을 묵인해왔다. 군부의 동의하에 집권했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물론 달라이 라마,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다른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도 수지 여사에게 군부와 거리를 두라고 압박해왔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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