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카카오뱅크, 알고보니 실세는 '라이언 전무'

이창균 2017. 9. 2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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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본뜬 캐릭터 인기에 영업 활력
발급된 체크카드 중 절반 넘게 차지
카카오 캐릭터 8종 중 선호도 최고
'허술한 맹수' 강조해 반전의 매력

“사자 한 마리가 요즘 이 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사자를 본떠 만든 화제의 캐릭터 ‘라이언’과 카카오 얘기다.

사연은 이렇다. 19일 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18일 예약 판매에 나선 인공지능 스피커 신제품 ‘카카오미니’가 주문자 폭주로 38분 만에 동이 났다. 이 스피커에 부착돼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한 것이 라이언 인형이었다. 지난 7월 출범, 1개월 만에 체크카드를 220만 건 발급하면서 대박이 난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성공 뒤에도 라이언이 있었다. 소비자는 4종의 ‘카카오톡’ 캐릭터 중 원하는 하나를 골라 캐릭터가 그려진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최근 집계 결과 라이언을 고른 비율이 53.4%로 압도적 인기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통상 소비자가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접할 땐 본능적으로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많다. 라이언은 의구심 대신 호감부터 갖게 하면서 인기몰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이 캐릭터를 일컫는 애칭도 생겨났다. ‘라이언 전무’다. 누리꾼들이 “역대 최고 영업사원이다”, “활약이 회사 전무급이다”고 평가해 이런 별명이 붙여졌다. “웬만한 전무보다 나으니 부사장으로 승진시켜야 한다”는 농담마저 들린다.

화제의 라이언 전무는 카카오에서 캐릭터 사업을 하는 자회사 카카오프렌즈가 지난해 새로 선보인 캐릭터다. 강아지 ‘프로도’와 토끼 귀의 ‘무지’, 복숭아 모양의 ‘어피치’ 등 원래 카카오톡에 있던 캐릭터 7종을 이끌 리더 역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라이언은 왜 인기일까. 카카오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가 없어서라고 본다. 하나는 갈기다. 수사자인데도 갈기가 없다. 캐릭터 설정에서 라이언은 이를 콤플렉스로 여겨 부끄러워한다. 또 하나는 기다란 꼬리다. 어렸을 적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 집에서 도망쳐 나왔는데 꼬리가 길면 잡히니까 짧아졌다.

카카오프렌즈는 애초 라이언을 만들 때 의도적으로 이런 약점 두 가지를 부여했다. 이수경 카카오프렌즈 파트장은 “캐릭터가 완벽하면 국내 정서상 오히려 매력이 떨어져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고 봤다”며 “사람이라면 약점이 있게 마련인데 라이언을 완벽하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서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들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교수는 “맹수인 사자를 귀엽게 만들어서 소비자가 반전의 매력을 느끼는 한편, 인간미 있는 캐릭터와 자신이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는 ‘자기 동일시’를 쉽게 하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적당히 허술한 모습의 설정으로 거부감 없는 캐릭터가 되다보니 인기라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이문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세계적 인기를 모은 ‘테디베어’에서 보듯, (라이언은) 곰을 닮아 확장·범용성이 좋은 디자인”이라며 “악어나 복숭아 모양의 캐릭터에 비해 한층 다양한 상품에다 녹여 쓸 수 있다”고 했다. 또 7종의 ‘친구’들보다 늦게 합류한 라이언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카카오프렌즈가 마케팅에 힘쓰면서 이런 장점이 극대화됐다.

예컨대 카카오프렌즈는 깜깜한 방에서 빛나는 ‘무드램프’를 라이언 모양으로만 출시했다. 서울 강남의 플래그십스토어에선 혼자 방문한 소비자를 위해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맞은 편에 라이언 인형을 배치해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이렇게 다른 캐릭터보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사용자 경험이 꾸준히 늘다 보니 친근감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카카오프렌즈는 탄생 직후 선풍적 인기를 모은 라이언에 힘입어 지난해 705억원의 매출, 23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약 34%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이다.

라이언과 카카오의 사례는 ‘잘 키운 캐릭터 하나’가 소프트웨어(SW) 산업에서 가지는 힘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SW쪽은 제조업과 달리 유형(有形)으로 된 차별화 포인트를 갖기가 어렵다”며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브랜드를 부각시킬 수단이 적은 만큼, 캐릭터를 만들고 키워 기존 단점을 장점으로 탈바꿈하는 데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카카오 외에 네이버 자회사 라인프렌즈도 캐릭터 사업으로 지난해 69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순항했다.

전체 캐릭터 시장도 성장세가 무섭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1조원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2005년 2조원대에서 11년 만에 5배로 성장했다. 캐릭터 타깃이 ‘뽀로로’처럼 주로 어린이였던 과거와는 달리 광범위한 성인층으로 이동한 것도 요즘의 특징이다. 박 교수는 “어린이보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에 서툰 성인층이 캐릭터의 단순성과 명확성에 매료돼 (캐릭터를) 더 많이 의사 소통에 쓰고 있다”고 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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