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야구선수만 은퇴합니까 새로운 세계 개척 못하면 시인도 은퇴해야 합니다

백승찬 기자 입력 2017.09.19. 21:03

세월호 유족의 트위터는 큰따옴표로 묶여 시(詩)가 되었다.

3년 만의 신작 시집 <하동>(창비)을 펴낸 이시영 시인(68)은 "때론 시인들의 의장을 거치지 않은 맨 목소리 자체가 더 큰 시적 충격을 준다"며 "그 어떤 시인들의 애도시보다 절실한 트위터"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매그넘 집단의 사진가들은 순간 포착만으로 세계의 비참을 충격적으로 전달한다"며 "시적 미화, 서정적 가미 없이 건조한 풍경만으로도 오히려 더 큰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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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3년 만의 신작 ‘하동’ 펴낸 이시영 시인

“가난한 집에 태어난 죄로……2만원밖에 못 줬는데 고스란히 남아 있던 지폐 두 장. 배 안에서 하루를 보냈을 텐데 친구들 과자 사 먹고 음료수 사 먹을 때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2014년 9월19일, 어느 세월호 어머니의 트윗을 관심글로 지정함’ 전문)

세월호 유족의 트위터는 큰따옴표로 묶여 시(詩)가 되었다. 3년 만의 신작 시집 <하동>(창비)을 펴낸 이시영 시인(68)은 “때론 시인들의 의장을 거치지 않은 맨 목소리 자체가 더 큰 시적 충격을 준다”며 “그 어떤 시인들의 애도시보다 절실한 트위터”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데뷔 48년 만에 14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고, 2012년부터 4년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도 지냈다.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시인은 제자리걸음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시적 충격을 경험하고, 가장 날카로운 대사회 발언을 내뱉는다. 물론, <하동>의 시편들은 그 모든 생각과 활동의 절차탁마다.

“아파트의 낡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쳐진 거미줄 하나/외진 곳에서도 이어지는 누군가의 필생”(‘그네’ 전문)

길어야 다섯 줄, 짧으면 한 줄인 단시(短詩)는 <하동>의 백미다. 시인은 1990년대 초반부터 단시 형식을 실험해왔다. 혹자는 이시영의 단시를 일본의 하이쿠와 비교한다. 시인은 고개를 젓는다.

“하이쿠는 완미(完美)해 인간적 삶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 단시에 사람살이와 땀냄새를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단지 ‘아름다움’으로 끝내지 않고, 언어화되지 않는 서사성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하동>엔 한 사람의 삶을 곡진히 드러내는 산문시도 많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낸 서민들의 일상이지만, 시인의 언어는 미리 흥분하지 않는다. 다만 신문기사를 옮긴 듯 건조하고 담백하다. 예를 들어 작은댁 아이까지 도합 아홉을 길러낸 ‘학재 당숙모’의 이야기. 뒤란의 감꽃 줍던 어릴 때를 ‘가장 기쁜 때’로 기억하는 그는 “추석 맞아 내려와 곤히 잠든 자식들 다리 사이를 조심조심 건너다 쓰러”졌다. 주로 힘겨웠고 짧게 즐거웠던 91년 인고의 삶이 두 쪽의 시에 농축됐다. 또 산수유 아름다운 구례군 산동면에 살던 매형 ‘이상직 서기(21세)’는 산동금융조합 숙직을 서다 빨치산에게 금고 열쇠를 빼앗긴 뒤 다음날 토벌대에 의해 즉결처분됐다. 아내가 가마니에 둘둘 말린 시신을 확인한 순간에도 산수유는 노랗게 망울을 터트린다. 시인은 “매그넘 집단의 사진가들은 순간 포착만으로 세계의 비참을 충격적으로 전달한다”며 “시적 미화, 서정적 가미 없이 건조한 풍경만으로도 오히려 더 큰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인의 고향은 전남 구례다. 그런데 왜 ‘하동’일까. “하동쯤이면 딱 좋을 것 같아/…/섬진강이 흐르다가 바다를 만나기 전 숨을 고르는 곳. 수량이 많은 철에는 재첩도 많이 잡히고 가녘에 반짝이던 은빛 사구들./…/그래, 코앞의 바다 앞에서 솔바람 소리도 듣고 복사꽃 매화꽃도 싣고 이젠 죽으러 가는 일만 남은 물의 고요 숙연한 흐름. 하동으로 갈 거야. 죽은 어머니 손목을 꼬옥 붙잡고 천천히, 되도록 천천히.”(‘하동’ 중)

“하동은 섬진강이 바다에 이르기 전 가장 아름답게 굽이치며 빛나는 곳입니다. 저도 생물학적 나이가 바다에 이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고향에 가봐야 옛사람은 없고…. 고향 구례의 이웃인 하동에서 살고 싶다는 인간적 소망이 있습니다.”

시인은 소셜미디어에서 “관습적으로 시집을 내는 시인들”을 비판한 적이 있다. 비판은 자기 자신에게로도 향한다. 시인은 <하동> 말미 ‘시인의 말’에서 “나는 이 시집을 끝으로 다시는 관습적으로 ‘비슷한’ 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놀라서 조금 더 자세한 뜻을 물었다.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나면 자기 세계를 박차고 나가기보다는 일관된 세계를 유지하게 마련입니다. 안됩니다. 세상과 정면대결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세계에 대해 대담한 도전을 해보겠다는 생각 없이 매일 서정이나 읊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상투성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시인의 죽음입니다. 야구선수만 은퇴합니까. ‘전 국회의원’만 있습니까. 시인도 새로운 세계를 개척 못하면 은퇴해야 합니다. 그때는 ‘전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