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로 살아 온 우리..무대 함께 서니 더 즐거워요"

김연주 입력 2017. 9. 19. 17:16 수정 2017. 9. 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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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디바 전수경·최정원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초연후 21년만에 재회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두 주역으로 만난 최정원(왼쪽)과 전수경. [이승환 기자]
"도나, 내가 도와줄게. 왜 그래?"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타나 역을 맡은 전수경의 다정한 목소리에 이불 속 최정원은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져 난감했단다. 곧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불을 벗어던지고 신나게 '댄싱 퀸'을 불러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찔끔찔끔 삐져 나오는 거다. "당시 '맘마미아' 공연 중 참 힘든 일이 많았는데 순간 도나가 아니라 제가 위로를 받았어요. 수경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니깐 무대랑 현실이 구분이 안 가더라고요." 그 말에 전수경이 최정원의 어깨를 툭 치며 "얘는 또 오버한다"며 타박했다.

170㎝ 넘는 늘씬한 몸매, 탁월한 발성 그리고 전형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도발적인 이미지의 뮤지컬 디바 전수경(51)과 최정원(48)은 한때는 라이벌로 이제는 동지로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이 1996년 초연 무대 이후 21년 만에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다시 만났다. 초연 무대에서는 전수경이 여배우 도로시 브록으로, 최정원은 앙상블 애니 역으로 무대에 섰는데 이번에는 최정원이 도로시 브록의 바통을 넘겨받았고 전수경은 새롭게 작곡가 매기 존슨 역을 맡게 됐다.

"즐거워요. 한 역할을 가지고 둘이 경쟁하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다른 역할을 맡아서 함께 무대에 서는 지금이 더 행복해요. 우리끼리 무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최정원) "아유, 배아픈 적도 많았죠.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을 정원이가 한 적도 많았거든요. 한번은 둘 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주인공 마리아 대신 아나티 역에 지원한 거예요. 우리가 반골 기질이 있어서 말괄량이 아니타에 끌렸거든요. 결국 정원이가 춤을 더 잘 춰서 캐스팅되고 전 마리아 역으로 서면서 춤 연습에 이를 갈았더랬죠."(전수경) 최정원이 화통하게 웃으며 "후배여서 저는 그런 마음이 덜했다"며 "마음 편하게 언니를 흉내내고 따라하며 배웠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시골 댄서 패기 소여가 브로드웨이 최고 연출가를 만나고 부상을 당한 주인공 대신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서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에는 실제 뮤지컬 배우의 삶이 담겼기 때문이다. 최정원은 이 뮤지컬을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주인공 페기 소여와 같은 경험이 제게도 있어요. 데뷔 작품을 끝내고 1990년 '가스펠'이란 작품의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쟁쟁한 선배들이 많아 제게 기회가 오지 않았죠. 그런데 주인공으로 예정됐던 선배님이 사고로 공연 2주 전 하차하게 됐고, 제가 2주 만에 연습을 마치고 공연에 올라가게 됐어요. 페기 소여의 기적이 제게도 일어난 거죠."

전수경은 초연부터 작품에 출연해 온 최다 출연자다. "나이가 들었어도 다양한 배역으로 이 작품과 계속 함께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매력의, 나와 함께 커온 작품이죠."

공연이 없는 날이면 이제 단둘이 여행을 다니는 친자매 못지않은 두 사람에게도 데면데면하던 시절이 있었단다. "사실 저희가 보기와 달리 성격은 정반대예요. 저는 직설적이고 따끔한 성격인데 정원이는 낙천적이고 정말 긍정적이거든요."(전수경) "언니가 절 오해하던 시절도 있었대요. 제가 너무 웃기만 하니깐 가식인 줄 알았다네요. 근데 세월이 흘러 저희 가족이랑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니 '너희 어머니가 너보다 더 긍정왕이시다. 가족 내력이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최정원)

'렌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키스 미 케이트' '시카고' '오!캐롤'…. 20년 넘게 쉬지 않고 다양한 작품으로 무대에 서 온 그들은 한국 뮤지컬의 역사이자 어린 후배들의 '롤모델'이다. 두 사람은 후배들에게 "나이 드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전수경은 "오히려 지금이 어릴 때보다 더 살아나는 느낌"이라며 "어릴 때는 노안이었는데 나이 드니 동안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최정원은 "어렸을 때는 나이 들면 배우를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회가 있다. 무대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넓다"고 했다.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끊임없이 관리를 해야 해요. 저희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꾸준한 관리 덕분이죠. 지금도 춤 연습하고 수영하고 헬스하고 식단 관리해요." 전수경이 맞장구를 쳤다. "정원이는 '관리의 여왕'이에요. 술 한 잔, 커피 한 컵에도 까다롭다니까요." 10월 8일까지, 디큐브 아트센터.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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