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육지 돼지고기 반입 허용 논란..'금단'의 땅 풀릴까

돼지열병 청정지역 유지 명목 15년간 타 시·도 돈육 반입불허 / 삼겹살 최대 95% 비싸.. 주민 고통 / 양돈업자, 분뇨 무단 방류 물의 / "이권보호 변질.. 반입 허용해야"

제주도에 다른 시도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반입 허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제주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양돈업자가 가축분뇨를 무단 방류해 물의를 일으키면서 제주 양돈산업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타 시도산 돼지고기 반입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주민 300여명이 지난달 29일 한림읍사무소에서 축산 악취와 폐수 무단 배출 등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양돈농가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제주도는 국내에서 유일한 돼지열병 비백신 청정지역이다. 백신을 접종하면 제주도 역시 돼지열병 비백신 청정지역의 지위를 잃게 돼 국내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가 반입될 수 있다.

제주도는 1999년 돼지열병 방역실시 요령이란 농림부 고시를 근거로 돼지열병 비백신 청정지역을 선언했다. 이후 2002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제주도 반·출입 가축 및 그 생산물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돼지열병 백신을 접종하는 국내 다른 지역의 살아 있는 돼지와 돼지고기 등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돼지고기 반입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민들이 다른 지역 소비자보다 돼지고기를 비싸게 먹고 있다는 이유다.

국민의당 제주도당은 “제주도민들은 돼지고기 반입금지 고시가 이뤄진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약 15년 동안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비싼 돼지고기를 소비하고 있다”며 “돼지고기 삼겹살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적게는 50%, 많게는 무려 95% 이상 비싸게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당은 이어 “제주산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 중단 등으로 ‘반입 금지 정당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지역 소비자들이 높은 돼지고기 가격 때문에 겪는 고통의 측면을 감안하면 모든 정책의 마지막 근거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 정당성’까지 잃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입금지는 돼지 전염병 확산 방지 목적이 아니라 제주 양돈농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경쟁제한 조치로 변질되면서 육류 소비와 관련한 제주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축산 악취에 시달려 온 애월 고성·광령리 주민 100여명은 지난해 말 타 지방산 돼지고기의 제주 반입을 막은 제주도의 고시가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했다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타지방 돼지고기 반입금지로 호황을 누리는 양돈업계가 악취저감과 폐수 적정처리를 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키면서 반입 허용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는 딜레마에 빠졌다. 타 시도산 돼지고기 반입을 허용할 경우 구제역에 이어 ‘마지막 보루’인 돼지열병 비백신 청정지위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전국 최초로 도에 ‘동물방역과’를 신설하려는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도는 돼지고기 반입 허용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돼지열병 유입 위험을 검토하고 돼지열병 방역과 관련해 농식품부와 협의해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