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독일처럼 사죄하게 만들려면
[오마이뉴스안형기 기자]
"지금도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겪은 나치의 만행을 끊임없이 문화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화가 나서고 소설이 나서고 뮤지컬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어서 (일제의 만행 등 과거사를) 자꾸 그려내고 기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문화의 책무죠."
<부초>, <거리의 악사>, <밤의 찬가> 등을 쓴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수산(71)이 15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문화계의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나가사키 부근의 탄광섬 하시마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 소설 <군함도>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일이 일본과 달리 과거사를 거듭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들이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유태인들이 문화 작품을 통해 끈질기게 고발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7년의 취재와 집필 끝에 완성된 <군함도>
한 작가의 소설 <군함도>의 배경인 하시마 섬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600명에서 1000명가량의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잔인한 노역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렸던 것으로 각종 문서에 기록돼 있다. 그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로 구성된 '조선인 인권을 위한 모임'의 오까 마사하루 목사 등의 도움으로 서정우씨(작고) 등 강제징용 생존자를 만나 하시마 섬을 오가며 무려 27년의 취재와 집필 끝에 소설 <군함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 한수산 작가는 강제징용과 원자폭탄의 피해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서정우 씨 등 생존자를 만나 군함도의 실상을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
ⓒ SBSCNBC |
▲ 한수산 작가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먼저 일본이 부끄러워할 자료를 찾아 치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 SBSCNBC |
필화사건과 일본행이 이어준 운명적 만남
▲ 한수산 작가가 '필화사건'으로 참혹한 고문을 겪은 뒤 일본으로 떠났다가 운명적으로 하시마(군함도)를 만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 SBSCNBC |
그렇게 가게 된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그는 일본인이 쓴 '원폭과 조선인'이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군함도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당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그는 고문을 당하고 일본으로 떠나와 군함도를 만난 그 모든 과정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보안사 청년의 진심이 싹틔운 '용서'
가톨릭 신자인 한 작가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해자들을 잊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랜 시간이 걸린 자신의 용서가 싹튼 순간은 고문 사건을 겪은 몇 달 후 한 청년의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고 회고했다.
보안사에서 종일 고문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감시 임수를 맡았던 현역 군인 한 명이 밤마다 아무 말 없이 더운 물과 통증완화제로 찜질을 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그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한 작가는 몇 달 후 익명의 편지를 받고 울컥했다고 말했다. "직업 군인이 될 생각이었지만, 선생님 같은 분까지 와서 고초를 겪는 것을 보며 이 집단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지방에 가서 식당이나 할 생각"이라는 내용이었다.
한 작가는 "그 편지 한 장이 제게는 '용서하라, 용서하라' 하는 축복 같았다"며 "용서라는 게 인위적으론 불가능하지만, 누군가의 그런 마음결 하나가 새의 깃털처럼 내게 왔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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