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주인'은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보수의 몰락

이도형 2017. 9. 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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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수가 기로에 섰다. 보수정당의 반등이 좀처럼 쉽지 않다. 공공연히 “내년 지방선거도 대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흘러나온다. 잇따른 선거 패배로 보수진영이 몰락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그러다보니 보수진영 내에서 이런저런 타개책이 흘러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보수 통합’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뉘어져있는 보수진영이 대통합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뤄질 수 있느냐가 문제다. 보수를 이끄는 리더급 정치인들간 이견으로 인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인물’ 중심의 정치를 했던 기존 보수진영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날개로 나는 새의 비유처럼, 보수진영의 몰락은 전체 한국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보수는 언제쯤 반등을 시작할 수 있을까.

◆커지는 보수의 위기감…“대구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갤럽이 15일 발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12∼14일 실시, 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69%로 3주 연속 하락세였다. 갤럽조사에서는 취임 후 첫 60%대 진입이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서는 반색할만한 소식이지만, 정당 지지율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같은 조사에서

1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더불어민주당은 48%을 기록해, 한국당(11%)과 바른정당(7%)을 멀찍이 따돌렸다. 두 보수야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민주당 지지율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민주당은 ‘보수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TK)에서도 33%를 차지했다. 이 지역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6%, 바른정당 지지율은 8%에 불과했다.

지방선거가 10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되자 보수야당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다간 경상북도를 뺀 나머지 광역 자치단체장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까지 흘러 나온다. 한 바른정당 관계자는 “대구의 민심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에서 거물급 후보를 내보내고, 보수진영이 현재와 같이 지리멸렬하다면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의 주도권을 보수야당이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부결 경우, 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 절대 다수가 반대표를 던졌지만 김 전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 원인은 국민의당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당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안 가결을 위해 국민의당을 집중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한국당 반대는 ‘상수’로 취급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의석수를 다 합쳐도 127석밖에 되지 않는 것이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보수야당이 주도권을 쥘 수 없는 절대적 이유다. 

◆목소리 커지는 보수통합…‘동상이몽’ 때문에 실현 가능성 낮아

이러다보니 보수진영 내부에서 “힘이라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법 크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모두를 가리지 않는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보수야당이 대패를 하게 된다면 그 여파는 2년 뒤 총선에도 미친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 보수진영의 리더급 정치인들 모두도 ‘보수통합’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정작 통합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세 사람이 생각하는 통합의 밑그림이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통합 깃발’만 나부끼는 격이다. 홍 대표의 경우 바른정당을 흡수통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14일 연세대학교 특강에서 “난파될 줄 알았던 배가 선장이 바뀌고 수리해서 정상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해도 당을 만들어 나간 것은 비겁하다”고 말했다. 바른정당과의 당대당 통합이 아니라 개별 의원을 흡수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흡수통합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른정당의 창당주역인 두 사람이 당을 해체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바른정당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보수진영이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통합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문제다. 이혜훈 전 대표 사퇴 후 불거졌던 바른정당 내 노선투쟁은 사실 당내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짙다. 유 의원은 ‘자강’, 김 의원은 ‘통합’을 대표했는데, 정병국 전 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강과 통합론이) 궁극적으로는 다 같은 이야기인데 표현을 자꾸만 나눠놓는다”며 “우선순위를 어디다 두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6일 오후 경남 마산역광장에서 ``우리는 하나, 다시 시작하는 미래``를 주제로 열린 브라보 콘서트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주인’ 사라진 보수정당…이제는 ‘동지’ 찾아야

보수진영 내 통합을 둘러싼 진통은 보수정당을 휘어잡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리더가 없는 탓이 크다.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정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필두로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인물’ 우위의 정치를 해왔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이념’을 통해 정치를 하는 것에 가깝다면, 보수당 정치인들은 ‘이익’을 통해 정치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즉, ‘누가 나를 당선시켜 주느냐’에 따라 정당이 운영되어왔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보수진영은 수세에 몰리는 동시에 ‘보수의 주인’을 잃어버린 처지가 되어버렸다.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를 ‘보수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현재 보수진영이 위기에 처한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의 주인’을 찾으면 보수의 재정비는 가능할까. 보수 정치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물’ 중심의 정치가 아닌 ‘이념’중심의 정치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높은 지지율이 현 보수진영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념적 재무장을 통해 보수정당이 나아갈 길을 재정립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공당으로서 제대로 서려면 당 노선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이상 당의 ‘주인’을 찾기 보다는 ‘동지’를 찾는 노력을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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