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한국, 대륙서 돈만 벌고 사드 외면" 중국의 직격탄

박수찬 2017. 9. 16. 11: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외교부 관계자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에 '깊은 내상' 남길 것"

“한국은 중국과 경제 외에 안보문제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들은)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에 양다리를 걸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한국은) 양국 관계와 관련이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때 신중해야 한다. 유의해달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부지에 반입된 사드 발사대가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발사대를 하늘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악화될대로 악화된 한-중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한-중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6일 베이징을 방문한 기자는 중국 외교부와 사회과학원 등을 돌면서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강경 기류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외교관과 민간 학자들은 기자를 상대로 절제된 언어를 구사했지만 그 속에는 사드 배치에 대한 곤혹스러움, 분노, 배신 등 다양한 감정이 응축되어 있었다. 베이징의 하늘은 보기 드물 정도로 맑고 화창했지만 한-중 관계 이슈를 모두 빨아들이는 ‘사드 블랙홀’에 직면한 기자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어둠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여러 차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게티이미지

◆“책임만 묻을 뿐, 우리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는 중국에 (대북 제제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면서 중국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사드처럼 말이다.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북 제재로 생계에 위협을 받는 북-중 변경 주민들에게 중앙정부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지적한 기자에게 중국 외교부 관계자가 내놓은 답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처한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와 민간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은 북핵 문제의 근원을 북-미 갈등에서 찾고 있다.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기기 위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북한과 인접한 중국은 그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은 피해자이지만 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중국의 이행 여부에 따라 실효성이 달라진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지난달 5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산 수산물, 광물,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결의안 2371호를 채택하자 이를 북-중 교역에 적용했다. 또한 북한 노동자의 신규 채용을 중지하도록 자국 기업에 권고했다.

중국 중앙정부 입장에서 북-중 교역 위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연간 교역규모는 4조 달러(약 4253조원)가 넘는다. 이 가운데 북-중 교역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60억5600만달러(약 6조8000억원)로 전체 중국 교역규모의 1%에도 훨씬 못미친다. 하지만 북한의 값싼 자원과 노동력에 의존해 원가경쟁력을 유지해온 동북3성의 기업과 대북 교역에 수십년 째 종사해온 현지 무역업자들 입장에서 대북 제재 조치 이행은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중앙정부는 (지방으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안고 있는 불만은 자국민의 피해를 감수하며 대북 제재를 이행하는데도 자신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할 뿐, 자신들의 의견을 한국과 미국이 들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쌍중단(한미 연합훈련과 북한 핵, 미사일 개발 상호 중지)을 제안했으나 한국, 미국은 이에 부정적이다. 사드 문제 역시 중국이 줄기차게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한다” “사드는 북핵 대응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단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유발한다”며 배치 철회를 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못’이 박혔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중국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중국의 불만을 잠재우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가 시작된 7일 오전 관련 장비를 실은 미군 차량이 사드 기지(옛 성주골프장)로 이동하기 위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에 깊은 내상 남길 것”

사드 배치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다음달 열릴 중국의 19차 공산당 대회가 끝나면 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사드 보복’이 완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면 한-중 관계가 호전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베이징 현지 분위기는 이같은 관측을 무색케 했다. 20년 넘게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중국 외교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은 손목을 다쳐본 적이 있나? 난 손목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내상이 있어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상처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한-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드가 완전히 배치돼도 한-중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한-중 관계는 ‘깊은 내상’을 입을 것이다. 사드 배치의 여파가 한-중 관계 곳곳에 미칠 것이다.”
중국 입국을 위해 작성해야 하는 비자 서류. 사드 배치 이후 중국 내 한국기업과 개인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깊은 내상’이라는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지만 속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사드 배치는 양국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며, 이는 불과 3년 전 양국이 ‘최상의 관계’라고 치켜세웠던 그 때 당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드 문제는 양국 관계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경제 및 문화 분야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대해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왔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부지를 군용지와 교환한 롯데측은 중국의 영업정지 등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은 중국 내 롯데마트 매장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마트도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중단된 중국인 단체 한국 관광과 한류 연예인 출연 및 드라마 방영 금지 조치도 풀리지 않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7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월 대비 40% 감소하면서 관광산업 손실액이 18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사드 보복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할 방법도 의지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와 대(對) 중국 전략 부재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군이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로 반입한 사드 발사대를 설치해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30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대해 보고를 누락했다”며 조사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7월 28일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사드의 완전한 배치는 1년 이후에 실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같은날 밤 북한이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단행하자 29일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의 반입을 주한미군과 협의할 것을 지시해 사드 배치 문제는 하루만에 뒤바뀌어버렸다. 이후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검토를 거쳐 지난 7일 사드 발사대 4기는 성주골프장에 반입됐다. 사드 장비 배치가 원래 예정보다 3개월 빨라진 셈이다.

정부는 ‘임시배치’라며 일반 환경영향평가 직후 최종 배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번 조치가 사실상의 완전 배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반발과 불신이 커지는 것도 이같은 인식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조선반도 연구소 리둔추(李敦球) 연구원은 13일 중국 언론 기고문에서 “문재인정부가 주창한 ‘사드 배치 과정 진상 조사’는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 속임수이자, 대사화소 소사화료(大事化小 小事化了:큰일을 작게 하고 작은 일은 없는 것으로 친다)의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사드 1개 포대 배치를 (중국이) 받아들이면 제2, 제3의 사드가 한반도에 전개할 것이다. 사드가 중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최근 만난 중국 공산당 원로인사가 ‘사드에 대해 중국에 거짓말 하는 것은 박근혜정부나 문재인정부나 똑같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에) 상처가 발생한다면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중국 외교부 관계자의 발언을 곱씹으며 베이징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 6일 오후, 정부는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임시배치를 선언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 발표 직후 “한국의 사드 배치는 유관국의 국가안전 우려를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역 전략 균형을 훼손하고 중국을 포함한 지역 국가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한다”고 비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한-중 관계가 끝을 모를 정도로 악화될 기미가 강해지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 이를 해결할 중국통은 보이지 않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다자외교와 통상 분야 경력을 갖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고위인사들도 중국 외교 경험은 거의 없다. 사드 배치 논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방부는 중국과 군사외교를 펼칠 여력이 없다. 중국의 불신과 보복 조치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해결하고 수교 25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가 새롭게 도약시킬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내상을 입은 한-중 관계를 회복시킬 섬세하고도 냉철한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