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암행어사들 "맛집이라더니, 먹을 맛이 안났다"

채성진 기자 2017. 9. 15. 03: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
한국 식당 어떻습니까.. 평창올림픽 앞두고 '미스터리 쇼퍼' 첫날
행주로 식탁 닦는데 너무 더러워 휴대폰조차 올려놓지 못할 정도
앞치마엔 국물 자국, 착용 포기
남녀 공용 화장실엔 휴지 수북.. 중국집 가니 '점심은 김치찌개'

"음식 맛은 괜찮았는데, 화장실 때문에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가 음식점을 점검하기 위해 관광객을 가장해 ‘미스터리 쇼퍼’로 투입한 크리스틴(왼쪽)과 에릭이 14일 서울 종로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14일 오후 음식점이 밀집한 서울 종로거리의 한 찜닭집. 2만8000원짜리 2인용 찜닭을 주문하고 손을 씻으러 나간 프랑스인 남성 에릭(31·가명)씨는 화장실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매장 뒤편 좁은 통로를 따라 난 길로 남녀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변기 주변에 사용한 휴지가 수북이 쌓인 휴지통이 보였다. 그는 "화장실을 나서는데 여성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민망했다"고 말했다.

에릭은 "내가 '베스트 메뉴'를 묻자 매니저가 '패스트 메뉴'로 이해한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화장실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메뉴판에 음식점의 역사에 대해서는 영어로 설명이 돼 있었지만 정작 메뉴에는 사진이나 영어 설명이 없어서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40여 항목의 음식점 체크 리스트를 입력하며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10점 만점에 3~4점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에릭은 한국관광공사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주요 음식점의 품질과 서비스를 점검하기 위해 현장 암행 조사에 투입한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 출신으로 한국 생활이 6년째라 우리말이 유창하지만 그는 처음 한국을 찾은 관광객으로 가장해 매장 구석구석을 점검했다. 본지 취재진은 미스터리 쇼퍼 6명을 동행 취재했다.

외국인 안내판 없는 식당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찌개집. 뚝배기에 끓인 찌개로 유명해 인근 직장인과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맛집이었지만 식당 밖에는 외국인을 위한 안내판이 없었다. 벽에 붙여 놓은 메뉴판에는 한국어 아래 일본어로 찌개 이름을 적어 놓았다.

순두부찌개를 주문한 미국인 여성 크리스틴(29·가명)씨는 "종업원이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데 너무 더러워 휴대폰을 올려놓지 못했다"고 했다. 국물이 튀는 것을 막는 앞치마는 이미 여러 사람이 사용한 듯 얼룩져 있었다. 바닥에는 손님들이 버린 휴지가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크리스틴씨는 찌개 한 숟갈을 입에 떠넣었다가 뱉었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이 데일 정도였는데, 종업원 누구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 피모(21)씨과 린모(20)씨는 서울 강남의 한 떡볶이집을 찾았다. 해물 떡볶이를 주문한 이들은 "음식이 매운 정도를 메뉴판에 표시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유명 블로그가 유명 삼겹살집으로 소개해 이들이 찾으려 했던 논현동의 한 식당은 해물찜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린씨는 "한국에선 유명 맛집이라고 알려져 막상 가보면 문을 닫은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미스터리 쇼퍼 중에는 한국인도 있다. 외국인이 지나칠 수 있는 문제점을 찾기 위해서다. 대학 복학생 정모(27)씨와 김모(25)씨는 역삼동의 한 중국 음식 식당을 찾았다. 이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다짜고짜 김치찌개를 내왔다. 정씨의 항의에 종업원은 "점심식사 때는 단일 메뉴고, 오늘은 김치찌개 나오는 날"이라고 쏘아붙였다. 인터넷에서 '맛집'이라던 이 식당은 점심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음식 대신 근처 직장인을 겨냥해 '밥집'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식당 앞에 '오늘의 메뉴'만 표기했을 뿐 메뉴판 자체가 없었다. 정씨는 "김치찌개는 시큼하고, 반찬에선 후추 냄새가 진동했다"며 "외국인 친구가 이 식당에 가려고 하면 뜯어말리겠다"고 말했다.

방한 해외 관광객, 음식 만족도 최하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외래 관광객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관광의 여러 분야 중 특히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음식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맵다'(46.1%·중복 응답)는 것이었다. '가격이 비싸다'(29.2%) '특유의 향이 싫다'(20.3%) '깨끗하지 않다'(19.2%)는 응답도 많았다. 음식점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은 '음식점 위치를 찾기 어렵다'(36.2%) '종업원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33.8%) '음식점 정보를 구하기 힘들다'(31.8%) 순이었다.

이수택 관광공사 음식크루즈팀장은 "작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식도락 관광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음식점 서비스의 질이 한국 관광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오는 11월 말까지 전국 6개 지자체 음식점 400곳을 대상으로 불시 조사를 벌인다. 지역 관광협회와 중국·홍콩 등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추천한 유명한 식당을 선별했다. '최우수' 등급으로 선정된 음식점에 대해서는 국내외 온·오프라인 광고와 이벤트 개최 등을 통해 지원하고, 서비스 품질이 낮은 음식점은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컨설팅을 실시할 예정이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