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손끝에서 시속 150km가 나오네 '스포츠 카이트'

2017. 9. 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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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카이트 동호회 '카이트윙스' 비행 현장
전통 연과는 달리 서구에서 발전
시속 100~150km 질주도 가능

[한겨레]

스포츠 카이트는 크게 두 줄짜리 ’스턴트 카이트’와 네 줄 짜리 ’쿼드 라인 카이트’(일명 레볼루션 카이트)로 나뉜다. 오랫동안 매주 일요일 모여 온 동호회 ’카이트윙스’ 회원들은 곡예 비행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아파트 숲 사이는 연날리기에 좋은 곳이 아니다. 바람이 이쪽저쪽으로 휘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가운데 조성된 인공 호수 공원. 양쪽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우뚝하다. “바람이 다행히 확 트인 북서쪽에서 불어오네요.” 스포츠 카이트 동호회 ‘카이트윙스’의 이경삼(48)씨가 등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바람은 이들이 네 개의 줄이 매달린 핸들을 잡고 선 등 뒤쪽 빈 하늘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빈 하늘 너머는 바람의 근원, 바다다.

지난 9일 오후 1시 인천 청라호수공원. 푸른 잔디 위에 스포츠 카이트 동호회 카이트윙스의 동호인들 6~7명이 나란히 서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바람은 불어오다가 이내 방향을 잃고 미약해지기를 반복했다. 리더를 맡은 이경삼씨의 구호에 맞춰 다양한 도형을 만들던 연들은 힘을 잃고 차례로 땅 위에 내려앉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바람이 좋아질 것 같아요.” 아내 최경숙(58)씨와 함께 6년째 ‘부부 파일럿’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현정호(61)씨가 말했다. 아직은 해풍과 육풍이 싸우는 시간. 땅이 완전히 데워져 일정한 바람이 불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려나 보다.

이들이 띄운 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연과 다르다. 외줄이 아니라 2줄 혹은 4줄에 연결돼 있다. 카이터(Kiter, 연날리기 선수)의 미세한 조종에 따라 공중에서 멈춰서기도 하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거나 회전하고 편대 비행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스포츠 카이트다. 서구권의 연이다. 동양의 연이 유유히 하늘을 난다면, 서구권에서 발전한 스포츠 카이트는 연의 운동성에 보다 주목했다. 전통 연이 바람의 저항을 줄여 높이 날도록 만들어졌다면, 스포츠 카이트는 바람을 안으로 모은다. 바람을 품은 연은 양력(lift)과 항력(drag)을 적절히 배합하는 카이터의 조종에 따라 역동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스포츠 카이트는 크게 두 줄 짜리 ’스턴트 카이트’와 네 줄 짜리 ’쿼드 라인 카이트’(일명 레볼루션 카이트)로 나뉜다. 오랫동안 매주 일요일 모여 온 동호회 ’카이트윙스’ 회원들은 곡예 비행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스포츠 카이트는 일반 연에 비해 크기도 훨씬 크다. 폭이 180~330㎝로, 세우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다. 이들이 이날 갖고 나온 연은 소형 행글라이더처럼 생긴 ‘스턴트 카이트’와 나비 모양의 ‘레볼루션 카이트’다. 스턴트 카이트는 2줄짜리(듀얼 라인) 카이트, 레볼루션 카이트는 4줄짜리(쿼드 라인) 카이트다. 처음엔 접근하기 쉬운 스턴트 카이트를 즐기던 동호인이 많았지만, 요즘은 쿼드 라인 쪽으로 갈아타는 추세다.

“스턴트 카이트는 시속 100~150㎞ 정도로 빠르게 질주합니다. 머리가 뾰족해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날리기에는 조금 위험하죠. 소리도 시끄러워서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경삼씨가 한쪽에 뉘여 있던 스턴트 카이트의 손잡이를 들어 올려 내게 해보라고 권했다. 조종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두 줄의 실 끝에 스트랩(끈)이 매달려 있는 게 전부였다. 스트랩을 손목에 걸고 두 줄을 11자로 평행하게 잡은 뒤 동시에 세게 잡아당기자 연이 금세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절망에 빠진 여고생 쓰다(아오이 유)가 송전탑 아래 들판에서 힘차게 연줄을 잡아당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저무는 하늘 위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비행하던 연이 바로 스턴트 카이트였다. 스턴트 카이트는 오른손을 당기면 오른쪽으로, 왼손을 당기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과연 웅, 하는 비행물체 특유의 소리가 난다. 한꺼번에 많은 바람이 연 뒤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천이 떨려 나는 소리다. 브레이크는 없다. 무조건 질주다. 바람이 강할 때는 몸이 끌려가기도 한다. 계속 당기고 있으면 빙글빙글 회전을 한다는데 아직은 무리다.

레볼루션 카이트는 스턴트 카이트보다 조종이 힘들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카이터들은 입을 모았다. 레볼루션 카이트의 핸들에는 네 개의 줄이 연결돼 있다. 위쪽이 파워 라인, 아래쪽이 브레이크 라인이다. 레볼루션 카이트도 날려봤는데, 확실히 스턴트 카이트보다 조종이 어려웠다. 핸들을 잡고 컵에 담긴 물을 마시듯 위쪽 파워 라인을 당기면, 연이 서서히 올라간다. 바람을 품은 연과 나 사이의 힘이 팽팽히 느껴졌다. 일단 연을 공중에 띄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연은 자꾸만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미세한 손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옆에선 줄곧 오른쪽 브레이크 라인을 당겨라, 왼쪽 파워 라인을 당겨라, 힘을 빼라, 세게 당겨라 말을 하는데, 당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연이 근처 나무에라도 걸릴까 조바심을 내다보니 배운 대로 핸들을 조절할 생각은 않고 원초적인 반응 동작만 커진다. 이경삼씨는 “처음의 관건은 네 줄의 평행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쓸데없는 움직임을 자제해야 한다.

그는 “스턴트 카이트는 1시간 정도 연습하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쿼드 라인은 1~6개월 정도는 연습을 해야 상승, 하강의 기본적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카이트윙스 회원들은 매주 주말 모인다. 주로 함께 모여 팀플레이를 연습한다. 리더의 구령에 따라 안무를 짜둔 몇 가지 프로그램을 반복해 완성도를 더해간다. 대회가 다가올 때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도 하고, 새로운 회원이 오면 강습을 하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나들이는 덤이다.

본래 아지트는 한강 난지지구의 잔디광장. 이날은 난지지구에서 열리는 행사 때문에 부득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주 일요일 난지 한강공원을 찾으면 언제나 이들이 스포츠 카이트를 날리는 광경을 만날 수 있고, 원하면 연을 날려볼 수도 있다. 이날도 신입 회원이 아내와 함께 처음 현장에 와 이들의 비행을 지켜봤다.

’카이트윙스‘의 현정호씨가 스턴트 카이트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카이트윙스‘의 현정호씨가 스턴트 카이트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이든 실제로든 우연히 마주친 스포츠 카이트의 이색적인 매력에 빠져 오게 된 이들이다. 독학으로 실패를 거듭한 뒤 자신과 같은 ‘환자’들이 모인 동호회에서 ‘안식’을 찾은 이들이 많다. 이들이 매주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한 장소에 모여 연을 날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8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온 김대현(46)씨는 비행 1년 차 새내기다. 지난해 우연히 상암동 노을공원에서 한 외국인이 파워 카이트(낙하산 형태의 스포츠 카이트)를 날리는 장면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해외 직구로 파워 카이트를 구입해 혼자 날려봤는데 잘 안 됐다. 그러다 난지 한강공원에서 우연히 봤던 스포츠 카이트 동호회를 떠올리고 찾아갔다가 회원이 됐다. 그는 첫 팀 비행의 흥분을 떠올렸다.

“조언을 얻어 쿼드 라인으로 기종을 바꾸고 연습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베테랑들이 팀 비행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가!’ 하시는 거예요. 들어갔더니 저 때문에 줄 다 엉키고 연들 고꾸라지고 난리였죠. 너무 미안했는데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라면서 계속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격려해주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 몫을 하면서 함께 팀으로 뭔가를 해낸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진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날 만난 많은 이들은 의외로 스포츠 카이트의 매력으로 ‘함께하는 즐거움’을 꼽았다. 나들이 겸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4년 차 카이터 제영일(48)씨 역시 “혼자서는 어느 정도 기술이 숙달되고 나면 재미가 없어진다”며 “같이 모여 만들어가는 매력이 크고 지나는 행인들이 보내주는 박수와 함성도 즐겁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반쯤, 바람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 “메가 팀!” 이경삼씨가 소리치자 광장 곳곳에서 홀로 연을 날리던 이들, 잠시 그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휴식을 취하던 이들이 모두 일어나 팀에 합류했다. 비행 연차가 얼마 안 된 초보부터 실력자까지 다함께 모여 팀 비행을 하는 시간이다.

“원 바이 투 바이 스리! 고! 팔로!”

일렬로 나란히 선 이들은 구령에 맞춰 단체 줄넘기를 하듯 한 명씩 바람 창(窓)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앞선 이의 꼬리를 따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Kite 연. 종이 혹은 천에 뼈대를 붙여 실을 맨 다음 공중에 높이 날리는 장난감. 솔개 연(鳶)자를 씀. 한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광범히 분포돼 있음. 최근에는 명절에 즐기는 민속놀이보다 대중적인 레포츠로 각광. 연의 운동성에 주목한 서구권의 ‘스포츠 카이트’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짐.

인천/이로사 객원기자 leerosa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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