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계 겨눈 국회 갑질]최순실 사태 이후에도..기업은 여전히 '봉

명진규 입력 2017.09.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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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조세법 관련 법안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국회의원들이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압박하는 구태가 반복되자 기업들은 '정경유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마련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은 투명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에 정작 국회는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국정감사 등을 빌미로 기업에 후원금을 요구하는 행태에 대해 재계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적폐청산'을 외치며 출범한 이번 정부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면서 재계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지갑 닫은 재계, 곤궁해진 의원실= 올해 들어 국내 대기업들은 기부금과 후원금에 인색해졌다. 총수의 유죄 판결이라는 가장 큰 악재를 맞은 삼성전자가 10억원 이상 기부 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게 한 데 이어 대다수 그룹사가 후원금과 기부금 자체를 줄였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상반기 시총 상위 20개사의 기부금과 후원금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 대비 41.2%, 상반기 대비 12.2% 하락했다. 섣불리 정치권에 후원금을 냈다가 뇌물로 간주돼 된서리를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 대관 조직이 크게 위축된 점도 한몫한다. 삼성그룹 계열사만 해도 그룹 차원의 대관 조직은 사라졌고 일부 계열사에서 일부 대관 조직만 운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예 법으로 준조세를 막고 정치 후원금도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도록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 재계 입장이지만 정작 국회는 관련 법안은 미루고 정치자금법은 개정해 후원금을 받겠다고 나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준조세 금지 관련법은 "바쁘다"며 미루고 정치자금법은 통과시키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직후인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여야는 일제히 10여개의 '정경유착방지법'과 '부정축재방지법' 등 이른바 준조세 금지법을 약속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하나도 없다.

청문회 당시 국내 그룹 총수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법과 제도를 정비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던 일부 국회의원들도 "바빠서 처리할 시간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
 
반면 기업의 정치 후원금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지난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55명 중 233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준조세 금지법 관련 법안에 발의인으로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이 거의 대다수인데 관련 법안은 하나도 처리하지 않고 정작 자신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보는 기업의 정치 후원금 확보를 위해선 똘똘 뭉친 것이다.
 
◆기업 갑질은 공정위, 정부 갑질은 국회가…정작 의원들은 기업 협박= 공정위가 국내 대기업 대부분을 사정 범위에 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갑질 행위를 막겠다며 나선 가운데 의원들의 노골적인 후원금 요구는 견제할 곳이 없다는 점에서 재계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국내 A그룹사 인사팀의 한 임원은 "지역구 의원들은 정치 후원금 외에도 수시로 인사 청탁을 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주요 당원 자녀의 입사 청탁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그룹사가 보유한 골프장, 콘도, 호텔 등에 부정 청탁을 하는 의원들도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서도 국회의원은 제외다.

국회의원 역시 금품 수수 시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징역 3년, 벌금 3000만원 이상의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있지만 1회 100만원이 한도다. 여기에 더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정책운영 등의 개선에 관한 제안과 건의는 허용한다"는 문구로 보호를 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 의원들이긴 하지만 기업들의 약점을 잡고 후원금을 요구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기업 갑질은 공정위가 잡고 정부의 갑질은 국회가 막지만, 정작 의원들의 갑질은 제동 장치가 없는 상황"이라고 씁쓸해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