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포기"..검찰, 노동사건 잇따라 공소 취소, 왜?
같은 혐의 기소자 무죄에 "실익 없다" 판단
법률 하자 아닌 검찰의 재판 포기 전례 드물어
"기계적 항소 지양" 문무일 총장 방침 영향
검찰이 파업 노조원들에 대한 공소(公訴·검찰이 형사재판을 청구하는 것)를 포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이 “기계적 항소를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파업을 주도한 노조위원장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데 따른 것이지만 공안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는 이례적이다.
검찰이 기소한 파업 참가자 182명 중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9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죄가 확정됐다. 2014년 12월 서울서부지법 형사13부(부장 오성우)가 무죄를 선고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 4명이 대표적이다.
검찰의 공소 취소는 이례적이다.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했을 때 이외에는 2000년대 들어 검찰이 개별 사건에서 스스로 공소를 취소한 예는 거의 없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의혹을 폭로하고도 검찰에 의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직원법상 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국정원 전·현직 직원에 대해 공소를 취소하라는 여론이 일었지만 검찰은 수용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소 취소는 수사가 잘못됐다고 고백하는 셈이어서 검찰로선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라며 "공소장 변경 등 우회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재판을 포기한 건 대단히 전향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또 지난달 28일 전주지검(검사장 송인택)은 2014년 5월과 7월 파업을 벌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약식기소된 전주지역 버스 운전기사 109명에 대해 공소를 취소했다. 검찰은 당시 파업을 지시한 민주노총 전북버스지부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만약 조합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법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의 이런 방침은 수사 중인 사건으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대검은 파업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중인 사건들도 적법성 요건을 엄밀히 검토해 수사 중단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대검 관계자는 “결과가 빤한 재판에 대해 무조건 최종심까지 다툴 경우 피고인들의 불안정한 법률상 지위가 장기화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정권 안위의 '히든카드'…공소 취소의 변천사
「 검찰의 공소 취소 처분이 정권의 통치 도구로 활용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반발 여론이 확산됐다. 때마침 대학생 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여권은 민심 수습에 나섰다. 1991년 5월 검찰은 김 총쟁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그 다음 수혜자는 박정희 정권의 실세 중 하나였던 박태준 전 국무총리였다. 김영삼 정권은 1995년 8‧15 특별사면 대상에 박 전 총리를 포함시켰다. 박 전 총리는 포항제철(현재 포스코) 회장 재직 시절인 1989년 회사 기밀비 7300여만원을 횡령하고 39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당시 정권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범국민적 화합 차원의 사면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0년대 들어 공소 취소를 대가로 한 정치적 거래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공소 취소가 이뤄지는 경우가 늘었다.
2010년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검찰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광우병 집회 참가자 등 1157명에 대해 공소를 일괄 취소했다. 이어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망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근거였던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을 헌재가 위헌 결정하면서 검찰은 연평도 포격 도발 때 국방부 등을 사칭해 허위 문자메시지를 유포한 28명의 공소를 취소했다. 다만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일명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이미 1심 선고가 난 뒤여서 공소 취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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