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재판 포기"..검찰, 노동사건 잇따라 공소 취소, 왜?

유길용 입력 2017.09.14. 06:01 수정 2017.09.1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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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철도노조 파업 참여자 95명 공소 취소
같은 혐의 기소자 무죄에 "실익 없다" 판단
법률 하자 아닌 검찰의 재판 포기 전례 드물어
"기계적 항소 지양" 문무일 총장 방침 영향

검찰이 파업 노조원들에 대한 공소(公訴·검찰이 형사재판을 청구하는 것)를 포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이 “기계적 항소를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파업을 주도한 노조위원장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데 따른 것이지만 공안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는 이례적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권익환 검사장)는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긴 철도노조원 95명에 대한 공소를 일괄 취소한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1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철도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2013년과 2014년에 파업을 벌여 재판에 넘겨졌던 철도노조 조합원 95명이 1심 판결을 받지 않고 혐의를 벗게 됐다.
2013년 12월 10일 파업 이틀째 김명환 노조위원장(오른쪽)과 조합원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대상자는 2013년 12월과 2014년 2월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다. 당시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서비스별 자회사 체제 일환으로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추진하자 두 차례에 걸쳐 23일간의 민영화 저지 파업을 벌였다.

검찰이 기소한 파업 참가자 182명 중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9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죄가 확정됐다. 2014년 12월 서울서부지법 형사13부(부장 오성우)가 무죄를 선고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 4명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위한 코레일 이사회 출자를 저지하려던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업무방해죄의 성립 요건인 전격성에 대해선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도노조가 파업 4개월 전에 파업 시기와 목적을 명확히 했고, 단체교섭과 쟁의조정신청에 수서발 KTX 법인 설립 반대를 현안요구안으로 제시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2014년 1월 14일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1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나와 경찰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 위원장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중앙포토]
2심과 대법원도 이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전 대법관)는 지난 2월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지난 8월 25일 검찰은 서울서부지법이 무죄 선고한 2차 파업 참가자 32명에 대해 항소를 포기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무죄 선고가 잇따라 재판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의 공소 취소는 이례적이다.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했을 때 이외에는 2000년대 들어 검찰이 개별 사건에서 스스로 공소를 취소한 예는 거의 없었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의혹을 폭로하고도 검찰에 의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직원법상 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국정원 전·현직 직원에 대해 공소를 취소하라는 여론이 일었지만 검찰은 수용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소 취소는 수사가 잘못됐다고 고백하는 셈이어서 검찰로선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라며 "공소장 변경 등 우회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재판을 포기한 건 대단히 전향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검찰의 태도가 달라진 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검찰이 '인권옹호기관'임을 강조하면서 기계적 항소를 자제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지난달 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문 총장은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 손해배상소송을 했을 때 검찰이 기계적으로 항소 또는 상고하던 관행을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8월 9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이후 같은 달 23일 검찰은 1980년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나종인(79)씨 재심사건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상고를 포기하는 등 3건의 과거사 사건의 항소를 포기해 무죄로 종결됐다.

또 지난달 28일 전주지검(검사장 송인택)은 2014년 5월과 7월 파업을 벌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약식기소된 전주지역 버스 운전기사 109명에 대해 공소를 취소했다. 검찰은 당시 파업을 지시한 민주노총 전북버스지부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만약 조합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법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의 이런 방침은 수사 중인 사건으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대검은 파업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중인 사건들도 적법성 요건을 엄밀히 검토해 수사 중단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대검 관계자는 “결과가 빤한 재판에 대해 무조건 최종심까지 다툴 경우 피고인들의 불안정한 법률상 지위가 장기화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정권 안위의 '히든카드'…공소 취소의 변천사

「 검찰의 공소 취소 처분이 정권의 통치 도구로 활용된 시절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 문화방송을 헌납했던 고(故) 김지태씨가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김씨는 1962년 3월 관세법과 국내재산도피 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군 검찰은 그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김씨는 문화방송과 부산일보 주식 100%의 포기각서를 작성했다. 군 검찰은 그제야 “김지태가 죄과를 뉘우치고 국가재건에 이바지할 뜻을 표명했다”며 공소를 취소하고 석방했다. 김씨가 헌납한 재산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를 설립하는 밑천으로 사용됐다.
1991년 1월 4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우)ㆍ김대중 평민당 총재(좌). [중앙포토]
노태우 정권은 공소 취소 처분 카드를 정권 안위에 활용했다. 정권 2년차인 1989년 검찰은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서경원 평민당 의원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반발 여론이 확산됐다. 때마침 대학생 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여권은 민심 수습에 나섰다. 1991년 5월 검찰은 김 총쟁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부산초원복집 사건의 첫공판 법정에 나온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중앙포토]
뒤이은 공소 취소 수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김 전 실장이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대선 개입을 모의했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그 다음 수혜자는 박정희 정권의 실세 중 하나였던 박태준 전 국무총리였다. 김영삼 정권은 1995년 8‧15 특별사면 대상에 박 전 총리를 포함시켰다. 박 전 총리는 포항제철(현재 포스코) 회장 재직 시절인 1989년 회사 기밀비 7300여만원을 횡령하고 39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당시 정권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범국민적 화합 차원의 사면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0년대 들어 공소 취소를 대가로 한 정치적 거래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공소 취소가 이뤄지는 경우가 늘었다.

2010년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검찰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광우병 집회 참가자 등 1157명에 대해 공소를 일괄 취소했다. 이어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망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근거였던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을 헌재가 위헌 결정하면서 검찰은 연평도 포격 도발 때 국방부 등을 사칭해 허위 문자메시지를 유포한 28명의 공소를 취소했다. 다만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일명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이미 1심 선고가 난 뒤여서 공소 취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