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엔결의 2375호를 위한 변명, 유엔 대북제재는 '진지전'이다

정용환 입력 2017.09.14. 06:00 수정 2017.09.14.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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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유엔 결의 2375호,맹물 제재 혹평
강도 높이며 지속하는 게 제재의 속성
다음 단계 제재 사실상 '보이는 미래'
중·러 뒷문 한계 불구 통점 눌리는 고통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나온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2375호를 두고 ‘솜방망이’ ‘겨우 옐로카드’ ‘물 제재’ ‘반쪽’ ‘김빠진 제재’ 등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속도전'이라면 유엔 제재는 상대를 소진시키는 '진지전'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효과는 더 두고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엔 제재의 규범은 제재 대상이 상황을 제재 이전으로 돌리기 전까지 계속될 뿐 아니라 갈수록 강도가 올라간다. 제재는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작동하기 시작하면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 같다. 이란의 핵개발 의지를 꺾은 것은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ㆍ기업ㆍ금융기관 제재)이 결정타라고 하지만 빈틈을 찾아 막아온 유엔 제재가 밑바닥을 받치고 있었다.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대표부 대표가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대북제재 결의 2375호 표결에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욕 AFP=연합뉴스]
정부 소식통은 13일 “제재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유엔 제재는 상대를 피 말리게 하고 기회 비용을 높이는 효과를 무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 제재는 국제사회의 다자가 참여한 제재라는 점에서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이 구속력이 향후 협상 국면에서는 레버리지로 작용하게 된다. 이란 핵 협상에서 보듯 유엔 제재는 핵 개발 중단과 교환하는 카드로 활용됐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서울대 김병연 교수(경제학)은 “북한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무역 루트를 막는 강도 높은 제재가 가해지면 파괴력이 매우 크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유엔 제재로 북한 경제를 붕괴시킬 수 없고 속도가 붙은 핵ㆍ미사일 도발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면서도 “제재가 제대로 가해지면 이를 피해 물자나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기회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에서 금수 품목이 발표되면 가격이 폭등하는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줄곧 제재 무용론에 따른 대화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단 촘촘히 제재망을 구성하면 그 와중에도 북한은 빈틈을 찾아 숨을 내쉬겠지만 이 그물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누적된 유엔 제재에 따라북한의 불법활동에 연루된 의심을 받는선박은 입항이 불허된다.[중앙포토]
유엔 제재는 북한의 도발이 나올 때마다 강도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미래’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다. 석탄만 해도 첫 제재에선 민생용을 예외로 했다. 하지만 그 뒤 쿼터제로 단계를 높이더니 결의 2371호에는 전면 금수시켜버렸다. 원유도 이번 결의 2375호에선 건드리지 않았지만 정제 석유를 쿼터제로 묶었다. 다음 수순은 원유가 타깃이란 걸 국제사회도 북한도 알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도발을 구상할 때마다 비용 대비 효과 계산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소식통은 “섬유ㆍ의류 수출을 막는 등 돈줄을 막았기 때문에 북한 경제에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는 크고 작은 800여개 장마당에 구매력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한 것도 주안점”이라며 “통점을 누르는 고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얼마나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느냐 여부다. 정부 인사들은 구조적으로 북ㆍ중 접경을 통한 밀무역 루트가 광범위해 근본 차단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9번째 유엔 결의가 나왔고 국제사회의 합의사항을 위반하는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대규모 거래는 어렵게 됐다. 제재 효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1일(현지시간) UN 안보리 가 발표한 9차 대북제재 결의안. [사진 뉴욕 심재우 특파원]
유엔 협상에 참여했던 전직 외교관은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려 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유엔 현장에서 보면 중국 외교관들은 결의 위반을 지적당하면 병적으로 반대 논거를 대며 반박할 정도로 합의 위반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며 “문제는 밀무역 루트를 차단할 수 있는 행정력이 접경지역 말단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게 현실이고, 그것이 현재 중국의 실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결의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9일 만에 나온 것"이라며 "중국도 비상하게 움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초안이 나오면 중국의 유엔대표부는 본부에 보낸 뒤 공안ㆍ상무부 등 의견을 모으고 최고 지도부의 인준을 받는 과정을 수 차례 거치면서 몇 달씩 끄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북한에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제재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경제 전반에 미치기 전에 기습 도발로 판을 뒤집으려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맞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칼날도 더욱 날카롭게 설 것이다. 치킨 게임의 시계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