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신청에 의하여' 헌법은 왜 영장청구권을 검사에게 줬나

우경희 기자 2017. 9.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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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내삶을바꾸는개헌-검찰개혁]①박정희, 檢에 영장청구 독점권 부여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개헌을 통해 영장발부 권한을 검찰에게 줬다./사진=머니투데이DB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헌법 제12조3항)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헌법 제16조2절)

1948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첫 헌법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아홉 글자가 없었다. 사전 영장 청구권자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현행범이 도피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만 정했다.

1954년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엔 구속이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권자를 처음으로 명시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검사와 경찰 모두 영장 청구가 가능했다. 하지만 1961년 개정된 형사소송법부터 영장 신청 주체가 검사로 한정된다. 이듬해인 1962년 진행된 5차 헌법개정(개헌) 때는 아예 헌법에 이 내용이 반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직후 이뤄진 일들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 검찰에 영장청구권 하사=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곧바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한다.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 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5차 개헌이 이뤄졌다. 이듬해 발효된 이 개헌 헌법은 10조3항에 '체포 구금 수색 압수에는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썼다. 개헌 없이는 고칠 수 없는 항구적 권한을 검찰에 준거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에 따르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 구성원은 박 전 대통령 외에 이석제, 오치성 육군 대령 등 8명의 분과위원장 겸 상임위원이 현역 장교였다. 군사정권이 검찰 권력이 크게 강화시켰다는 의미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7차 개헌(유신)에서는 검찰관이라는 표현을 검사로 변경한다. 이 내용이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헌이 아니고는 헌법이 정한 권한을 변경할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이후 영장 청구권은 검사에게만 있었다. 검찰과 경찰은 상호 견제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가 됐다. 검사는 영장청구권을 바탕으로 수사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등등을 모두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설계한 검찰 권력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인권보호냐 독재잔재냐 =검찰의 영장청구권 보유에 대해 법학계 일각에선 인권보호의 원칙과 영장주의를 모두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강제수사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것은 법관이지만 그 앞에 검사가 한 차례 더 판단할 수 있도록 해 피조사자가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둔다는 의미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과)는 "헌법에 검사의 영장청구 조항이 들어간 취지 자체가 경찰의 강제수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를 막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영장청구권 보유가 인권침해 예방 조항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식민지형 사법제도를 일선에서 주도한 게 경찰이다. 해방 이후에도 경찰의 비대한 권한 남용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고 강제수사도 이어지면서 구속된 피의자의 상당수가 검찰에서 석방되거나 불기소됐다. 경찰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경찰의 권한을 검찰로 이양하면서 자연스럽게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전환됐다는 거다.

하지만 검찰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제기는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에 닿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을 내세웠다. 수사는 경찰이 주도하고 검찰은 보충적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도록 분담하고, 영장청구권은 검찰과 경찰이 나누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출범 이후 영장청구권 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대단히 커진 상황이다.

영장청구권의 검찰 독점 구도를 깨야 한다는 주장엔 이 조항이 군사독재의 정치적 유물이라는 근거가 붙는다. 김선택 교수는 "검사의 영장청구제도는 군사독재자들이 정권안보에 동원하기 위해 검찰을 키우다가 헌법에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1차적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찰에 강한 권력을 몰아줬고, 차후 국회가 정상화된 후 이 법이 다시 개정될 수 있다는데 두려움을 느끼고 헌법으로 못 박았다는 설명이다. 국회의 입법형성권을 빼앗자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김선택 교수의 주장이다.

◇개헌, 검찰개혁의 또 다른 이름 될까 =헌법 상 명시된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성사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청구권 독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에 때맞춰 정치권에서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로 일단 시점이 정해진 개헌열차에 영장청구권 조정이 탑승할 수 있다면 개헌은 검찰개혁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현재 여당을 중심으로 권고안을 마련 중인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의 또 다른 과제들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고위공직자의 비리 등 이른바 '거악'에 대한 수사는 신설되는 공수처로 넘긴다는 거다. 그간 검찰은 눈치보기 수사논란, 스폰서 파문 등 권력형 비리 수사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공수처 신설은 주요 정치인이나 고위 법조인, 고위 공무원에 대한 수사를 독립적 기구에 맡기자는 취지다.

그간 권력형 비리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담 수사했다. 중수부 폐지 후에는 검찰의 특별수사본부 등이 이를 맡았다. 공수처가 수사를 전담하게 될 경우 검찰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기관과 공조도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검찰개혁이 추진된다면 검찰의 역할은 기소와 공소유지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릴 전망이다. 경찰이 수사한 내용에 대해 더 엄정하고 공정하게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거다. 검찰의 과잉수사나 불법수사를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상하관계가 해소되면 기소 이전에도 검찰과 경찰이 협조해 수사를 진행하는 미국의 사례가 구현될 가능성도 있다.


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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