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축제도 아니고.. 난립하는 비엔날레

손영옥 선임기자 2017. 9.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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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공화국'.. 제주·서울 점검
제주비엔날레는 미술관과 제주 들녘 알뜨르비행장 등 실내외 다양한 장소를 전시장으로 쓴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에 설치돼 일종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작품(왼쪽)과 한라산을 주제로 한 국내 작가 그림을 모아 19세기 유럽의 살롱전처럼 꾸민 제주도립미술관 내 ‘한라살롱’.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은 공기 물 불 땅 등 공유자원을 어떻게 쓸지를 보여준다. 태양광 발전(검은판)과 LED조명(흰판)이 바로 연결돼 저개발국가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차단막(왼쪽)과 버섯을 키워 만든 것으로 콘크리트 수준의 강도 테스트를 통과한 건축 구조물.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부산바다미술제, 대구사진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청주공예비엔날레,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평창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 가을이면 대한민국이 비엔날레 공화국이 된다. 공예 사진 디자인 미디어 공공미술 등 특정 장르를 내세우지만 현대미술에서 장르가 붕괴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비슷한 미술 행사가 도처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또 비엔날레가 생겼다. 치적을 위한 ‘짝퉁’ 행사인가, 새로운 대안의 모색인가. 두 행사의 존재 이유를 점검해본다.

취임 1년 만에 뚝딱 ‘붕어빵’ 제주비엔날레(9.2∼11.25)

‘투어리즘’을 주제로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예술공간이아, 알뜨르비행장 등에서 분산 개최되고 있다. 관광을 통해 제주의 오늘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김지연 미술감독은 밝혔다. 지난 1일 개막식 때 둘러본 결과, 전체 77명(팀) 중 외국인이 25명(팀)이 참여해 구색은 갖췄다는 인상이다. 하지만 졸속과 과욕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전체 작품 중 절반이 신작이 아닌 재탕 작품이다. 본 전시장인 제주도립미술관 한 벽면을 맥락도 없이 여러 작가의 한라산 그림으로만 채우거나, 일제강점기 관광 아카이브 자료가 어떤 분석도 없이 종류별로 나열돼 있기도 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본관 전시는 참혹했다. 기획이 안 보인다. 투어리즘을 통해 뭘 논의하겠다는 경향성도 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격납고 기지였던 알뜨르비행장을 전시 장소로 활용한 게 눈에 띄지만 작품들이 땅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녹아들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제주비엔날레를 출범시킨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제주 도민도 육지인과 마찬가지로 국제미술 흐름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적 미술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비엔날레는 단순 축제가 아니다. 시각 언어를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미술이 갈 바를 모색하는 전위의 현장이다.

주최 측은 15억원에 그치는 예산의 부족을 내세웠다. 2015년 부산바다미술제가 총 16억원의 예산으로 16개국 34인(팀)을 초청해 거의 전부 신작을 내놨던 것을 떠올려보면 핑계다. 관장 취임 1년 만에 뚝딱 나와 숙성의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 또 다른 미술계 인사는 “첫 행사는 규모가 좀 작더라도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이라 할 수 있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9.2∼11.5)

올해 예산이 55억원이다. 서울시가 전폭 지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존재 이유가 있어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도시 속 건축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구미 선진국 도시가 60·70년대에 도시화 문제점을 이미 겪은 것과 달리 서울은 지금 통과 중이다. 베니스, 시카고 양대 건축비엔날레가 건축 자체를 내건 것과 달리 도시에 방점을 찍은 것도 그런 이유다.

첫 행사인 올해는 ‘공유도시’를 주제로 돈의문박물관마을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을지로세운상가 등에서 열리고 있는데 세계 50여 도시, 40여 대학, 120개 기관이 참가했다. 1년 전 예고 기자간담회를 가질 정도로 준비 과정이 탄탄했다. 해외 자문위원도 4명이나 뒀다.

지난 3일 찾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전시장 자체가 도시화의 역사를 보여줘 매력적이었다. 한옥과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 1990년대 반양옥까지 다양한 형태의 옛 가옥 안에 주제전이 열리고 있었다. 버섯을 단단하게 키워 만든 구조물은 ‘키우는 건축’을 보여준다. 창을 내지 않고도 실내에 햇빛을 끌어들이는 기술, 무인자동차 시대 기계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걷는 행위를 시각화해 보행에 재미를 주는 시도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화여대 ECC설계자인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낸 도시전문가 리키 버덧 런던정경대(LSE) 교수 등 유명 건축가, 학자, 고위 관료 등이 개막식에 참여해 글로벌 이벤트의 면모를 갖췄다.

한 관람객은 “건축전인데 정작 건축 그 자체가 빠져 아쉽다”고 말했다. 배형민 공동감독은 “건축을 단순히 건물과 프로젝트로만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서울=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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