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 7000만원이 공짜" 강남 재건축 도넘은 수주전

황의영 2017. 9. 1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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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과열
현대건설 "공사비와 별도" 밝혔지만
수주전 비용은 결국 조합원 부담
분양가 오르고 주변 집값 자극 우려
오는 27일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경. [사진 GS건설]
“이사비로 가구당 7000만원을 지원하겠다.”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주변 상가. 오는 27일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부동산 중개업소 창문엔 GS건설과 현대건설이 내건 수주 조건들이 붙어 있었다. 주민 최모(68)씨는 “건설사 간 경쟁이 갈수록 과열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수주전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공사비만 2조6000억원으로 대형 건설사의 1년 치 주택 수주 금액과 맞먹는 데다, 반포 한강변에 랜드마크 단지를 짓는 사업이어서다.

지난 4일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은 ‘가구당 이사비 7000만원 지원’ 카드를 꺼냈다. 관리처분 인가가 나면 5000만원을 지급하고, 입주 때 2000만원을 추가로 주는 방식이다. 이사비를 무이자로 빌려주는 게 아니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다. 조합원은 2292명으로, 현대건설이 부담해야 할 이사비만 1600억원 정도다. 기타소득세 22% 등을 빼고 실제 지급되는 돈은 가구당 54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통상 건설사들은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를 위해 조합원에게 이사비를 지원해 왔다. 지역·사업장별로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1000만원 정도다. 익명을 원한 한 건설사 분양소장은 “재건축 수주 때 이사비 지급은 관행이지만 최근 금액이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부산 촉진 3구역 재개발 사업에 이사비로 3000만원 무상 지원을 내걸기도 했다.
일각에선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시공사 선정 때 ‘금품·향응,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전인재 국토교통부 사무관은 “특정 조합원이 아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공약이라 금품수수로 보긴 어렵다”며 “다만 금액이 너무 크고 부작용 우려도 있어 법률 위반 여부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사비는 공사비와 상관없는 별도 항목으로 제시됐다”며 “공동사업시행 방식이라 나중에 분양대금이 들어온 뒤 남는 수익의 일부를 미리 지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사는 손실 보전에 대해서도 공세적이다. GS건설과 현대건설은 미분양이 발생하면 분양가 그대로 대물로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재건축 사업의 미분양 리스크(위험)는 조합이 책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건설사가 대신 떠안겠다는 것이다. 또 두 회사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따른 조합원 손실분도 떠안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과열 수주전이 재건축 조합원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수주전에 투입된 비용이 조합원 부담금으로 되돌아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아파트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분양가 인상으로 주변 집값도 자극할 수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좋은 조건을 앞세워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초 경기도 과천주공1단지 시공권을 따낸 대우건설은 일반분양가로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높은 3.3㎡당 3313만원을 제시했다.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3.3㎡당 3147만원에 사들이겠다는 ‘미분양 인수’ 조건도 내놨다. 그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에 막혀 분양보증을 못 받게 되면서 일반분양 시점도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정상적 수주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수주 과열이 분양가 인상 요인 중 하나인 만큼 과열된 곳에 한해 분양 원가 공개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과열을 부추기는 곳에 경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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