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 기록 가치 있다" 어르신들 기억 되살려 자서전 써주는 작가

이지영 2017. 9. 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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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꿈틀’ 박범준 편집장

12일 서울 순화동 월드컬처오픈 회의실에서 자서전을 앞에 놓고 사진을 찍은 박범준 ‘꿈틀’편집장. 손에 들고 있는 책중 맨 앞에 있는 책이 그의 아버지 자서전이다. [신인섭 기자]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속의 지혜와 교훈을 물려받는 일이지요.”

라이프 스토리텔링 전문기업 ‘꿈틀’의 박범준(44) 편집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펴내는 일을 한다. 주로 “부모님 자서전을 만들어 달라”는 자녀들의 의뢰를 받아 집필작업에 착수한다. 전문작가가 자서전의 주인공을 두 차례 찾아가 인터뷰를 한 뒤 한평생 삶의 이야기를 ‘기억의 책’이란 이름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해 자서전은 아니지만 마치 자서전처럼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삶을 돌아본다. 박 편집장은 ‘기억의 책’ 편찬의 의미를 다각도로 짚었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세대 간 소통의 기회가 만들어지며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출판사 등록을 한 ‘꿈틀’은 곧바로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을 받았고, 현재 사회적 기업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꿈틀’ 사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됐다. 대학(서울대 독문과) 졸업 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했던 그는 2003년 돌연 귀촌을 결정했다. 무주와 광양을 거쳐 2006년부터는 제주도에서 작은 도서관(‘바람도서관’)을 운영하며 산다.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한 환경이지만 그의 아버지 눈에는 ‘아직 정신 못 차린’ 삶에 불과했다.

“아버지와 현재·미래에 대해 대화할 때마다 다툼이 생겼어요. 관점과 가치관이 달라서죠.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에게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처음으로 편안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마치 사극의 세계 같았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지주 집안, 전쟁과 몰락, 가난한 고학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에게 아버지는 더 이상 답답하고 야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모아 책을 냈고, 마침내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꿈틀’이 펴낸 자서전은 60여 권에 이른다. 200쪽 분량의 책에는 가족들이 쓴 서문과 가계도·사진첩 등이 함께 실린다. 제작비용으로 건당 250만원씩 받아 회사를 꾸리고 있다. 순직 소방관 2명의 자서전은 무료로 만들어 선물했다.

박 편집장은 “가족의 기록을 남기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서전 작업을 위해 4시간씩 두 차례 인터뷰를 하는데 어르신들이 그 시간을 너무 행복해하신다. 인터뷰 중에 눈이 맑아지면서 감정이 팍 터지는 순간이 있다. 그땐 작가들의 눈물도 터진다. 자신도 몰랐던 자기 삶의 의미를 인터뷰 과정에서 찾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꿈틀’은 이제 사업 반경을 해외로까지 넓히려고 한다. 대만 지사를 세울 계획으로 현재 시제품을 제작 중이고 세계 각지의 이민 1세대 해외동포들을 찾아가 그 이야기를 기록할 꿈을 꾸고 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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