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파워 .. '강제 개봉'된 영화들
묻혀있던 작품들, 관객 요구로 햇빛
페북 돌풍 '겟아웃'은 200만 넘어
"한국서 통하는 흥행 포인트 달라져"
영화 수입사인 더블앤조이픽쳐스 측은 “스페인의 스릴러라는 낯선 영화라 수입을 망설였지만 미리 나온 호평에 따라 개봉을 결정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 반전이 여러 번 반복되는 이 영화는 이달 21일 개봉을 확정했다. 2월 미국 포틀랜드 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지만 스페인을 제외하면 남미·독일·대만 정도에서만 개봉된 영화다.
결국 ‘플립’을 수입해 개봉한 회사 팝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VOD와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호평 릴레이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영화는 결국 미국 개봉 7년 만에 한국 상영관에도 걸렸고 총 35만 명이 봤다. 새롭거나 기발한 내용 대신 10대 소년·소녀들의 사랑스러운 성장기를 담은 영화다. 최근 한국 영화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무공해 스토리에 대한 관객의 수요를 확인한 셈이다.
‘겟아웃’은 개인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영화 페이지의 영향으로 개봉했다. 2월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국내 상영 계획은 없었다. 따라서 예고편도 미국에서만 공개됐지만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현지의 예고편이 곧바로 업로드 됐고 댓글 7만개, 조회수 200만을 기록했다. 이 영화 배급사인 UPI코리아의 조예정 부장은 “영화의 메인 테마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었고 공포에 블랙 코미디가 섞인 애매한 장르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판단해 개봉 계획이 없었다”며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고 개봉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유명한 배우도 없고 장르도 독특한 이 영화도 강제개봉의 흥행사례로 기록됐다.
‘한국에서는 안되는 영화’라는 관념 또한 강제개봉이 깨뜨려가고 있다. 6월 개봉한 ‘지랄발광 17세’는 국내에서 맥이 끊어지다시피한 하이틴 코미디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개봉한 후 소니픽처스는 한국에서는 DVD 출시만 계획했다. 하지만 예고편의 조회수가 100만을 넘어서고 비행기에서 본 관객의 호평까지 가세해 흥행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소니픽처스는 미리 만들어놨던 DVD를 발매 예정 하루 전에 모두 폐기하고 극장 상영을 결정했다. “유머 코드가 너무 미국적이고 흥행 파워 있는 배우도 없다”며 한국 상영을 미뤘던 이 영화는 국내 관객 8만3000명을 모았다.
‘지랄발광 17세’를 홍보한 모비의 이은하 실장은 “이제 한국에서 안 통하는 유머 코드, 흥행 포인트 등의 공식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했다. ‘겟아웃’의 공포 코드도 마찬가지다. UPI코리아의 조예정 부장은 “한국 관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려있고 여러 장르의 다양한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고려도 안 했을만한 영화들의 국내 개봉을 더 넓게 검토하고 고민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했다. 소니픽처스의 박소영 과장은 “관객들의 선택이 선명하게 보이게 됐기 때문에 배급과 마케팅의 의사결정 구조도 앞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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