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보수야당, 애먼 현직 판사 불러 '사상 검증'

이혜리·박광연 기자 입력 2017.09.13. 22:19 수정 2017.09.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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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ㆍ“재판이 곧 정치” 법원 내부 통신망 글 두고 색깔론식 질문
ㆍ김 후보자 “상고허가제와 민사재판 배심원제 도입 검토”

3일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2일차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보수야당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58) 인사청문회에 사상 처음으로 현직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 사상 검증식 질문을 쏟아냈다. 김 후보자와는 10여년 전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것 외에는 연결고리가 없지만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는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인사청문회에 부른 것이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현직 판사를 증인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 침해라며 질문 시간을 포기했다.

여야는 이날 밤 늦게까지 진행된 청문회가 끝난 뒤 14일 오전 간사회동을 통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등을 논의키로 결정했다.

■ 판사에 색깔론 들이댄 보수야당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인천지법 오현석 판사가 청문회장에 출석하자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게재한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주광덕 의원은 “(정치적·이념적 편향이라는 지적을 받는) 김 후보자를 두둔하거나 지원사격해주기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한다”며 “공교롭게도 오 판사가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라고 했다. 오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다양한 주제로 여러 가지 글이 올라오고, 전에 다른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글을 보고 생각한 바가 있어서 올렸다”며 “마치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유감이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 판사의 글은 서로 다른 의견의 조율이라는 광의의 의미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해석되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이 글이 특정 정치색을 좇는다는 의미라며 공격에 나섰다.

전희경 의원은 “어떤 판사 앞에 가든지 정치색과 무관하게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흔드는 글이었기에 문제가 된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지적했다. 장제원 의원은 “원님재판, 인민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많은 법조인 선배들이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오 판사는 “표현이 미흡했다고 생각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 판사로서 현행법, 헌법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해서 (글에서) 생략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오 판사를 증인으로 부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했다. 기동민 의원은 “(오 판사가) 대법원장 인사 검증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오 판사의 사상 검증을 할 의도라면 인사청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질문 시간을 포기했다. 백혜련 의원은 “청문회에 실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증인으로 보이는데 국회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오 판사에게 사과했다.

■ 상고허가제·대법관 증원 검토

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여러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대법원에 사건이 과하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2심 판결 중 허가를 받은 사건만 상고하게 하는 ‘상고허가제’는 재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상고허가제는 1981년 3월 도입됐다가 1990년 9월 폐지됐다. 김 후보자는 “상고허가제가 가장 이상적이고 (여러 방안 중) 추진하고 싶은 제도”라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하다 실패한 ‘상고법원’에 대해서도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면서 소수정예의 관료적 권위주의 때문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후보자는 “대법원은 지금까지 대법관 증원에 부정적이었지만 저는 대법관 증원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형사재판 합의부 사건 중 피고인이 신청한 1심 재판에 대해서만 실시하는 국민참여재판(배심원제)을 민사재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나왔다. 김 후보자는 “국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면서 사법에서의 국민주권을 형성하고 법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며 “민사재판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리·박광연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