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4)이사 선임 때 '다양성' 확보..'국장 책임제'로 자율성 지켜야

남지원 기자 입력 2017.09.13. 22:09 수정 2017.09.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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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지배구조 개선·제작 자율성 보장 장치 필요
ㆍ시민 참여해 추천, 숫자 대폭 늘리면 정권이 통제 못해
ㆍ이사 승인 안 받는 국장급 제작 땐 ‘외압 방어막’ 생겨

방송인 김제동씨가 13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노조 총파업 집회에 나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MB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일화를 전하고 있다. 앞서 11일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때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 온 사실을 밝혔으며 다음날 김제동씨를 포함한 82명의 실명이 언론에 공개됐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정기 이사회. MBC의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방문진은 이날 3개월 넘게 끌어온 2016 MBC 경영평가보고서 채택을 안건에 부치고 논쟁을 벌였다.

경영평가보고서는 매년 보도·시사, 편성·제작, 경영, 기술 분야를 평가한다. 이 가운데 보도·시사 분야 보고서에 MBC의 불공정성 문제, 사측의 부당한 노사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사회 다수를 차지한 구 여권 추천 이사들이 “JTBC와 MBC 보도를 왜 비교하느냐” “MBC가 친정부·여당 보도를 했고 중립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경영평가보고서 채택은 5 대 3으로 부결됐다. 구성원들이 대거 파업을 하는데 방문진은 경영진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 ‘시민 참여’ ‘다양성 확보’ 관건

지난 9년간 공영방송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추락하고 ‘정권 나팔수’라는 비판을 산 배경에 여당 편향적인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가 있다. KBS 이사회 11명 중 7명, MBC 방문진 이사회 9명 중 6명이 여당 몫이다. 이런 기구들이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선임해 정권 입맛대로 보도와 제작에 영향력을 미쳐온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이냐’란 문제만 남았다.

현재 국회에는 공영방송 이사 수를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선임하도록 하는 방송법 등 관련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여야 양쪽의 눈치를 다 살피는 사람이 사장 자리에 앉으면 더 큰 문제를 만들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쟁이 불붙었다. 일단 지금의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참에 구조 자체를 바꿔 정치권의 입김을 원천 차단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가 제안하고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법안을 만들고 있는 ‘시민사회 참여형 모델’이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처럼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한 국민대리인단이 이사들을 추천하자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정권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세심한 제도 개선책도 고민해봐야 한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공영방송 이사들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경제적 혜택을 대폭 줄여 임명권자에게 충성할 유인을 없애고, 성별·연령 등에서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동시에 이사 숫자도 대폭 늘리면 정권이 이사회를 쉽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사들이 잘못된 선택이나 편향된 결정을 했을 때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자율성 보장할 ‘내부 장치’ 절실

방송사 구성원들은 지배구조를 뜯어고치는 것 못잖게 중요한 것이 내부의 장치라고 말한다. 제작 실무자들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송사 내부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법에는 ‘종합편성이나 보도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사는 반드시 취재·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방송사업자가 편성규약을 지키지 않을 때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그러니 경영진의 의지 없이는 편성규약이 사문화되기 쉽다. KBS 편성규약에는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을 경우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옹호하는 리포트 제작을 거부한 기자들이 징계를 받는 등, 편성규약이 지켜지지 않은 적이 많았다.

KBS와 MBC의 노사 단체협약에도 공정방송 관련 조항이 들어 있지만 이것 역시 힘을 쓰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MBC의 ‘국장 책임제’라는 전통이다. 임명 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임원급 본부장이 아닌 국장급이 보도·제작·편성의 책임을 지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치다. 이 제도는 왜곡된 지배구조 아래서도 MBC의 제작 자율성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시절인 2010년 이 제도는 무력화되고 ‘본부장 책임제’로 전환됐다. 그후 제작과 편성이 외압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노사가 함께 만든 공정방송 관련 조직인 KBS 공정방송위원회와 MBC 공정방송협의회도 보도와 제작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찾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MBC에서는 2013년 단협이 해지된 뒤 조직 자체가 운영되지 못했다. KBS에서는 정례 공방위가 계속됐지만 일선의 지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는 공방위를 열라는 요구조차 여러 차례 묵살됐다.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안은 편성규약과 편성위원회를 명문화하고 강제성을 부여했다.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고 편성위원회의 제청으로 방송편성 책임자를 선임하며, 방송편성규약을 준수하지 않거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조항도 마련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