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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증거 '제논'..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원호섭 입력 2017.09.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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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분열때 나오는 세슘·요오드 화강암 뚫고 나오기 힘들어
포집된 공기 11시간 분석..제논이 내는 에너지로 확인
원안위, 제논 13회 검출..사용핵연료는 확인못해
지난 8일을 시작으로 12일까지 우리나라 동북부 국토와 해상에서 방사성물질 '제논(Xe)'이 모두 13회 검출됐다. 유의미한 양(0.1mBq/㎥ 이상)이 국토 동북부에 있는 고정식 장비에서 9차례, 동해상에서 움직이는 이동식 장비에서 4차례 발견된 것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따르면 6차 북한 핵실험 직후부터 지난 7일까지는 한반도에 남동풍이 강하게 불어 방사성 핵종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날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7일을 기점으로 풍향이 바뀌면서 제논 측정이 가능해졌다.

최종배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은 브리핑에서 "남한으로 유입된 기류 등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제논이 북한 풍계리 지역에서 내려온 것이 확실하고 핵실험과도 연관 있다"고 발표했다. 다만 검출된 제논의 종류가 1종(제논-133)에 불과해 우라늄 플루토늄 등 어떤 원료를 썼는지, 단순 원자폭탄인지 수소폭탄인지 등 추가적인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단순 핵실험 여부를 뛰어넘는 실험정보를 구하려면 가까운 러시아나 중국의 협력을 얻어 장비를 설치하고, 제논-135 등 다른 종의 제논도 검출해야 한다.

핵분열이 발생하면 방사성물질인 세슘(Cs)과 요오드(I), 제논 등이 만들어지지만, 북한 핵실험의 스모킹건은 누가 뭐래도 제논이다.

세슘과 요오드는 모두 입자로 이루어진 '입자성 물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와 같다. 핵실험을 지하에서 실시하는 만큼 입자가 있는 물질은 화강암 기반의 단단한 지반을 뚫고 나오는 게 쉽지 않다. 또한 핵폭발이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주변 온도가 수만 도 이상 올라가는데, 이때 화강암 안에 있던 '규소'가 순간적으로 녹은 뒤 굳으면서 빈 공간(기공)을 채우는 '유리화' 현상이 일어난다.

김철수 KINS 방사능분석센터장은 "핵실험 시 입자성 물질인 세슘과 요오드는 대기 중으로 많이 누출되지 않는다"며 "또한 누출된 세슘과 요오드 역시 다른 입자들에 달라붙어 확산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제논은 다르다. 원자번호 54번인 제논은 '불활성 기체'(화학적으로 안정한 기체)다.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만큼 다른 입자들과 거의 반응하지 않고 공기 중으로 확산된다. 김 센터장은 "세슘과 요오드 역시 북한 핵실험의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남쪽에서는 제논을 찾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제논을 검출하는 일은 세슘·요오드를 분석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KINS와 원안위는 전국 15곳에 방사능 측정소를 운영하고 있다. 측정소에는 모터가 작동하면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필터'가 있다. 공기 중에 있는 입자성 물질은 이 필터에 걸러진다. 이후 필터를 '감마계측기'에 넣으면 요오드·세슘이 뿜어내는 에너지인 '감마선'이 측정된다. 기체인 제논은 필터로 걸러낼 수 없다. KINS는 이를 위해 '차콜(Charcoal)'을 활용한다. 나무와 같은 유기물을 불완전 연소시킨 차콜에는 기체를 가둘 수 있는 수많은 '기공'이 있다. 대기 중에 노출시킨 차콜을 밀폐시켜 분석실로 가져온 뒤 냉각 과정을 통해 수분을 제거하고 이후 이산화탄소를 빼낸다. 그 뒤 차콜에 '헬륨' 가스를 넣어 기공에 존재하는 기체를 빼낸 뒤 검출기에 넣는다. 이 검출기는 제논이 방출하는 감마선과 베타선을 측정한다.

김 센터장은 "에너지 값을 분석하면 핵실험으로 만들어진 제논 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공기 포집에 걸리는 시간은 12시간 정도. 이후 계측과 분석에 11시간 정도 소요된다. KINS 연구진과 원안위는 지난 3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24시간 쉬지 않고 대기 중 제논을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기 중에서 핵실험에 의한 제논을 찾는 것은 거대한 호수에서 한 방울의 잉크를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김 센터장은 "제논은 반감기가 5일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에서 검출하기가 힘들다"며 "빠른 분석을 위해 연구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