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면 생각나는 그 책들 읽어보고 싶다

영화가 흥행하면 원작인 소설도 주목 받는다. 하지만 <명량> <택시운전사> <군함도>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영화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지 않았는데 영화와 같은 시대상을 담은 문학작품들이 큰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파도가 문학을 물결치게 한다. 올해 역사적 사실을 담은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영화와 같은 시대를 조명한 한국 문학작품에 독자들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올 8월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를 광주까지 데려다준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다. 독일 공영방송 ARD-NDR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 영화 <택시운전사>의 관객 수는 누적 1196만1360명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흥행으로 5·18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출판사 창비에 따르면 소설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가 최근 33쇄를 찍고 20만부를 돌파했다. <소년이 온다>는 계엄군에게 맞아죽은 친구를 본 중학교 3학년인 동호가 계엄군에 맞선 이들의 시신을 돌봐주는 일을 돕다가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출판사 창비 제공

한수산의 <군함도> 영화 내용과 달라

소설가 황석영·이재의·전용호가 공동집필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도 지난 5월 전면개정판이 나온 지 3개월 만에 10쇄를 돌파했고, 1만5000부를 발행했다. 600면이 넘는 ‘벽돌책’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 책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활동했던 대학생·사회운동가들의 증언과 계엄군의 군사작전 보고서, 관련 재판 기록들이 담겨 있다. 또한 영화 <택시운전사> 속 주인공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활약도 실려 있다. 박주용 창비 문학출판부 한국문학팀 대리는 “영화와 문학을 결부시켜 책을 홍보하면 주목도가 높아진다”며 “영화 <택시운전사>가 한강 작가의 <소년의 온다>나 황석영 작가가 공동집필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원작으로 하지 않았지만, 책 판매에 큰 영향을 줬다. 하향 곡선을 그리는 출판계에서 영화와 문학을 결부한 마케팅은 앞으로도 시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 7월에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해저 탄광섬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투쟁기다. ‘군함도’는 일본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7일 영화 <군함도>의 관객 수는 누적 657만9924명이다. 영화는 ‘국뽕 영화’에서 ‘친일 영화’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지난해 출간된 소설가 한수산의 장편소설 <군함도>가 주목을 받았다. 영화 <군함도>와 소설 <군함도>는 소재만 같을 뿐 내용은 다르다. 출판사 창비에 따르면, 장편소설 <군함도>는 올해 4만권이 팔렸다. 소설 <군함도>의 편집자인 김선영 창비 문학출판부 한국문학팀장은 “영화 <군함도>가 다양한 논란이 있었지만,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 하시마섬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에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며 “소설 <군함도>를 쓴 한수산 작가에게 언론 인터뷰나 외부 행사, 강연 초청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영화가 뜨면 한국 문학이 재조명되는 현상을 작가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집필한 이재의 작가는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책의 판매기간을 길게 해주었다”며 “전적으로 영화가 흥행해서 책이 잘 팔렸다기보다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맺혀 있던 시대적 요구가 광주 민주화사태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장편소설 <군함도> 작가인 한수산씨는 “영화 <군함도>가 친일 영화라는 비판까지 받아, 같은 제목인 소설 <군함도>도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독자도 일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잊혀질 뻔한 역사적 비극을 수면 위로 꺼내준 것은 의미가 있다. 군함도를 영화적 문제점으로 끝낼 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 장편소설 「군함도 1·2」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나가사키 남서쪽에 위치한 하시마섬을 배경으로 했다. 이 섬은 군함이 떠 있는 모습과 닮아 '군함도'라 불린다. / (주)쇼박스 제공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서사의 힘

영화가 부상하면 국내 문학이 뜨는 현상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직장인 김유경씨(30)는 “어떻게든 책을 읽게 되는 건 좋은 현상이다. 역사적 사건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뤄지면서 사람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이 시기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노백화씨(52)는 “영화를 통해 문학이 재조명 받는 건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영화 <명량>이나 <택시운전사> 같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문학작품은 유명 작가가 쓴 작품들이다. 이들이 쓴 작품만 재조명되지 문학 전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흥행해 원작인 소설이 다시 주목을 받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회적 현상이다. 하지만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과 맞선 ‘명량해전’을 그린 2014년 개봉작 <명량>·<택시운전사>와 <군함도>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영화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지 않았는데 영화와 같은 시대상을 담은 문학작품들이 큰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화로 인해 문학작품이 주목 받는 이유를 정서적인 측면과 ‘서사의 힘’ 이라고 분석한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있던 일보다 있을 법한 일이 더 강렬한 효과를 준다고 말했다. 역사나 기사에서 가져오는 증언이 진실의 힘이 있겠지만, 1980년 5월 광주나 일제강점기에 군함도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도 충분히 공감할 법한 얘기로 바꾸는 게 문학적 작업이다. 문학은 사건의 엄밀함을 넘어서 ‘정서적 공감도’를 폭발력 있게 넘기는 작업이다”라고 분석했다. 김유동 강원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영화는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좀 더 심화시킬 수 있는 게 문학이다. 문학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은 건조한 역사적 사실을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정상빈 인턴기자 literature09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