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동' 자본주의란?

김유진 기자 2017. 9. 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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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1분기 기준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는 약 19억명. 페이스북에 접속해 친구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관심있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행위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 오래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표출하는 사적인 경험이나 감정, 태도는 세계 최대 디지털 네트워크를 떠받치는 핵심 데이터이자 수익의 원천이다.

과거 산업 자본주의에서 기계나 노동력에 의해 자본이 축적된 것과 달리, 페이스북이나 구글로 대표되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개인적 관계, 친밀성, 반응, 정서의 표출 등과 같은 ‘정동(affection)’을 상품화한다. 정동은 객관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감정상태, 또는 감정의 동적인 변화를 뜻하는 말로, 학계에서는 감정과 구분해서 사용한다. 주로 신경과학에서 논의되다가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사회학, 문화연구 분야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이항우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달초 펴낸 <정동 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한울아카데미)에서 플랫폼 경제의 특징을 ‘정동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4차 산업혁명이 정동 자본주의를 더욱 촉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에 표시되는 게시물을 결정하는 에지랭크 알고리즘을 통해 모든 관계적 소통을 위계화한다. 페이스북이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좋아요’나 댓글의 수, 공유 횟수 등 관계의 친밀성을 보여주는 ‘정동’ 가치이다. 구글 검색 순위를 보여주는 페이지랭크 역시 그동안 이용자들이 많이 찾아본 사이트에 더 높은 랭킹을 부여한다.

이 교수는 정동 자본주의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주요 4차 산업 기술은 인간의 일상적인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데이터를 관리, 통제한다.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과 사물이 생산하는 비물질적인 요소가 이윤 추구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고용 불안정성이 한층 더 높아졌지만, 노동이 감소하거나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다”며 “문제는 사회화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물질적·화폐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정동 자본주의에서 개인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정동 경제에서 노동은 생산, 소비, 여가, 일상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실천”으로 정의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자유 노동’을 수행하므로, 일반적인 의미의 착취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이 교수는 “노동 결과물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사용자는 착취당한 노동의 또 다른 측면인 소외를 경험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자유 노동을 사적으로 전유하면서 사실상의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고 봤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사용자 창출 데이터’와 ‘사용자 제작 콘텐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만, 사용자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 교수는 따라서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자본소득세를 올리거나,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해 자유 노동을 제공한 사용자들에게 보상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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