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말ㅆ·미]도둑맞고 빈지 고친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2017. 9. 11. 2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일이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대해, 비록 소는 잃었지만 다시는 잃지 않게 보강하면 되지 않느냐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는 여기서 소가 갖는 가치를 생각 못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소 한 마리 값이 집 한 채에 맞먹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이 ‘소보험’이었으며,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가장 나쁜 도둑이 소도둑이라 할 만큼 농가에서 소를 잃는다는 건 집이 무너지는 거와 같았습니다.

같은 속담으로 ‘도둑맞고 빈지 고친다’도 있습니다. 빈지는 옛날의 셔터로, 여러 장을 옆으로 밀어 끼워 가게 문을 막는 두툼한 널빤지들을 말합니다. 이 널에는 각각 널빤지 폭보다 긴 각목이 일정 간격으로 쳐져 있어 널을 눌러도 사이가 안 벌어집니다. 셔터가 덜렁거리면 몽땅 도둑맞고 말겠지요. 매일의 장사에 지쳐 내일 하지, 내일 하자 하다가 장사 밑천 물건들 모두 털려 쫄딱 망하는 거지요.

근대에 와서는 각목으로 문짝만 하게 짠 틀에 함석을 덮어 같은 방식으로 가게 문을 막았습니다. 이것을 함석빈지라고 합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여러 편리한 셔터들 때문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이 함석빈지가 용케 남아있다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방송에 나간 뒤로 관광지가 되자 함석빈지를 버리고 셔터로, 오래된 문틀을 뜯어내고 섀시와 방부목으로 바꿨더군요. 그리고 그 뻔한, 교복 입고 사진 찍기, 달고나장수, 예쁜 카페와 벽화들로 근대문화유산들을 밀어버렸습니다.

문화관광의 밑천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곳만의 특색 있는 역사와 풍물 아닐까요? 전국 관광지에서 다 파는 돌하르방처럼 뻔하고 흔한 것이 아니라. 함부로 새로 고쳐 특색이란 귀한 소를 잃어버린 외양간 앞에서 다신 안 올 발길만 돌렸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