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現정부, '80년대 운동권' 집단 신념을 구현.. 속수무책 지켜봐야 하는 내 悔恨"

최보식 선임기자 2017. 9. 1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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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포퓰리즘' 출간한 김용태 의원]
"과거 80년대 운동권은 조직의 중앙이 基層을 지도한다는 믿음을 가져.. 이들이 권력 핵심에 포진"
"이들은 스스로를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틀려도 끝까지 밀어붙이고 大衆을 동원할 것이다"

"과거 80년대 운동권은 조직의 중앙이 기층(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졌다. 바로 이들이 권력 핵심에 포진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현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경제정책은 이들 집단의 가치와 신념이다."

김용태(49) 바른정당 의원은 서울 양천을(乙) 지역에서 3선(選)이지만, 여전히 '소장파'로 분류된다. 최근 '문재인 포퓰리즘'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정치인이 홍보용 책자를 내는 경우는 많지만 정권 비판 책자를 개인적으로 내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밥벌이 직업'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별로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 했다.

"대중적으로 읽힐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바른정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 의원들에게는 책을 배포했다. 야권이 공동 전선을 구축해 맞서야 할 상대는 '국가주의 포퓰리즘'임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김용태 의원은“보수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라의 실패로 가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인 80년대 운동권을 '국가주의자'로 규정했는데?

"이들은 국가 기구와 권력, 국가 자원을 동원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집행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정권 초반에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이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도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지 대중을 동원할 것이다. 정권 내내 이럴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들 정책은 80년대 운동권의 집단 신념이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이 80년대 운동권의 집단 신념을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는 뜻인가?

"지금 정권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이 책을 쓰면서 서재에 꽂혀 있던 '정치경제학원론'(사회주의 경제학을 서술한 책)을 펴봤다. 대학 시절 서클에서의 필독서였다. 지금 정권 핵심부의 생각 근저(根底)에 이런 고색창연한 마르크시즘이 있는 거다."

―80년대로부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고, 이들의 생각도 변화하는 현실에서 교정됐을 것으로 보는데?

"이들은 진지한 자기 성찰과 고백 과정이 없었다. 여전히 잘못된 이념과 가치의 잔상(殘像)이 남아 있다. 과거 운동권 경력으로 도덕적 우위를 내세웠고, 정치권에 들어와서 배타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권력을 확대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정부를 '촛불정부'로, 국정 기조를 '촛불의 명령'이라고 규정한다. 누구도 국정 운영 주체인 자신들에게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과연 국민의 뜻과 정의를 독점할 권한이 있는가. 문 대통령은 41%의 득표로 당선됐을 뿐이다."

―41% 득표였지만 현재 지지율은 70~80% 선이다. 보수 진영은 불만이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국민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는 걸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여론 지지율이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동안 억눌렸던 게 터져 나오고, 솔직히 문 대통령이 폼나게 하지 않나. 국민의 손에 무엇이 쥐어질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또 지지율에는 착시가 있다. 야당의 존재 자체가 없으니 독점(獨占)을 하고 있는 거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정책 공약을 알고서 뽑은 거다. 그가 우파(右派) 정책을 펴지 않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게 옳은가?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펼 수는 있지만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지금은 아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현 정권은 나름대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된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가령 '소득주도성장론'은 하나의 가설(假說)에 불과하다. 가계 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증가해 기업 생산이 늘어나고 다시 고용이 늘어나 경기가 선순환된다는 거다. 현실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탁상공론이다. 경제가 이렇게 간단하면 어느 누가 고민하겠나."

―나도 '소득성장론'의 허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전 보수 정권의 경제 정책이 모두 옳았나. 정권을 잡으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보수의 시각에서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와 다른 나라의 과거 사례로 반박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직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는 비슷하다. 현 정권은 단지 옳다는 신념만으로 전면적 정규직화,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 권력이 시장 질서와 생산 관계에 개입한다. 이렇게 간단하면 왜 다른 나라들은 문재인 방식으로 경제를 해결하지 않겠나. 오히려 현실에서 훨씬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 해결에는 소위 용빼는 재주가 없다. 기업 구조 혁신, 노동과 고용의 유연화, 정부의 재정개혁이 이뤄져야지, 지금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조정하지 않을까 싶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 정도의 현실감각이 있다고 본다.

"노무현 정권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현실에서 부딪혀 우회전했지만,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은 지지와 동의라는 미명하에 대중을 동원해 정권 내내 밀어붙일 것이다. 이대로라면 '포퓰리즘 독재'의 늪에 빠질 것이다."

―김 의원은 책에서 '유능한 정치는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도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게 맞나, 아니면 그가 유능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나?

"문 대통령의 정치 기술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은 아직 정책적 이해가 부족하고 결과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뭘 몰라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한다는 뜻인가?

"국민에게 지금의 열기가 식으면 어떤 결과를 맞을지를 알려줘야 한다. 야권의 무기력과 지리멸렬로 아무런 대응을 못 하는데, 현 정권은 자신의 정책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틈만 나면 대중 동원을 할 것이다. 이들은 대중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권력까지 쥐고 있다. 이게 무서운 거다."

―보수 분열에는 김 의원도 한몫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탄핵 과정에서 제일 먼저 새누리당을 탈당했는데?

"당시 다들 주저할 때 새판을 짜기 위해서 물꼬를 터야겠다고 나왔지만…, 나는 보수 분열에 분명히 책임이 있다. 솔직히 그때는 보수가 집권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고, 정권을 넘기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도 여겼다."

―선도(先導) 탈당에 대해 '성급했다'는 후회가 있나?

"인간적으로 그런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름대로 대의명분을 좇았지만 상황을 오판한 게 사실이다. 바른정당이 다수(多數)가 되지 못했고 '캐스팅 보트'조차 못 쥐는 취약한 구조가 됐다. 나로서는 실패한 셈이다. 정말 회한이 되는 것은 문재인의 포퓰리즘 독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보수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라의 실패로 갈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에 보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어야 하지 않았나?

"당시 바른정당 안에서 이 문제를 놓고 5시간 토론을 벌였으나 유승민 후보가 '단연코 거부하겠다'며 반대했다. 이 때문에 13명 의원이 욕을 먹고 자유한국당으로 되돌아갔다. 대선 기간 나는 유승민 후보를 돕지 않았다. 그의 공약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에서 뽑은 대선 후보의 공약에 동의할 수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유 후보의 공약에는 탈원전,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증세,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등이 들어 있었다. 눈치챘겠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지금까지 이게 족쇄가 되고 있다. 바른정당이 도그마화된 유 후보의 공약에서 못 빠져나오면 현 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

―당초 그런 개혁 취지에 동의해 바른정당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바른 보수'는 일종의 신화나 구호처럼 됐다. 우리 당원 중에도 '바른 보수'가 뭔지를 잘 모른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게 '바른 보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탈당한 것인가?

"새누리당의 이념과 가치에 반대해 탈당한 게 아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공당(公黨)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작태, 친박(親朴)의 반동적인 행태 때문이었다. 내 개인의 살길보다 보수의 살길을 찾아 나왔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바른정당은 개혁진보 정책을 내세웠다. 나는 이에 맞섰지만 당내 노선투쟁에서 졌다. 지금 바른정당은 보수인지 아닌지가 어정쩡해졌다. '자유한국당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거다."

―'자유한국당 트라우마'가 무슨 뜻인가?

"결국 '자유한국당과 똑같은 놈들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거다. 이 때문에 눈치 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밑동이 흔들리는데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더 이상 자유한국당과의 관련성에 신경 쓰지 말고 보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바른정당의 실패에는 '배신자당(黨)'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면도 있는데?

"누가 누구를 배신했나. 박근혜 정권은 권력 사유화와 친위 부대로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국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치 세력을 확장해야 하는데도 '친박''진박''골박'으로 우리 내부의 기반마저 축소시켰다. 나머지는 들러리나 적(敵)으로 돌려놨다. 이런 무능하고 오만한 정치로 결국 보수 진영을 망하게 했다."

―지금 보수당은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년층을 잃었다. '노인 정당'처럼 점점 되어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추진했을 때다. 민주노총 등 기득권 노동세력이 반대하는 걸 젊은이들은 봤다. 누가 우리 편이냐, 젊은이들은 자신의 선입견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노동개혁 입법이 가능했고 청년을 보수당으로 끌어올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시점에 청와대가 논란 많은 국정교과서 안(案)을 던졌다. 전선(戰線)이 흐트러졌고 노동법은 날아가 버렸다. 유능한 정치가 있어야 국가 개혁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 나이로 오십인데 그가 젊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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