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극 항로 개통은 한국의 재도약 기회다
대서양 항로가 산업혁명 이끌어
북극 항로는 4차 산업혁명 촉진
북방경제위가 성공의 산실 되길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첨단 과학기술과 4차 산업혁명을 무조건 동일시하는 것이다. 흔히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1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고들 한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원천기술은 프랑스인 드니 파팽(Denis Papain)이 먼저 개발했고, 중국 송(宋)나라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중국에서도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과 미국에서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을 전기·화학혁명이라고 하지만 전기의 아버지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는 영국인이고, 근대 화학의 아버지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는 프랑스인이다. 결국 기술의 개발이 산업혁명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1만여 년의 오랜 농업사회에 처음 근본적 변화가 찾아온 것은 15세기 말 ‘향신료 루트(spicy route)’가 열리면서다. 한때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후추와 정향·육두구 등이 인도네시아 동쪽 끝 몰루카(Molucca) 제도에서 생산돼 지중해를 거치면서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번성했다. 결국 향신료 무역을 기반으로 17세기 연합동인도회사(VOC)와 증권거래소를 설립한 네덜란드가 ‘상업혁명(Commercial Revolution)’을 통해 패권국으로 등장했다.
18세기까지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대서양 항로(The sea route to India & South Atlantic route)’가 열리자 인도의 면직물과 신대륙의 설탕 등 제조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상품의 등장으로 인해 영국에서 제조업 기반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일어나 대영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길이 먼저 열려야 기술이 동력을 얻어 혁명을 일으키고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에 의한 온실효과는 인류 문명이 직면한 가장 큰 시련이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은 위기에 대한 대처와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포착으로 가능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결빙이 녹아 불과 10여 년 후엔 북극 항로(North Pole Route)가 상용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 북극 항로가 대한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반만년 민족사에 일대 전환점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대 선진 열강의 모태가 된 향신료 루트나 대서양 항로는 한반도에서 저 멀리 비켜나 있었다.
우리는 인류 문명사의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를 이룬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넋 놓고 바라만 보며 고통과 치욕의 근대사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한민족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공동 번영(win-win)을 명분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고, 최근에는 이를 북극 항로와 연결하려 한다. 일본이 지난해 러시아 경제 분야 협력담당 대신을 신설한 명분은 북방 4개 섬의 영토 분쟁 해결이지만 이 또한 북방정책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대한 국가 전략의 실체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깊숙이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중국판 4차 산업혁명인 ‘중국 제조 2025’의 성공을 위한 국가 전략이라면, 일본의 북방 경제협력은 일본판 4차 산업혁명인 ‘소사이어티 5.0’의 성공을 위한 국가 전략임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의 5분의 1도 채 안 되는 소국 네덜란드와 한반도 크기만 한 영국이 상업혁명과 1차 산업혁명으로 선진 강대국의 영광을 누렸다면, 이제 북극 항로의 개통을 앞둔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성공과 배달민족의 영광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설되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선진국 대한민국의 산실(産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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