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의 취재일기] 다주택자, 어쩌다 투기꾼?

고란 2017. 9. 11. 0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란경제부 기자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

위는 투자(投資), 아래는 투기(投機)의 사전적 정의다. 이에 따르면 투자와 투기는 두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먼저, 이익의 규모. 그냥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투자고, ‘큰 이익’을 보려고 하면 투기다. 다른 하나는 들이는 노력이다. 시간이나 정성을 쏟으면 투자고, 그렇지 않고 기회만을 노린다면 투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8월 2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다주택자가 투기 목적으로 많은 집을 사고 있고, 그 과정에서 집값 불안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의 상징은 이른바 ‘갭(gap) 투자’를 한 이들이다. 갭투자는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들여 집값이 오르면 팔아 이익을 얻는 투자법이다. 전셋값과 매매가격이 200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면 10채를 사들이는데 2억원만 있으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서 보 면 2000만원만 있으면 세 들어 사는 집을 내 집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집을 사지 않을까. 2000만원이 없어서? 주된 이유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일 게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붙어 있다는 건 시장의 다수는 집값이 안 오를 거라고 전망한다는 의미다.

반면 갭투자 하는 이들은 집값이 오를 거라고 보고 베팅하는 이들이다. 기회만 틈탄 게 아니라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집을 샀다. 그리고 그 베팅의 크기에 따라 더 큰 이익을 거뒀다. 시장에서는 그래서, 이를 (갭)투기가 아니라, (갭)투자로 부르는 게 아니겠나.

그렇지만 정부는 분명 다주택자를 ‘투기 주범’으로 규정했다. 다른 재화와는 다른, ‘집’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김현미 장관은 “집은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졸지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고위공무원 15명 중 8명이 투기 주범(다주택자)이 됐다. 최근 임명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재산 공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부인 명의로 전세 끼고 집 한 채를 더 샀다. 다주택자다.

현 정권 창출에 기여한 많은 이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집값 잡기에 실패한 사실을 꼽는다. 간절함은 알겠다. 그렇지만 모든 다주택자를 투기범으로 몰고 가는 프레임이 맞는 걸까. 그게 맞는다면 청와대와 정부 고위급에 최 원장 같은 ‘어쩌다 투기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