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전문성 갖춘 드림팀 뽑아야

전정홍,이승윤 2017. 9. 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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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의결기구 기금운용위..아마추어 인사들로 채워져
지배구조 개혁은 계속 지연

◆ 국민연금 인선 ◆

문형표 전 이사장이 구속기소된 이후 9개월째 공석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새 이사장 공모 지원 접수가 8일 마감된 가운데 새 이사장이 임명되면 공단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주형 기자]
"기금운용위원회라고 하지만 1년에 몇 차례 모여 보건복지부에서 내놓은 안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형식적으로 서명하는 게 전부입니다. 회의 내용도 가입자 대표들이 각자 업계 논리를 주장하는 정도일 뿐, 기금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심도 깊은 토의도 이뤄지지 않아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1년 넘게 참석한 한 기금운용위원의 신랄한 평가다. 실제로 국민 노후를 위해 600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체제에 대해선 '옥상옥'과 '아마추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이미 세계 3대 연기금 투자자인데다 오는 2043년 기금규모가 2500조원까지 불어날 예정이지만 지배구조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탄핵정국에서 빚어진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한 논란도 결국은 '아마추어 사공'이 너무 많은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논의는 이미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생길 때마다 봉합하는 수준에 그쳤다. 가장 최근인 2015년 보건사회연구원 명의로 정부가 '국민연금 관리·운용체제 개편안'을 발표하며 기금운용공사 독립 등에 시동을 걸었지만, 결국 지난 19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우선 현행 지배구조에선 사공이 너무 많다. 법적으로 국민연금의 기금 관리·운용권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갖고 있다.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운용목표와 주요 투자 관련 사항을 결정한다. 위원회 결정에 따라 실제 국민연금 기금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에 속해 있다 보니, 공단 내 이사에 불과한 기금운용본부장은 복지부 장관과 공단 이사장, 이사회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기획재정부에 감사원까지 더하면 기금운용본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층층시야'다. 이런 중층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는 문재인정부 들어 사실상 백지화됐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7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를 통한 독립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한국과 반대로 세계 3대 공적연금 가운데 2곳은 기금운용조직을 별도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공적연금(CPP)은 1990년대 기금 고갈 문제가 대두되며 1998년 별도의 기금운용공사인 캐나다공적연금공사(CPPIB)를 설립했다.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와 위원장, 1000명의 직원이 기금운용을 책임지고 성과에 따라 평가보수를 받는다.

4개의 펀드로 분할해 운용하는 스웨덴의 국가연금기금의 경우와 같이 국민연금기금을 몇 개 펀드로 분리해서 운용하는 방안도 기금의 절대 규모가 커지면서 우려되는 여러 부정적인 요인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더욱이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는 가입자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제외하고도 기재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차관이 당연직 위원이다. 2015~2016년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정부 당연직 위원 가운데 기재부를 제외한 부처들은 1년에 1회 정도 얼굴만 내비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차관이 아닌 차관보나 실장 등이 대신 참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사용자단체, 민주노총·한국노총을 포함한 노동자단체, 농어민·자영업단체 대표, 시민단체 등이 모두 위원에 포함돼 날로 전문화되는 안건을 논의조차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나마 20명의 위원 가운데 전문가 몫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보건사회연구원장이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다른 기금운용위원은 "국민연금이 점점 수익률을 내기는 어려워지는데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금운용위원은 안정적인 채권투자에만 관심을 쏟는 거꾸로 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그나마도 1년에 회의 개최 횟수가 5~6회밖에 되지 않고, 보상체계도 마땅치 않아 위원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독려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5년 당시 발표한 기금운용체제 개편 공청회 안에서는 금융 전문가들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은 위원들 중에 선임하는 방안이 포함된 바 있다. 하지만 600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놓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당분간 지배구조 개편은 공전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 국정기획위원회 단계에선 연내 개편을 마무리하는 시간표로 논의가 진행됐지만 협의가 지연되면서 연내 개편은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도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기업과 같은 외부조직은 물론,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모니터링하고 조정할 수 있는 대표성과 전문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정홍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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