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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2인조 밴드 글렌체크(김준원·강혁준, 이상 26)가 4년의 침묵을 깨고 최근 공개한 미니앨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는 이들의 기존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낯선 요소가 가득하다.

기존의 트랜디한 신스팝 요소를 많이 걷어낸 빈자리에 R&B나 힙합, 사이키델리록, 엠비언트 등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적용했고, 사운드는 한층 어두워졌다. 앨범의 구조에서는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등 프로그래시브록 밴드의 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원(보컬 겸 기타)과 강혁준(신시사이저 겸 일렉트로닉스)은 “변화를 추구하면 예전 것을 그리워하는 의견과 새로운 걸 선호하는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다. 그런 걸 두려워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게 무서우면 예전과 똑같은 걸 해야 하는데 그건 제자리에 머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새로운 걸 제안한 뒤 그게 싫은 이들은 빠져나갈 테고,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도 있을 테고. 그렇게 변해가고 싶다”고 새앨범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새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성할 때 글렌체크는 조지 루커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만들 때 바탕을 뒀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연구했다. 수록곡은 총 5곡에 불과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들이 새 앨범에 적용한 스토리는 계속 이어질 예정. 새 앨범의 콘셉트, 각 수록곡을 듣는 법이 궁금해 멤버들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새 앨범 ‘익스피리언스 EP’, “지금까지 창작물 중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

“지금까지 글렌체크의 창작물 중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이다. 앨범 전체가 스토리텔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곡씩 들을 때마다 기승전결이 느껴지게끔 노력했다. 전체 구조를 보면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삶에서 느껴보지 못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떤 것에 이끌려 몽상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렇게 세상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이유로 집을 떠나서 스승을 만나고 문지방을 넘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최종적으로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모험담의 기본 구조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영웅 신화를 ‘출발, 분리→하강, 입문, 통과→귀환’의 3단계로 압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웅의 19단계, 혹은 12단계 모험 코스로 나뉘기도 한다. 글렌체크는 새 앨범이 총 3단계 신화 중 2단계 초반까지의 과정을 다뤘다고 설명했다.

글렌체크는 “앨범 구조를 짜는 과정에서 캠벨의 책을 접했다. 밝은 노래, 어두운 노래를 구조에 맞게 다양하게 만들고 앨범에 넣고 싶은데 이 구조를 적용하면 말이 될 것 같았다. 우린 음악적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될 때가 있는데 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전 앨범보다 짜임새를 갖추게 됐다”며 “이번 다섯곡은 전체 이야기의 초반부 이야기다. 앞으로 2~3차례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다음엔 이야기의 흐름상 밝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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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피리언스 EP’ 트랙별 소개#1. ‘드리밍 킬스’(Dreaming Kills)①이야기 구조상 위치

=이야기 구조에서 이 곡은 출발을 의미한다.

②노래 설명

= ‘가만히 앉아서 밝은 미래만 상상하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기만 하는 몽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자극, 이끌림이 필요하다’는 추상적 아이디어에서 착상한 곡이다. 외국 담배를 보면 ‘스모킹 킬스(Smoking Kills)’라고 쓰여있다. 흡연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인데, 몽상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꿈만 꾸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게 없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과정 같다거 여겼다. 철학적인 주제일 수 있지만 가사는 본능적으로 나오는 내용을 적었다.

③음악적으로 주안점 둔 부분

= 이번 새 앨범의 모든 곡은 최소한 2~3개 장르가 합쳐져 있다. 이번 앨범에서 샘플링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이 곡에서 따갈만한, 힙합에 주로 쓰일만한 드럼 패턴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올드스쿨한 힙합 드럼 요소를 만들자마자 신기하게도 노래 전체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번 앨범에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쓴 유일한 곡이다. 드럼 패턴 위에 사이키델릭 록 스타일의 기타 리프를 얹었다. 노래 뒷부분엔 현대적인 R&B 힙합 요소도 있다. 보컬적인 측면에서는 소울, R&B적인 영향을 받았다.

#2. ‘팔로우 더 화이트 래빗’(Follow The White Rabbit)①이야기 구조상 위치

= 첫곡 ‘드리밍 킬스’에서 뭔가에 이끌려가기로 결심을 했으니, 이번 노래에서는 이끌려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②노래 설명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앨리스가 시간에 쫓기는 토끼를 따라가다가 굴에 빠져 이상한 나라로 가는 계기가 있다. 끌리고,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고, 유혹에 이끌려 어딘가로 과정을 노랫말에도 담았다.

③음악적으로 주안점 둔 부분 =

테크노의 서브 장르인 애시드 음악엔 특유의 사운드가 있다. 애시드는 TB303란 악기 때문에 생긴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특유의 사운드를 좋아한다. 애시드, 테크노의 패턴을 사용하되 테크노 트랙을 만들지 말고 최근 유행하는 R&B 장르를 조합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이 노래엔 현대적 R&B, 애시드 사운드가 결합돼 있고, 뒷부분에는 트랩 등 힙합 요소까지 있다. 그렇게 서너 장르가 결합된 곡이다 보컬은 R&B 장르의 문법을 따랐다.

#3. ‘롱 스트레인지 데이스 파트.1’(Long Strange Days Pt.1)①이야기 구조상 위치

= 새로운 세상으로 가서 새로운 걸 경험하는 과정을 그렸다.

②노래 설명

= 새로운 세상에 간다는 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걸 경험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세상엔 어두운 면도 있겠지만 밝은 면도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가벼운 마음으로 황홀하게 새 세상을 즐기는 상황을 그렸다. 내용상 기분 좋은 상태를 극대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뒀다. 노래 제목 뒤에 ‘파트1’을 붙인 건 같은 곡으로 다양한 주제를 보이자는 생각에서다. 파트 2~3을 만든 상태에서 파트1을 선공개한 건 아니다. 앞으로 만들어질 지 모를 파트 2~3에서도 새 세상의 밝은 면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 같다.

③음악적으로 주안점 둔 부분

= 핑크플로이드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 스타일의 기타 리프를 활용했다. 60~70년대 사이키델릭록 기타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루프를 예전에 만들어뒀는데 그걸로 이 음악을 시작했다. 구조적으로는 뒷부분에 현대적인 네오소울 사운드가 나오다가 재즈로 넘어간다.

사실 이 곡은 시작과 중간, 마지막이 이어지지 않는, 말이 안되는 음악 구조다. 그런데 특정 음을 활용한다든가, 리듬적인 변화를 통해 전혀 다른 세 스타일을 연결하는 방식을 찾아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투입했고, 공을 많이 들인 노래다. 사실 세 조각으로 나눠져 있던 노래인데 원곡은 15분이 넘는 대곡이었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듣기 편하고 좋은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서 5분대로 줄였다. 보컬적으로는 내 목소리를 변조해 여자 목소리처럼 들리게 했다. 피쳐링 없이 다양한 목소리를 넣는 법의 일환이었다.

#4. ‘메이햄’(Mayhem)①이야기 구조상 위치 =

앨범의 화자가 새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는 과정을 담았다.

②노래 설명 =

‘메이햄’이 혼란, 혼돈의 뜻을 담고 있는데 그런 면을 노래했다.

③음악적으로 주안점 둔 부분 =

도입부 성가대 합창이 메인 룹이었다. 항상 모든 곡에는 테마가 있는데 성가대 합창 위에 다른 요소들을 쌓아갔다. 힙합 드럼 사운드를 넣었고, 트랩적 요소도 가미했다. 새 앨범의 다른 곡에 비해 섞은 장르가 적은 곡이다. 팝적인 요소 강하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단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들리니 대중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노래다. 우리는 들을 거리가 많다고 생각했던 노래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의외였다.

#5. ‘루드 앤 컨퓨즈드’(Rude & Confused)①이야기 구조상 위치 =

구조적으로 이 EP는 완성된 앨범이 아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간 이후는 없다. 이 곡은 4번 트랙 ‘메이햄’의 연장선에서 어두운 면을 강조한 곡이다.

②노래 설명 =

전체적으로 이전 앨범보다 어두운 쪽으로 가려고 했으니 어두운 노래를 하나 더 추가하자고 결정했다. 이번 EP의 마지막 노래는 어두운 면에서 절정인 상태다. 어두움의 최고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가사도 어두운 세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를 보여준다.

③음악적으로 주안점 둔 부분 =

음악적으로는 완전한 올드스쿨 힙합으로 시작해 모던한 R&B로 넘어갔다가 트랩으로 이동한 뒤 마지막엔 애시드 테크노로 끝난다. 우리가 좋아하는 장르가 많이 담겨 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BAN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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