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3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김기덕 감독은 누구?…60년대 최고의 흥행 감독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9.08 08:11 조회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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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계 원로 김기덕 감독이 폐암으로 별세한 가운데 충무로에 남긴 족적도 조명받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1961년 '5인의 해병'으로 데뷔했다. 이후 '맨발의 청춘', '용사는 살아있다', '124 군부대', '친정어머니', '대괴수 용가리' 등을 만들며 70년대 후반까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장르의 인식이 미비했던 충무로에서 전쟁영화, 괴수물, 멜로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며 장르 영화의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은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1964)이다. 전국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서구식 자유주의에 대한 선망과 불안이 투사된 문화적 풍속도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신인이었던 신성일이 국민 스타로 도약했다. 이미 인지도가 높았던 엄앵란은 인기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첫 호흡을 맞췄으며 같은 해 결혼에 골인했다.

김기덕은 또 다른 거장인 김수용, 이만희 감독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돈독한 친분을 유지해왔다. 세 사람은 동시대에 활동하며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고인은 1977년 은퇴 전까지 16년간 약 66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마지막 연출작은 스포츠 영화 '영광의 9회 말'(1977년)이다. 이 작품 이후 메가폰을 내려놓고 서울예술대학 학장, 동랑예술센터 총감독,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 20~30대 영화 팬들은 김기덕 하면 '악어', '섬', '피에타'를 만든 동명이인을 생각하겠지만 50대 이상의 영화 팬들은 '맨발의 청춘' 김기덕을 떠올릴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감독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회고전을,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감독전을 연 바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11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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