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숭의초에게 학교폭력이란..재벌 손자만 아니면 된다?

김종원 기자 입력 2017. 9. 7. 17:35 수정 2017. 9. 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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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가 당황 한 이유

서울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숭의초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우리가 너무 안이했다" 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지난주, 서울시가 숭의초 학교폭력 사태 재심 결과를 숭의초 측에 통보한 직후 서울시의 상황이다. 서울시와 숭의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장난일 뿐 폭력 아니라던 숭의초…서울시 재심은 "학교 폭력 맞다"

서울 숭의초등학교 3학년(10살) 수련원에서 벌어진 이른바 숭의초 학교폭력 사건은 지난 4월 벌어졌다. 석연찮은 과정 끝에 한 달 넘게 지난 6월이 돼서야 숭의초 자체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4명, 피해 학생 1명. 이불 폭행 사건과 물비누 사건이 숭의초에 의해 다뤄졌다.

하지만 숭의초가 내린 학폭위 결과는 익히 알려져 있듯,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였다. 이에 따라 당시 숭의초는 피해자 보호 조치도 내리지 않았고 가해자 징계도 하지 않았다. 지속적이고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며 출석을 못하고 있던 피해학생의 부모는 이런 학교측의 학폭위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고, 서울시로 재심 신청을 했다. (피해 학생이 학교측의 학폭위 결과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할 때는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로 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서울교육청이 아닌 서울시가 재심을 맡았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그런지 서울시의 재심도 매우 이례적으로 진행됐다. 전례가 없던 한 차례 연기 등의 진통 끝에 서울시 학교폭력지역위원회의 재심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학교 폭력이 맞다" 였다. 숭의초 학폭위가 내린 '가해자는 없다'라는 결론이 뒤집힌 것이다.

그동안 "짓궂은 장난이었을 뿐 학교폭력은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던 숭의초와는 상반된 결론이었다. 다만, 재벌 손자에 대해서만은 "자료가 부족해 가담 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 재벌 손자 '처분 불가'는 숭의초의 은폐·축소 때문

숭의초 사태가 보도되고 난 후인 지난 7월, 서울교육청은 숭의초에 대한 감사에 돌입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초기진술서 6장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다. 사라진 진술서 중에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진술했을 수 있는 목격 아동들의 진술서도 4장이 포함돼 있었다.

아직까지도 이 사라진 진술서 6장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뿐 아니라 숭의초 교사가 아무런 교내 절차 없이 재벌 손자의 엄마에게 아이의 진술서를 휴대폰으로 찍어 보낸다거나, 학폭위 결과를 따로 메일로 보내주는 등 부적절한 연락을 한 정황도 발견했다. (현재 이 사안들은 경찰에서 수사중으로 교사들의 통화 기록 조회 작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교육청은 숭의초가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학폭위 재심은 서류 검토를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다. 법률적으로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만을 판단하는 대법원의 법률심과 일견 비슷하다. 서울시 학폭지역위는 피해자, 가해자, 학교 측으로부터 서류를 제출받아 검토를 한 뒤, 최초 학교 측이 내린 학폭위 결과에 오류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한 달이 넘도록 숭의초가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자체 조사를 벌이면서 많은 부분 축소 은폐가 됐고, 결국 서울시 재심 당시에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는 재벌 손자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없다"며 미처분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건 당시 재벌 손자의 정황을 판단할 수 없어서 '미조치' 한 것뿐이지, '재벌 손자는 가해자가 맞다, 아니다' 말을 할 수 있는 자료도 없고 근거도 없었기 때문에 '가해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얘기를 했다.

● "재벌손자 가해자 아니다" 결론?…숭의초의 대단·대담한 언론플레이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시는 다른 재심 사건들과 똑같이 이 사건을 처리한다. 4명 중 3명은 '학교폭력 인정', 1명은 판단 불가 '미조치' 처분을 내린 이 재심 결과를 내부 전산망을 이용해 숭의초에 통보한다. 결과를 전산이 아닌 우편으로 받아봐야 하는 피해자는 아직까지도 서울시의 결과문을 받아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숭의초는 이보다 훨씬 더 앞서 결과를 알게 된 것이다.

숭의초의 대단하고도 대담한 언론플레이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곧바로 6장 짜리 보도자료를 만들어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배포를 한다. 보도자료의 제목은 <숭의초 학폭 재심 "재벌 손자, 가해자 아니다" 결론>이었다. 숭의초는 이 보도자료를 통해 "재벌 손자는 가해자가 아닌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한다. 그리고 나머지 '서면 사과' 조치를 받은 세 명의 학생에 대해서도 "장난이 빚어낸 사건이었음을 의미합니다"라고 주장하며 학교폭력이 아니라 장난이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한다.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 했다는 교육청의 감사 결과에 대해 줄곧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펴던 숭의초는 이 보도자료에서는 아예 한 술 더 떠서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축소 했다는 징계요구사유는 이번 서울시 재심 결과에 비춰보면 중대하고 명백한 사실 오인이며, 부당하고 위법한 것입니다"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사실 서울시가 숭의초로 통보한 재심결정서에는 그 어디에도 재벌 손자가 가해자가 아니라고 결론났다는 내용이 없다. 다만, 재벌 손자를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 딱 5줄만 적혀 있다. 심지어 왜 이런 결론이 났는지에 대한 설명 조차도 없다.

그러니까 숭의초는 단지 재벌 손자 A군의 이름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본인들이 "재벌 손자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결론났다"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교 폭력이 맞다는 본질은 어디가고, 재벌 손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왜곡된 언론플레이만 남은 것이다.

숭의초의 이런 보도자료는 금세 기사화가 돼 인터넷엔 "재벌 손자는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기사가 순식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숭의초의 이런 행동에 피해자는 또 한번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숭의초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서울시 부랴부랴 대응…교육청은 발끈

 서울시의 "숭의초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우리가 너무 안이했다" 등의 반응은 이 직후 나왔다. 기자들의 문의에 일일이 "재벌 손자가 가해자가 아니라고 결론 낸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을 하더니,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에 부랴부랴 해명 자료까지 배포했다.

서울시는 이 해명자료에서 숭의초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벌 손자에 대해선 사건에 가담을 했는지 판단이 불가능 해서 징계조치를 내릴 수 없었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가 이렇게 보도자료까지 뿌리면서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숭의초가 "감사 결과가 위법하다"라는 주장까지 하자 교육청도 발끈 했다. 교육청도 보도자료를 내고는 숭의초가 서울시의 재심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애시당초 서울시가 재벌 손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 자체가 숭의초가 사건을 축소·은폐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회장 손자가 관련되어 있음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와 정황을 다수 확인했지만, 숭의초가 진술서를 없애는 등 사건을 은폐해 사건을 증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그걸 또 악용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잘못됐다는 지적이었다.

▲ 서울시가 부랴부랴 배포한 해명자료. 서울시는 숭의초 보도자료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재벌 손자의 '또 다른' 폭행은 쉬쉬하는 숭의초

그날 그 수련원에서는 지금까지 얘기한 이불 폭행과 물비누 사건 이외에 또 다른 학교 폭력이 있었다. 모두 이부자리에 든 늦은 시간, 반장이던 재벌 손자 A군이 같은 방 친구들이 자지 않고 떠든다고 자신이 가지고 온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것이다.

교육청 감사 결과 이 때 재벌 손자에게 맞은 아이는 두 명. 그 중 한명은 이번에 문제가 됐던 이불 폭행에 가담 했던 가해 아동이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것이다. 당시 재벌 손자에게 '심야 폭행'을 당한 이 아이는 "취침 시간에 재벌 손자 A군에게 뒤 허리 부분을 세게 맞았다"고 얘기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들을 때렸다"고도 털어놨다. 이 '심야 폭행'은 담임 교사도 인정하는 사안이다. 담임교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그날 밤 재벌 손자가 '야! 자란 말이야!' 하면서 야구방망이를 친구들한테 휘둘렀다. 그때 맞은 아이들이 한두 명이 있다. 그래서 재벌 손자를 불러 '너는 권력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너는 남용을 했구나.'라고 꾸짖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렇게 심야 시간에 재벌 손자에게 야구방망이로 맞은 아이의 부모는 지난 5월, 이 건도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서 처리를 해달라는 뜻을 교장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교장은 '부모들끼리 얼굴 붉히게 되니 먼저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 유 모 군의 이불 폭행과 물비누 사건을 처리 하고 나서 다시 논의하자'며 학폭위를 개최하지 않았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 폭력을 신고받거나 알게 되면 반드시 자치위원회에 알려서 처리를 하도록 돼 있는데, 교장이 자의적 판단으로 열지 않은 것이다.

교육청은 숭의초 감사 당시 이 사안도 재벌 손자의 폭력을 축소·은폐한 것으로 보고 지적했다. 그리곤 특별 장학을 실시해 '재벌 손자의 심야 폭행'에 대한 학폭위를 별도로 열라고 지도했다. 이게 벌써 7월의 일이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지난 아직까지 숭의초는 재벌 손자의 또 다른 '심야 폭행' 건에 대한 학폭위를 열지 않고 있다. 며칠 전 교육청이 학폭위를 열어 정식으로 처리를 하라고 다시 한번 얘기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숭의초가 법령을 위반 해가면서 까지 재벌 손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 학생 3명 가해자 지목됐는데…재벌 손자만 아니면 괜찮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애시당초 수련원 이불 폭행과 물비누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4명이다. 숭의초는 4월에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줄곧 '학교폭력이 아닌 장난이다'라는 주장을 해 왔다. 피해 아동은 안중에도 없는 대처였다.

4개월 만에 열린 서울시 재심에서는 결국 '학교폭력이 맞다'고 결론이 났다. 4명 중 3명은 가해자로서 처분을 받았다. 그랬다면 숭의초가 피해자에게 사과 혹은 유감 표명, 아니면 적어도 재발 방지 대책 정도는 다짐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숭의초는 왜곡된 주장으로 재벌 손자 중심의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재벌 손자만 아니면 가해자로 지목 된 나머지 3명의 아이들은 상관이 없다는 얘기로 읽힐 수 있다. 모두 자신들의 학생인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증인이 명백한 재벌 손자의 또 다른 '심야 폭행'에 대해선 학폭위를 열지 않고 있다.

● "재벌 손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는 숭의초…초법적 존재인가

숭의초는 본인들의 잘못을 지적한 교육청 감사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서울시의 재심 결과는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있다. 증인이 명백한 재벌 손자의 '추가 폭행' 건에 대해서는 법을 어기며까지 침묵하고 있다. 이정도면 숭의초는 법 위에 존재하는 조직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간의 숭의초의 행보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보도 직후 숭의초는 이 문제를 처음 고발한 SBS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이 자리에서 숭의초 측 변호인은 귀를 의심케 하는 주장을 했다. "재벌 손자 A군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숭의초 변호사가 숭의초가 아닌 재벌 손자를 변호하는 내용이거니와, 재벌 손자 이외 나머지 가해 학생 3명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차별 대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발언이었다. 피해자의 2차 피해는 또 어떠한가? 결국 숭의초의 정정보도 청구는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
 
숭의초는 여전히 "아이들 사이 벌어지는 학교 폭력을 학폭위 제도가 아닌, 화해와 훈육으로 해결하는 것이 숭의초의 교육 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육 철학 아래 피해자는 학교를 떠나야 했고,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이 피해자도 숭의초의 학생이었다.

연일 '재벌 손자'를 언급하며 여론전에 몰두하면서도 가해자로 결론 난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다. 이 학생들도 숭의초의 학생이다. '재벌 손자'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냐는 비판이 숭의초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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