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코리안 리포트] '놀라운 투쟁 능력' 류현진의 역투

조회수 2017. 9. 6. 17: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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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제구력과 끈질긴 애리조나 타선에 맞서 6이닝을 1실점으로 버티는 뚝심 과시

1980년대에 처음 드나들기 시작했고, 현장 취재와 TV 시청을 통해 수많은 다저스 경기를 관전했지만, 다저스타디움이 경기 전에 그렇게 고요한 것은 6일(이하 한국시간) 처음 봤습니다.

이날 4만7039명의 팬이 입장했는데도 마치 도서관 같았습니다. 최근 10경기에서 9패를 당한 팀의 하락세, 그리고 전날 애리조나 4번 타자 J. D. 마르티네스에게 4홈런을 얻어맞았고, 상대 선발 레이에 14K를 당하며 0-13의 충격패를 당한 수모 때문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MLB 통산 18번째로 한 경기 4홈런을 친 J. D.는 4개의 홈런을 4명의 다른 투수에게 터뜨리며, 강하다는 다저스 불펜마저 초토화시켰습니다.


제구력이 흔들린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투지로 보란듯이 6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습니다. @다저스SNS


게다가 류현진의 표정은..

평소 장난기 많고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류현진(30)이지만 일단 경기에 출전해 마운드에 오르면 포커페이스입니다. 무표정이 됩니다. 그런데 이날 표정은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결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약간 어두운 불안한 느낌도 주고, 뭔가 평소와는 분명 다른 경기 전개가 예측되기도 한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11연승의 무서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하 디백스)인데 그 중에는 지난 주 류현진이 4이닝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된 경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표정이 비장했을 법도 합니다.


1회를 시작하는 첫 느낌은 좋았습니다.

디백스 1번 타자 네그론을 상대로 던진 초구 패스트볼은 148.3km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볼.)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섞어 삼진을 잡고 출발한 후 2번 아이어네타를 상대로는 구속이 150.1km까지 찍혔습니다. 1회에 이런 구속이라면 희망의 날입니다. 그런데 투 스트라이크로 시작한 타석에서 아이어네타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기 시작합니다. 볼넷에 인색하기도 한 류현진이지만(이 경기 전까지 시즌 9이닝 당 2.98개) 투 스트라이크를 잡고 볼넷을 주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분명 평소의 제구력은 아니었습니다.

3번 폴락을 역시 풀카운트까지 간 끝에 커터로 바깥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고, 좌완 킬러 J. D.(좌완 상대 4할에 OPS가 1.445)와 맞섰습니다.

초반에 큰 것을 맞으면 지난달 31일 디백스 원정 경기처럼(4이닝 6실점 1회 피홈런 2개, 총 3개)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칠 수 있는 위기. 여기서 류현진은 148.3km의 초구 속구가 낮아 볼이 되자 123.8km 느린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 낮게 들어간 이 공에 J. D.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지만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했습니다. 좌익수 뜬공 아웃.

구속만 보면 커브에 더 어울릴 이 느린 슬라이더가 이날 류현진의 승부수였고, 상대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구종이 됩니다.

그들이 공부한 스카우팅 리포트의 류현진 레퍼토리 중에는 전혀 강조되지 않은 구종이었으니까요. 류현진은 지난번 같은 디백스전에서 3개를 던진 슬라이더를 이날은 15개나 던집니다. 그리고 전날 4홈런을 친 타자와 첫 대결에서 그 공을 던져 좌측 깊은 그러나 힘 없는 뜬공으로 첫 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회에 4타자를 상대하며 던진 공이 21개나 됐습니다. 더욱 문제는 21개 중에 스트라이크가 11개, 볼이 10개로 거의 반반이었습니다.

어떤 투수든 1회에는 제구가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2회에는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회에도 또 볼넷이 나왔고, 실점 없이 마치기는 했지만 두 이닝만에 투구수가 이미 40개가 됐습니다. 안타도 하나 안 맞았는데.

더군다나 40구 중에 스트라이크가 22개였으니 제구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벌써 풀카운트 싸움을 4번이나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공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삼진 3개를 곁들이며 전혀 디백스 타자들에게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워낙 상승세인 디백스 타자들이 정말 끈질긴 승부를 계속 펼치면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드는 초반이었습니다.


반전의 사나이 류현진은 그러나 초반 잠재적인 제구력 난조 위기를 어렵게 떨친 후, 3회초 9번 그레인키와 1번 네그론, 2번 아이어네타를 K-K-K로 잡으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투구수도 단 12개.

그리고 이날 최대 위기이자 행운도 따른 4회초가 시작됩니다. 옛 동료이자 류현진만큼 영리하고, 또 류현진보다 더 엉뚱한 디백스 선발 잭 그레인키 역시 3회까지 무안타로 다저스 타선을 틀어막은 가운데 4회초 선두 타자는 3번 폴락.

류현진과는 통산 3할3푼3리 (21타수 7안타)로 꽤 강했고 2루타와 3루타도 하나씩 친 기억이 있습니다. 폴락의 날카로운 타구는 3루수 직선타로 원아웃.


이어 4번 J. D.에게 초구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끌어낸 류현진은 2구째 150km 속구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 공은 바깥쪽에서 약간 안쪽으로 휘어들어갔는데, 전날 4홈런의 사나이 J. D.가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하게 밀어 친 공은 우측에 떨어졌고 튕기면서 담장까지 굴러가는 2루타. 다음 타자 5번 드러리 상대로도 제구력은 불안했고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주자는 1사 1,2루.

6번 좌타자 데스칼소는 류현진과의 생전 첫 대결인 2회 타석에서는 볼넷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초구 떨어지는 커브로 헛스윙을 하자 류현진은 2구째 128.5km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이날 던진 다른 슬라이더에 비해 구속이 빨랐던 이 공은 약간 높게 걸리기까지 했습니다. 데스칼소는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고, 타구는 빠르게 좌측으로 날아갔습니다. 최근 다시 라인업에 모습을 드러낸 노장 이디어가 열심히 쫓아갔지만 공의 종착지는 펜스가 낮은 좌측 관중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101m 비행 끝에 이 공은 펜스를 때렸고 튕기며 이디어의 품 앞에 떨어졌습니다. 넘어갔으면 3점 홈런, 옆으로 튀었으면 2실점을 할 수도 있던 상황에서 행운도 편들어준 최상의 결과였습니다. 일단 선행 주자 한 명만 홈으로 귀환했고, 다른 주자는 2,3루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애덤 로살레스와의 다음 대결이 이날의 결정적인 승부처였습니다.

바로 전 디백스전에서 불의의 홈런을 맞았던 이 타자와의 대결에서 6구까지 가는 풀카운트의 실랑이를 펼쳤지만, 류현진은 마지막에 급격히 가라앉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8번 마르테를 고의 볼넷으로 거른 후 그레인키를 땅볼 처리하며 만루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기세가 떨어진 팀 분위기에 상대 선발은 막강 그레인키, 여기서 추가 실점했으면 류현진도 다저스도 패전을 면치 못할 뻔 했지만 엄청난 투쟁 능력을 과시하며 류현진은 위기를 떨치고 나왔습니다.


5회에는 아이어네타의 타구에 오른 종아리를 맞았고, 폴락에게 이날 3번째 안타도 허용했지만 류현진은 계속 싸우며 버텼습니다. 심지가 물에 젖은 폭발력을 잃은 대형 다이너마이트 같은 요즘 다저스 타선은 5회말 그란달이 이날 그레인키 상대 첫 안타를 우중간 홈런으로 연결하며 간신히 1-1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자주 그랬었기 때문에 혹시 또 교체하려나 싶었지만 류현진은 5회말 타석에 들어서며 다음 이닝 피칭을 예고했고, 6회 선두 타자 드러리에게 이날 5번째 볼넷(1고의)을 내줬지만 데스칼소의 땅볼을 스스로 잡아 1-6-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도 끌어냈습니다.


결국 6이닝을 피안타 3개, 볼넷 5개, 삼진 7개를 잡으며 단 1실점으로 호투했습니다.

100개의 투구 중에 스트라이크는 58개로 60%를 밑도는 어려움 속에서도 치열하며 싸웠습니다. 평균자책점은 3.59로 낮췄습니다.


류현진은 이번 시즌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겠지만 중간 중간 벽에 부딪히는 경기가 나올 것이라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삐걱댐의 빈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그래서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에 일희일비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그런 삐걱댐은 빼어난 투수들에게도 간혹 나오는 현상이지만, 큰 수술을 받은 투수에게는 아주 순조로운 회복 과정을 보일 때도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구속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지만 중간 중간 갑자기 통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날들도 나오고요.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면 류현진의 이날 피칭은 시즌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구란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흔들리는 제구의 어려움 속에서도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선을 6이닝 단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치열한 투사인지를 보여줍니다. 두 번 연속으로 수모를 당할 수는 없다는, 그리고 흔들리는 팀에 어떻게든 승리의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그의 투쟁심이 끌어낸 역투였습니다.


그러나 또 승리 투수는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저스는 연장 끝에 1-3으로 또 패했습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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